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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애기애타 뮤지컬 더 원 그리고 그 의미

by 격암(강국진) 2015. 3. 8.

15.3.8

전주 덕진동에는 청소년 문화의 집이란 곳이 있다. 여기서 주관하는 행사에는 청소년 희망프로젝트 애기애타 뮤지컬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학생들을 모아다가 뮤지컬 연습을 시키고 그것을 공연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학생들을 폭력에서 부터 치유되도록 한다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다. 

 

 

 

 

 

아이들은 부모들을 세상과 이어지게 한다. 어제는 그런 것을 새삼 다시 느끼는 날이었다.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갑자기 학교에서 어떤 무료공연에 가라고 권했다는 말을 하는 것에서 일은 시작 되었다. 마침 수원에서 온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기도 해서 나는 온가족과 함께 그 공연을 보러 갔다. 그 공연이 뭔지도 잘 모르는 가운데 관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주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 

 

댄스컬 더 원 이라는 공연은 3월 7일에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2회 공연되었다. 김재학, 김동진, 정민혁, 김요셉, 서영진, 김승민, 김재혁, 송대연, 이상인, 전현성, 김영빈, 이가람, 최용민, 최신영 그리고 박치형등 15명으로 이뤄진 출연진은 몇가지 무대를 준비해서 춤과 연기와 노래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공연에 앞서서 경찰서장의 인사말이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도자들의 인사말이 있기도 해서 어떤 교육프로그램의 졸업식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공연장에 도착해서야 나는 이것이 애기애타 프로젝트의 발표회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어떤 발표인가를 알게 되자 나는 열심히 박수를 치면서 공연을 봤지만 한편으로는 공연을 보는 내내 문맥과 의미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이 학생들이 이런 공연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이 어떻게 학생들을 도울 수가 있다는 것인가? 학생들은 정말로 이 공연을 통해서 도움을 받게 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이런 프로젝트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두가지가 있는 것같다. 하나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출자들과 그리고 다른 출연진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고 소속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뭘 하건 학생들은 뭔가를 하면서 어딘가에 소속되게 된다. 그 어딘가라는 것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만 특이한 사람인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소속을 가진다는 것은 안정감을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두번째로 공연을 준비하고 발표한다는 것은 그 출연자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관점과 문맥에 따라 좀 달라지기는 하지만 공연이라는 행사에서 그 중심에 서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출연자들이다. 사람들은 출연자의 연기와 노래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을 위해 무대를 준비한다. 또한 공연의 관람객들은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다. 이것은 그들의 공연이기 때문에 이 공연에 관한한 그들은 그저 관람객1이나 공연장 바깥의 누구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은 종종 육체적인 아픔보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육체적으로 회복이 가능한 상처라면 그렇다. 이런 경우 육체는 비교적 빨리 회복되지만 정신은 간단히 그렇게 되지 않는다. 폭력에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의 느낌, 나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의 느낌, 남의 선택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도록 강제된 것이다. 설사 이제는 그런 폭력에 다시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세상의 어느 일부가 다시 나에게 그 의지를 강요할 수 있다는 공포나 생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더이상 나는 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인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무대요 공연이라고 보면 나는 그저 방관자이며 있으나 없으나 이 세상이라는 공연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 무의미함에 대한 흔한 반발은 나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나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나 없이도 굴러가는 것 같은 이 세상에 발을 걸고 나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끔찍한 경우는 자살이나 자해와 같은 형태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은 무의미한 존재로 계속 살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기회를 줄 수가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공연을 봐주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들은 다시 한번 자신들이 이 세상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혹은 생각을 하는 것에는 다 어느정도 이런 효과가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세상을 이렇게 보고 느꼈다라고 쓰는 것이다.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기는 것은 무대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어떤 세계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는 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집을 짓고 나의 정원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측면에서 그것은 공연보다 더 좋은 것도 있다. 내가 보고 들은 세상의 어떤 측면을 글로 써서 남김으로서 나는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연은 공연이 끝나면 고작해야 비디오로만 남는다. 하지만 글이나 그림은 설사 누가 그것을 보고 평가하지 않아도 나 혼자고 보고 즐겨도 나의 표현으로서 세상에 남는다. 나는 글과 그림의 창조자이며 주인이다. 자신의 세계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고 외로움을 견디기 보다 쉬울 것이다. 

 

전주에 와서 좋은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어 기뻤다. 일단 출연진들이 멋져 보였다. 그들은 어딜 봐도 주인공처럼 멋져보였다. 희생자같은 그늘은 잘 보기 힘들었다. 그들을 도와서 연출을 한 사람들도 멋져 보였고 공연에 참석해서 갈채를 보내는 관객들도 멋져 보였다. 세상이 그리고 도시가 멋져보이는 것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하나의 도시는 비빔밥이나 치즈로 유명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 표면 뿐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에는 존경할만하고 사랑스러운 시민들이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랑스러워야 그들이 가진 것도 가치가 있어 보이는 법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더 가치 있는곳으로 만드는 이런 행사에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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