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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교육에 대하여

형제없고 선배없는 아이 문제없을까?

by 격암(강국진) 2013. 12. 5.

교육의 한가지 원칙

 

아이를 키울 때 우리가 알아둬야 하는 일은 많겠지만 그래도 아주 근본적인 원리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인간은 단계를 거쳐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처음에는 원시인으로 태어난다. 현대인이라고, 아주 똑똑한 지식인이라고 그들의 아이가 원시인의 아기보다 더 성숙하고 지적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때 그들은 백지고 원시인이다.

 

개체발생도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단 하나의 세포가 엄마배속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 탄생하기 전까지 아이는 작은 아이가 점점 자라난다기 보다는 인간이 아닌, 인간 이전의 생명같은 모습을 가진 단계를 반복하다가 태어난다. 큰 나무도 마찬가지로 작은 나무가 그대로 커지는게 아니라 작은 씨앗에서 점점 더 자라나면서 모양이 바뀌어 간다. 작은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씨앗이다. 씨앗이 크면 큰 씨앗이 되는게 아니라 나무가 된다. 나무처럼 생긴 씨앗이 최고의 나무로 성장하는게 아니다. 이렇게 생명은 자신의 현재 상태와 주어진 환경과의 교류속에서 자기를 바꾸고 자기를 다시 정의해 가면서 성장한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을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서둘러 어른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너무 빨리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날 때 원시인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아기를 수천년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인위적인 환경에 던져넣는다. 너무 깨끗하거나 너무 더럽고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하고 너무 자극이 많거나 너무 자극이 없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는 서둘러 부모와 단절되어 키워지곤 하고, 온갖 빌딩과 전자기기에 둘러쌓여서 서둘러 문명이 쌓아올린 지식을 주입당한다. 그것은 마치 원시인을 현대의 대학강의실에 던져넣는 것과 비슷하다. 그 원시인은 잘 배울 수 있을까.

 

아이와 어른이라는 벽이 무너진 요즘 상황은 더욱 안좋다닐 포스트만은 유년기의 실종이라는 책에서 아이와 어른간에 존재하는 벽은 쓰고 읽기가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고 멀티미디어 환경이 이 벽을 허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같아졌고 아이는 어른 같아졌다. 아이는 이제 문화에 의해 너무 어려서부터 어른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당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셀러리맨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 흉내만 내고 속으로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학습을 하는 것같지만 요즘 아이들의 학력이 반드시 예전 시대보다 더 높은 것도 아니다. 많은 아이들은 실상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망가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의 벽이 무너졌기 때문에 아기가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기보고 당장 어른이 되라고 하는 식이다. 단계가 사라져 버렸으므로 뛰어넘어야 할 계단의 높이가 더 커졌고 많은 사람들은 그 계단앞에서 좌절해서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원시인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현대사회로 한꺼번에 옮겨오지 말고 천천히 원시시대로 부터 현대사회로 이전시키듯 여러단계를 거치며 키워야 할 것이다. 어린 아이는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만나는 환경에서 커야 하며 어릴 때 일수록 아이는 시골같은 환경에서 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전에는 시골에 집성촌이 있었다. 논과 밭과 산으로 둘러쌓인 농촌 집성촌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친인척이라 내아이 남의 아이 구분이 없었다. 아이들은 들과 산에서 뛰어놀면서 컸다. 적어도 어린 아이는 그런 곳에서 크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학원가기 바쁘다. 아이들은 아파트촌에서 집과 학교 학원을 오고가며 콘크리트 환경을 볼 뿐이다. 부모손을 잡고 다닌다고 해도 길가는 낳선 사람들이 주는 공포속에서 큰다. 좋은것만 먹고 좋은 환경에서 큰다는 요즘에도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가 이렇게 많은 것은 어느 정도 그 때문이 아닐까?


형제와 선배가 없어도 문제 없을까?


아이 낳아 키우기 어렵다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일단 형제가 드물며 거리로 나와서 동네 아이들과 같이 노는 일도 드물다. 더 나쁜 것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적인 분위기 탓인지 아이들도 층층이 패거리를 나눠서 나이별로 학년별로 별로 교류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저학년 학생을 어느정도 고학년 학생이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짝을 지어서 뭔가를 같이 해결하게 하거나 말이다. 고학년 학생은 물론 많은 면에서 성인인 선생님보다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른은 아이들에게 항상 최상의 모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보다 약간 높은 연령의 선배나 형 누나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모범으로 생각하며 자라는게 바람직 하다. 어른들은 중간단계를 다 뛰어넘어서 선문답같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것은 또 가르치는 쪽에도 도움이 된다. 가르치는 것은 그 자체가 훌룡한 교육의 일부분일 수 있다


어른들은 산의 정산에서 산 밑에 있는 사람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손짓하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은 대개 직선로가 아니다. 직선으로 가려고 하다가는 절벽밑에서 시간만 낭비하거나 좌절하거나 다칠 것이다.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것은 정상에 있는 사람의 방향이 아니라 길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산위에 있는 사람에게 중간단계는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고 쉬워만 보이지만 그것은 건너뛰어도 되는 단계가 아니다. 

 

예전처럼 대가족제도에서 아이가 많은 집이라면 자연스레 형제간에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부모는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 동생들을 가르치라고 할 수 있었다. 집성촌같은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동네의 친척 형이며 오빠, 누나나 언니를 보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런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나쁜 것중의 하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권위주의적인 문화다. 권위주의는 아랫사람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게 만든다. 대화를 줄이거나 불가능하게 한다. 집같은 작은 공간에서 모든 걸 다보고 큰 사이라면 숨기는 것이 한계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 진정한 소통은 권위주의속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사실 권위주의의 핵심은 일방적 소통 즉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정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아이들은 마음을 터놓고 사귈 선배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교육이 언제나 바람직 한것은 아닐테지만 이런면에서 클럽활동을 강조하는 일본교육과 한국교육은 비교할만하다. 어릴때부터 입시교육에 바쁜 한국아이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클럽활동이 중고등학교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클럽활동은 아쉬운대로 단체활동의 기회, 선배들을 만나는 기회를 조금이나마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많은 한국아이들은 고립되어 오직 혼자서 시험공부만 한다. 그들이 어디서 어떤 모범을 배우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가까운 나이를 가진 선배없이 세대격차가 있는 부모나 선생님만 만나면서 크는 아이는 두렵고 힘들 것이다. 종종 그들이 걸었던 길을 최근에 겪은 사람이 가장 도움이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맺는 말

 

요즘 아이들은 사회성이 있기가 힘들다. 그들은 종종 집의 밖에서 사회에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사회에 살지 않는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친구나 선배와의 관계보다는 학교와 학생,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를 주로 의식하게 된다. 집에서도 형제끼리의 관계보다는 부모와 나의 관계를 주로 의식하게 된다. 관계가 항상 중앙이나 맨꼭대기의 권력자만 쳐다보는 꼴이다.

 

그 이유는 물론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오늘날의 분위기에 책임이 있다. 공부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잘 협력해야 성적이 잘나오는게 아니다. 학교에 왜 가는가? 사회와 부모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학교에 가는 이유는 진학을 위한 것이라고, 오직 그것만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학교만 그런게 아니라 집안 생활도 마찬가지다. 아주 어릴 때 부터 너는 공부하라고 하면서 다른 모든 것은 부모가 하거나 돈으로 해결한다. 아이에게 청소나 설거지를 시키고 요리를 가르키고 집안행사에 참석시키고 가족여행같은 것을 하면서 가족과의 시간을 많이 쓰게 하는 부모는 대개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말해진다. 내일이 시험인데 아이가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디있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나마 형제가 있어도 형제끼리도 대화가 줄어든다.

 

안그래도 형제가 없거나 작고, 동네로 나가서 학교에서 자기보다 약간 연상인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적은 세상에서 사회는 아이에게 주변에 친구나 선배가 있어도 거기에 한눈팔지 말라고 한다. 어른들은 종종 그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교육의 첫번째 원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심지어 입시공부에서조차 그 효과가 의문시 된다. 과연 아이를 초등학교나 심지어 그 이전부터 대학입학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고 걷게 하는 것이 입시공부에 도움이 될까? 그것은 마치 발밑의 길은 안보고 산꼭대기만 보고 걸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산이 험하다면 대개의 경우 그런 식의 등반은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일의 결과도 그와 같을 수 있다. 아이에게는 선배나 형, 누나가 필요하고 어른은 아이에게 자기만 보라고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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