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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의 친절, 한국의 친절

by 격암(강국진) 2015. 3. 6.

15.3.6

어느 나라나 가서 해야 하는 몇가지 기본적인 일이 있다. 통장계좌를 개설하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일이다. 가재도구를 구해야 하는 일이 있고 여러가지 가지 서류를 떼거나 등록하기 위해 관공서를 드나드는 일이 있다. 그것이 그 나라에 대한 첫번째 인상이 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나는 마찬가지를 겪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스라엘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의 친절과 한국에서의 친절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내가 한국을 떠나던 16년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등록하고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면서 내가 거듭 생각하게 된 것은 친절에는 두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시스템적인 측면과 인간적인 측면이라고 불러보자. 시스템적인 친절의 대표주자는 일본이다. 물론 어느 나라건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시스템적인 친절이란 친절한 말을 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적인 친절이란 친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사람들의 친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내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일본사람들의 친절에 대해 과연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그걸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말하자면 남을 도와주게 되어 있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끝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도와준다. 게다가 엄청나게 세세한 부분까지 도와준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여기서 살아남는 것은 너의 일이라는 식이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친절이란 무엇일까? 친절에 있어서 친절한 행동을 하는 것 이외의 것도 있다는 것인가. 있다. 인간적인 친절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으로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단지 하게 되어 있는 행동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관심을 가지고 보고 듣는 것을 의미한다. 친절에 있어서 시스템적인 것이 빠지면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시스템적인 것이 빠지고 인간적인 것이 지나치면 규칙이 지나치게 허물어져서 전체적으로 형평성이 없어진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친절에 인간적인 측면이 빠지면 겉으로는 무척이나 친절한데 실제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즉 잡다하게 말은 많은데 자세히 들어보면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니 미안하다라는 말 이외의 것이 아니다. 일이 되는 쪽으로 돌파구가 생기지 않는다. 도와주는 사람은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말하면 또 자기가 곤란해 질수 있는 것은 절대 하려고 하질 않는다. 시스템적인 친절 100%라면 그것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 설사 무릅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고 해도 친절을 느끼게 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위에서 쓴 것을 보니 마치 미국인들은 불친절한 것처럼만 오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시스템은 일본의 것에 비해서 간단한 측면이 있다. 개인의 권리와 정보보호 같은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외국인등록증같은 것을 내밀어야 하는 일본과는 다르다. 즉 메뉴얼을 잘 따라하는게 일본이라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일본은 그 메뉴얼이 점점 더 상세하고 복잡해진 느낌이다. 일본시스템에서 외국인이 전혀 도움을 받질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시스템에서는 어찌저찌 살아남는다. 그런 사회적 차이도 있기 때문에 친절의 직접적 비교는 별로 의미가 없다.  

 

물론 친절의 두얼굴을 내가 본 것은 내가 외국인으로서 외국에 살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클 것이다. 미국인이 미국인을 대하고 일본인이 일본인을 대하는 것이 외국인을 대할 때와 꼭같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의 관공서 직원들이며 은행직원 도서관 직원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 졌다. 인간적인 친절과 신뢰를 느꼈기 때문이다. 시스템적인 친절에 있어서도 16년전과는 비할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들은 참 친절하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이런 예는 아주 많다. 심지어 무섭다는 세관의 직원도 고압적으로 나오지 않고 친절하게 세금이 이러저러하게 나온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아주 고마웠다. 전주 효자4동의 동사무소 직원들도 매우 친절하게 나를 도와줬고 편의를 봐줬다. 전북도청의 도서관 사서도 친절했으며 농협계좌를 개설해준 창구직원도 친절했다. 

 

이번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동차 수입이라는 것을 했다. 그래서 자동차 통관은 물론 검사며 등록을 위해 전주의 자동차 검사소와 등록소를 방문해야 했다. 게다가 내가 가져온 차가 한국에 이제까지 2대밖에 수입된 적이 없는 차라서 직원들에게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검사소와 등록소 모두에서 나는 큰 친절을 느꼈다. 물론 그들의 일이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구나 생각하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역시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친절에 대해 말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나는 전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가 수도권이나 부산같은 대도시로 갔다면 느낌은 좀 다를 수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전주의 관공서도 물론 바쁘다. 자동차 검사소에서는 일로 바뻐서 점심시간에도 내 서류를 가지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친절한 마음으로 버틸 수 있는 정도까지 바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도시에 가면 감당할 수 없이 일이 밀려들 것이고 그러다보면 친절한 마음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결국 앞에서 말한 시스템적인 친절만 남을 뿐 인간적인 친절함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대개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유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인간적인 친절이라는게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전주는 아직 인간적인 여유가 버틸만큼은 남아있는 도시라는 이야기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전주 자동차 등록소에서 나는 난동을 피우는 노인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뭔가에 대해 항의하고 설명하면서 등록소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등록소 사람들은 몇시간이고 참을성을 가지고 그들 이야기를 듣고 뭔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은 설명을 이해할 것같아 보이지 않았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떠나 그냥 막무가내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때로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결국 그 소동은 몇시간만에 경찰이 와서 끝났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때까지 직원들은 침착했고 끝까지 친절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면 저런 일도 많아질 것이다. 언제까지 참을 수만 있을까. 나는 못참을 것이고 짜증이 날 것이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게 된 것은 직원은 친절했지만 이따금 친절하지 못한 시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친절이란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지속적으로 참고 친절하게 구는데 다른 쪽은 그렇지가 못하면 곤란하다. 무슨 상전이 머슴대하듯 구는 것이다. 마치 자기 딸 대하듯 반말을 하면서 뭔가를 요구하는 행동은 직원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것같았다. 

 

몇가지 걱정스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느낀 한국인의 친절, 전주의 친절이 한국이 희망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친절한 인간들에겐 희망이 있다. 친절한 인간들이란 세상에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희망을 가지면 희망은 생기는 법이다. 좋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친절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16년만에 흉한 이야기만 자주 듣다가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한국과 전주는 좋은 나라고 좋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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