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연애에 서툰 사람을 위하여

by 격암(강국진) 2014. 12. 4.

2014.12.4

언젠가 한 블로그 방문객이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연애라면 전문가야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싶지만 저도 수많은 다른 남자들처럼, 그리고 특히 이공계 전공의 남자들은 더하다고 생각하는데, 연애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질 사람은 아닙니다. 굳이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저의 청춘은 찌질했습니다. 

 

사실 청춘은 원래 보잘 것 없고 찌질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스스로를 찌질한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슬퍼할 것 없습니다. 청춘이란 경험이 없는 것이고 대개는 가진 것도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찌질하지 않을 수가없습니다. 설사 남들보기에 굉장해도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뒤돌아보면 다 찌질한 청춘이기 마련입니다. 

 

어쨌건 저는 어떻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연애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이 질문은 흥미롭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몇가지 써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자신과 다른 사람의 동물적 욕망을 긍정해야 한다. 저는 연애에 서툰 사람에게는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연애에 서툰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잘못이 연애란 결국 인간과 인간사이의 욕망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유전적 성향이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개 이성에게 끌리고 연애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저처럼 결혼한 사람이 아니라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어지는 것은 나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연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면 실수 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대학시절에 미팅에 자주 나갔던 친구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결국 형태만 바꿔서 자주 있는 일일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미팅에 나갔다가 돌아온 친구들이 미팅에 가서 이런저런 남녀 간의 신체적 접촉을 유도하는 게임을 한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들려줄 때면 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두사람이 서로 좋아서 연애를 하기로 했고 그래서 그런 일들을 한다면 당시에도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하면서 신체접촉을 하는 풍경은 당시의 저로서는 너무 큰 위선처럼, 바보같은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게 아니더라도 남녀간의 연애에 관련된 일에는 위선과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 흔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상처를 받지요. 

 

저는 지금도 이런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거짓말에 대해서 전처럼 그렇게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사람들의 욕망이거나 의도하지 않게 분위기에 휩쓸린 어리석음인데 어느 쪽이든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다면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완벽하지 않은데 누구보고 완벽하라고 하겠습니까. 아니 애초에 완벽의 기준따위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욕망을 가지고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연애가 결국 인간과 인간사이의 욕망에 대한 것이라고 해서 인간의 연애란 결국 동물이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과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사랑도 어떤 측면은 결국 동물의 사랑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 연애는 잘 시작되지 않거나 시작되어도 지나치게 기괴한 모습을가지게 되어 깨지기 쉽습니다.

 

연애는 적어도 두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배운 것으로 상상한 숭고하고 완벽한 사랑을 세상에서 찾아서는 안됩니다. 거기에는 흔히 미디어가 주는 왜곡이 개입합니다. 설사 우리가 운이 좋아 그런 걸 찾은 것 같아도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찾은 사람은 천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당신이 인간이듯이 말입니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고 사람은 여러가지 중복된 감정과 행동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이거다 저거다에 너무 집착하면 사람이 경직이 되게 됩니다. 눈빛 한번이 큰 의미가 있는 것같고, 한번 모른 척한 것이 절교가 됩니다. 애초에 너무 경직되어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줍니다. 마치 나에게 적의를 가진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미소한번 보내면 결혼이라도 해야 할 것같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연애는 시작되기 어렵겠죠. 조금은 가벼워져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연애에 서툰 두번째 종류의 사람이 생각납니다. 이건 앞에서 말한 사람의 반대로 너무 가벼운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참 여자에게 말 잘걸고 미팅같은데 가면 재미있게 논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얼마나 진지한 관계까지 갔는지는 모르나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기는 참 많이 만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종종 연애에 서툰 사람입니다. 바쁘게 만나기만 할뿐 실속이 없달까요. 평생에 한번 세상에 딱 하나 있는 운명적 사람을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는 동화적 이야기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남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좋아할 사람이 딱 하나겠습니까. 그저 살다가 이 사람을 먼저 만나게 된 것뿐이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백명 이백명 만나고 다닌 사람이 한명하고 연애한 사람보다 더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백번 연애했다는 말은 백번 헤어졌다는 말과도같으니 보기 나름에 따라서는 가장 연애를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도 잘 고르고, 그 연애를 지키지도 못한 겁니다. 

 

이건 취향과 가치관의 문제라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바람둥이의 한계는 그 만남의 깊이가 지나치게 얕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실은 바람둥이란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자기의 내면을 들어낼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바람둥이가 왜 계속 이 사람 저 사람 만날까요. 지금 만나는 사람과 뭘 더 해볼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병속에 근사한 와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멋진 와인의 뚜껑을 따놓고 계속 다른 병 뚜겅따기에만 열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도의 문제기는 하지만 두 남녀가 만나서 한주일도 안되서, 혹은 단 한번의 저녁을 지내고 나면 더이상 뭔가 즐거운 것을 찾을게 없다고 한다면 도덕적으로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그 사람들은 내적인 깊이가 지나치게 얕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미팅같은 장소에서 한 시간이나 하루만 재미있는 사람이랄까요. 그런 사람을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말을 아예 못하는 사람도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떠들어대기만 하는 사람도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있는 문장을 말하는 사람이 말을 잘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런 저런 사람 많이만 만나고 다니는 사람도 일종의 연애에 장애가 있는 장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연애 전문가처럼 보여도 말이죠. 

 

결국 연애를 잘하려면 스스로 자기와 대화를 하고 책도 읽어야 합니다. 내적인 폭과 깊이와 감수성이 필요하고 그런 파트너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저런 재미있는 데이트도 하고 대화도 하는 것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멋진 데이트 장면을 보여줄 때 이런 부분이 생략되는 것은 현대의 미디어가 가진 큰 문제입니다. 6시간동안 언제 시간이 지나는지 모르게 대화를 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6시간을 허비하는 영화는 없으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멋진 장소에서 손잡고 키스하면 그게 멋진 데이트 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시간의 흐름보다는 한 장면의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은 영화가 아닙니다. 멋진 연애를 꿈꾸기는 하지만 한시간도 대화할 것이 없다면 실제로 드라마처럼 상대를 만나도 재미가 없을 겁니다. 재미있는 상상력따위는 없이 그저 영화에서 본 것같은 한 장면만 연출하려고 한다면 연애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드라마처럼 안되기 때문입니다. 멋진 연애는 깊은 내면을 키우고 자기를 표현하고 소통하는데서 나옵니다. 박식하다는 것을 자랑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이야기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속이 텅빈 두사람이 만나봐야 영화처럼 멋진 사랑은 잘 안됩니다. 금새 싸웁니다. 영화에서처럼 안되는 것을 서로 상대편이 잘못하고 모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정리해 봅시다. 연애를 하려면 자신과 남들의 동물적 본성을 긍정해야 하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연애란 소통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너무 경직되고 무거워서도 안되지만 너무 가벼워서도 안된다. 내가 한 말이기는 해도 분명 좋은 말들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멀었습니다. 무엇보다 가볍고 무겁다는 것의 기준이 뭔지가 없습니다. 그 기준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연애의 핵심이 뭘까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남자라서 남자로서 말해보겠습니다만 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연애를 하려면 우선 그녀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녀를 이해해야 합니다. 연애의 핵심은 이해입니다.  한 여자는 보편적인 존재인 동시에 특수한 존재입니다. 연애에 서툰 남자는 흔히 이렇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여자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까요?  특수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질문이 애초에 뭔가가 잘못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흥행을 노리는 영화배우나 여성용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유혹하고 싶은 것은 한 명의 특정한 여자죠. 일반성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다른 만큼 다른 여자와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여자를 보지 말고 그 여자를 봐야죠. 

 

편의상 그녀를 미쓰 김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우리가 미쓰 김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다면 우리는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는 이렇다 저렇다라는 일반적인 것에 대해서도 알아둬야 할 것입니다. 일반론적인 틀 없이 모든 선입견을 다빼고 어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통상 말하는 것처럼 꽃다발을 주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하고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차를 몰고 나가는 그런 것도 아마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데 스스로가 좀 부족하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고민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일반론은 소용없습니다. 일반론은 알아는 둬야 하지만 연애의 핵심은 구체적으로 연애의 상대가 되는 그 미쓰김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미쓰김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에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가지는 연애의 최대무기는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와 상대편입니다. 자기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 기준이 나오는 것이죠. 

 

미쓰김을 유혹하고 싶다면 미쓰김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진짜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애란 그저 상대방을 여자와 남자로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짜 관심은 없는 행위가 됩니다. 인간은 이해받고 싶어합니다. 남자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물론 내가 미쓰김을 좋아하는 것이 관심이 아니냐고 말하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미쓰김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관심이 너무 크다는 것은 오히려 미쓰김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애란 대개 즐겁고 기쁜 것이기 때문에 하려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희노애락을 가지며 상처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천사나 인형처럼 생각하면서 그 천사와 가질 수 있는 좋은 시간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잘 보이려고 잘난 척 하는 것이 잘못되면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종종 스스로와 상대방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연극하는 것같은 부자연스런 상황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무수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욕망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것에서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진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지지 못한 것은 가지고 싶어합니다. 상대방이 가지는 세상과 인생에 대한 희망과 욕망이 어떻게 당신과 조화되는 가를 알아야 미쓰김은 당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당신은 틀에 박힌 방식으로 미쓰김을 대우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봄으로써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남자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모델같은 여자는 모델같은 남자를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학벌좋은 여자는 학벌이 더 좋은 남자를 원하는게 아닐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남자건 여자건 연애의 상대로 선택하는 사람은 최소 둘중의 하나의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욕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죠.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당신이 코미디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장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어두운 면과 공포를 감싸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런 못난 사람이라는 것, 내가 이런 찌질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앞에서 우리는 편안해지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과 어둠을 보여 줄 때 오히려 호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호감을 전제한 상황에서만 그렇습니다. 보는 여자한테 마다 찔찔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고 첫인상에서 부터 그래서는 안됩니다. 어느 정도 호감이 깔리고 적절한 기회가 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 자기의 못난 점과 실패를 들어내는 상대는 나를 편안하게 합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괜히 나의 좋은 면만 보여줄 필요가 없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과는 달리 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인척 하면서 사는 것은 힘들고 무섭습니다. 그래서 오랜 방황과 공포끝에 집에 온 것 같이 느껴지게 만드는 편안한 남자와 만날 때 여자는 행복해 합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 가면 무조건 엉엉 울라는 말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멋진 모습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첫인상에서나 써먹을 일이지 계속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남자라면 나의 이런 저런 부끄러운 모습도 웃으면서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남자를 여자는 사랑합니다. 여유있고 허술해서 넉넉해 보이는 남자를 여자는 사랑합니다. 사실 남자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여자가 더 그런 것같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여자는 금기를 더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욕망때문에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는 돈이 많다거나 어떤 영향력있는 집안의 자식이라거나 뭐 그런 것을 위해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그런 극단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잘 생겼다거나 운동을 잘하고 몸매가 좋다거나 학벌이 높고 문화적 소양이 높다거나 하는 것을 포함하는 모든 장점때문에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욕망때문에 하는 선택입니다. 

 

모든 사람은 빛과 그늘로 되어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이죠. 자신의 그늘을 보여줘서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앞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빛을 보여줘서 단점따위는 보이지도 않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반드시 적절히 섞여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볼 때 장단점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너무 장점만 과시하면 상대방이 오히려 단점만 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당신의 단점을 들어내고 당신의 욕망을 들어낼 때 오히려 상대방은 안심할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상대방이 어떤 장점을 알아줄 것인지, 어떤 단점을 용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사실 물러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빛과 그늘을 보면서 그 모두를 포용할 수 없을 것같을 때 당신은 상대방을 무슨 소모품, 놀다가 버리는 장난감처럼 소비하게 됩니다. 원래의 의도가 어떻든 말입니다. 연애나 사랑은 가까이에 서는 것이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포용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한다는 도덕을 논하는게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연애는 착취도 아니고 적선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연애하기 적절한 때라는 것에 대해 몇마디만 하고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경험이 없는 어린 시절에는 사실 연애의 현실이란 지극히 단순하게 여겨 질 수도 있습니다. 예쁘고 잘생기면 게임끝이고 그렇지 못하면 절대 안된다던가 호화로운 자동차나 옷 혹은 인기를 끌 어떤 성적이나 지위같은 것이 결정적이라던가 그런 것이죠. 혹은 재치있는 말을 몇마디 잘하는 능력정도로도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구하는일에 큰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그런 것이 중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인 척 하면서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면 호감을 사기가 쉽다고 생각되기도 하며 그것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같이 무슨 부자집 2세도 아니고 잘 생기지도 못한 사람이라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도 경험이 쌓이면서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찿습니다. 재치있는 말로 자기를 속이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집니다. 세상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산다면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데이트 한 번 안하고 결혼해야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연애 경험이 풍부해야 나중에 더 좋은 연애를 한다는 말도 다 한계를 가진 말입니다. 연애란 장난이 아니고, 적어도 본의아니게 장난이 아닌 일생의 중대한 사건이 되버릴 가능성이 큰 일인 만큼 빨리 못한 것을 너무 섭섭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리고 철없고 인기 좋을 때 바로 어리고 철없고 인기좋았기 때문에 평생 후회하면서 살게 만드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연애는 사람들을 어떤 시간에 가두는 성향이 있습니다. 대학교1학년에 깊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대개 행운아이자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랑은 달콤한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기고 깨어지는게 보통이고 깨어지지 않아도 사람들을 19살에 가두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애가 곧 결혼은 아니지만 평생을 같이 할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다면 19이나 20살에 세상을 보는 눈을 고정시키면 대개 곤란해 집니다. 서로에게 너무 큰 짐이 될 수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깊은 연애는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어른이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어야 연애해도 문제가 덜 생길 때가 된 것이지요. 불장난은 바람직 하지 않고 남들의 불장난을 부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