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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미국 이야기 4 : 학교 가는 길

by 격암(강국진) 2010. 2. 25.

일주일에 두번 아이를 ps41 학교에 바래다주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부부의 의무다. 본래는 매일 해야 하는 일이지만 두 집이 연합해서 번갈아가면서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 준다. 아침마다 예나와 학교에 가는 아이는 넬리라는 아이로 예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 담당인 아침이 되면 나는 예나를 데리고 1층 로비에서 넬리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 아이인 경호가 너무 어려서 아침에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일은 대개 내가 해야 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이름은 워싱턴 스퀘어 빌리지로 맨하탄에 그리 흔하지 않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다. 워싱턴 스퀘어 빌리지는 그리니치 빌리지 좀더 정확히는 말해 남북으로 맨하탄 웨스트3가와 브리커 거리 동서로는 머서와 라구아디아 거리사이에 존재하는 복합 아파트 단지다. 두개의 건물에 1292채의 아파트가 있고 건물 사이로는 녹지와 놀이터가 있다. 그 역사를 살피면 한때 이곳은 술집이 많은 빈민가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1950년대 맨하탄 정화운동에 따라 중산층을 위한 주거지로서 워싱턴 스퀘어 빌리지가 만들어 졌다. 그후 뉴욕대학이 이 건물을 사들여서 뉴욕대학의 사람들이 많이 산다.

 

넬리가 로비에 도착하면 나는 예나와 넬리를 앞장세우고 뒤에서 천천히 걷는다. 어차피 길은 아이들이 잘알고 있다. 나는 단지 아이들만 혼자서 학교로 보낼 수없는 맨하탄의 환경 때문에 따라갈 따름이다. 건널목에서만 주의한다.

 

처음 뉴욕에 와서 놀이터에서 아이를 놀게 할 때의 일이다. 스스럼없이 말을 잘걸고 대화를 하는 것이 미국 사람들이라 나도 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할머니가 예나가 귀엽다면서 해주는 칭찬이 이랬다. 조심하라고 예나는 귀여우니까 누가 훔쳐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농담처럼 듣고 말 이야기인데 워낙 할머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서 섬찟했다. 설마. 여기는 뉴욕이니 아이가 좀 예쁘면 막 집어가나?

 

그러나 실은 뉴욕은 생각보다는 훨씬 안전한 도시였다. 여기저기서 범죄나 살인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그렇게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그래도 안심은 안된다. 그래서 아이들만 학교에 가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역시 뉴욕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웨스트 3가를 따라 조금 걷다가 봅스트 도서관 옆길로 접어들어 한 블럭을 가면 워싱톤 스퀘어 공원이 나온다. 예나가 학교를 갈 때면 이 공원을 가로 지르게 된다. 이 공원의 한쪽 편에는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다른 한쪽 편에는 체스를 두는 곳이 있다. 아이들 놀이터 때문에도 많이 오지만 이 공원은 거리공연이 많아서 산책을 하다보면 곧잘 구경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우리 가족이 종종 나오는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워싱톤의 조상이 있는 아치로 유명한 이 공원은 뉴욕대학의 졸업식이 행해지는 곳이며 여러가지 집회나 대학교의 행사가 치뤄지기도 한다. 이 공원의 한가운데는 커다란 분수대가 있다. 어른들은 별로 그러지 않지만 여름이면 애들이나 흥분한 대학생들이 종종 이 분수의 물속을 텅벙거리며 뛰어 놀곤 한다. 이 공원주변에는 언제나 조깅을 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로서 아이들과 가는 통학길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지만 도통 두 아이들은 내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뭐가 그리 할말이 많은지 자기들끼리 떠드는데 바쁘다. 나는 이따금 심판이나 참고인으로 끼어들 자격을 얻을 뿐이다. 예를 들어 둘이서 무슨 과학문제나 어느 나라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떠들다가 결판이 안 나면 예나가 나에게 묻는 것이다. 내가 답을 해주면 넬리는 이거 너네 아빠라서 편드는 거 아니냐는 식의 미심쩍은 표정을 보일때도 있지만 대개 인정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 준다. 생긴건 귀엽지만 만만치 않은 넬리다. 애취급 받는 건 싫어하고 어른이니까 나보다 잘알겠지라고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자기가 틀려도 고집은 피우지 않지만 진짜? 라고 하면서 고개를 갸웃이며 여운을 남긴다. 물론 예나가 맞을 때도 있고 넬리가 맞을 때도 있다.

 

예나는 애들이라 그런지 역시 영어를 참 빨리 배웠다.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사반세기는 되어가는 아빠가 보면 부럽다. 아내에게 내가 예나 나이에 영어를 저만큼 했으면 지금쯤 노벨상 받았을 거라고 허풍을 치는건 예나가 부러워서다. 아빠는 중학교때 이를 박박갈면서 영어를 공부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외국인을 만나자 헬로우도 잘 못했다. 태어나서 외국여행 처음 해본게 21살때의 일이다. 예나와 비교를 하자니 한 세대가 다를 뿐인데 차이가 너무 난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끝쪽에 오면 이리로든 저리로든 갈수 있는 길이 두 방향이 있다. 맨하탄은 길들이 바둑판처럼 생겼으니 북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꺽으나 서쪽으로 갔다가 북쪽으로 꺽으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한쪽 길로 간다. 다른쪽 길에는 특별히 으슥한 골목도 아닌데도 버젓히 성인용품 가게가 있다. 특별히 야한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건 아닌데 이상야릇해 보이는 옷들이 있으니 별로 내키지 않는다.

 

조금 더 걸으면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맛있는 베이글을 파는 가게가 있는 아메리카 애비뉴가 나온다. 맨하탄을 따라 남북으로 난 거리기 때문에 애비뉴로 부르는 아메리카 애비뉴는 크고 넓은 길이다. 따라서 퍼레이드하기에 좋다. 뉴욕은 일년내내 온갖 이유로 거리를 채우는 행진이 많다. 아메리카 애비뉴는 그런 행진이 자주 벌어지는 거리중의 하나다. 예를 들어 할로윈데이 같은 날의 밤이면 아메리카 애비뉴에는 짜릿한 밤을 즐기겠다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나온다. 거리가 만원버스 들어차듯이 들어찬다. 한번은 할로윈 데이에 유모차를 끌고 아메리카 애비뉴에 갔었다. 우리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거기있다가는 사람들에 깔려 사고가 날것같았다.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꽃집을 지나 아메리카 애비뉴를 따라 걸으면 곧 예나가 책을 빌리는 제퍼슨 마켓 도서관이 나온다. 이 도서관은 생긴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뾰족한 시계탑이 있어서 약간 디즈니의 성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알고보면 1883년에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로 본래는 법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예쁘게 생겨서 눈이 띄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사진도 많이 찍는다.

 

예나가 자기 이름이 새겨진 도서관 카드를 처음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예나는 이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들고 오기 힘들 만큼 책을 빌린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할 때가 있다. 반납이 늦어지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엄청나게 반납이 늦어지면 책을 아예 사는 것보다 벌금이 더 비싸지는 수도 있다.

 

도서관을 지나면 이제 학교가 금방이다. 우리 집에서 예나의 학교인 ps41까지는 1.5킬로쯤 되는 것 같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는 부모들이 등장한다. 맨하탄에서는 부모들이 항상 아이와 다닌다. 예나처럼 1학년이어서가 아니다. 훨씬 고학년의 아이들도 혼자서 학교에 오는 법은 없다.

 

학교앞 건널목을 건널쯤이면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하이, 하이, 사방으로 손흔들고 미소날리고 하는 것이 일상이다. 학부모들끼리 서로 잘알자고 파티를 한적도 있다. 물론 아이들 생일파티를 해서 만나게도 된다. 한국 같으면 아이만 집어넣고 부모는 돌아설 법도 하지만 맨하탄에서는 아이만 생일파티에 보내는 부모가 한 명도 없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파티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애들이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며 어른들의 파티, 다시 말해 먹고 마시며 하는 잡담모임을 한다. 남의 파티에 참석해 줘야 우리 파티에도 참석해 줄 터이니 성대한 파티를 열고 싶은 부모들은 매달 다른 아이들 생일파티에 참석해야 한다. 그러니까 열성적인 부모의 경우 1년이면 상당한 수의 애들파티에 직접 참석해 줘야 하는 것이다. 생일파티 장소도 물색해야 하는데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기좋은 곳은 당연히 비싸고 예약이 어렵다. 한국도 그렇지만 뉴욕의 부모들도 아이들 사교관리, 파티준비, 일정관리에 에너지와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학교근처에 가면 노란 학교버스가 보인다. 저 통학버스를 타고 내리는 것도 엄격히 어른이 필요하다. 아이가 집에 돌아가려고 통학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정거장에 부모가 없으면 아이는 버스를 내릴수가 없다. 6학년생이라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럼 어찌될까. 아이는 경찰에 인계된단다. 엄마가 깜빡하고 버스정거장에 나가지 않으면 집이 코앞이라도 아이가 미아취급을 받게 된다.

 

친구들이 보이자 슬슬 흥분하던 예나와 넬리는 하는둥 마는둥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학교문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다. 이젠 내가 사무실에 갈 차례다. 나는 다시 내가 잊어먹은 것이 없는가 확인을 한다. 보자 아내가 뭘 사오라고 했더라. 안 사가면 또 혼날텐데. 나는 그 길을 따라 거꾸로 돌아오며 그날 할 일에 대한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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