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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 사는 사람의 서울 구경

by 격암(강국진) 2015. 8. 17.

나는 서울출신이지만 대학을 포항에서 다녔기 때문에 서울을 별로 다녀본 곳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는 외국으로 나가서 16년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관광을 다녀왔다.


아침 5 25, 차를 익산역 주차장에 세워두고 우리 가족은 용산역을 종점으로 하는 무궁화호를 탔다. 차는 8시반에 용산에 도착했다. 1 2일동안 우리가 서울에서 둘러본 곳을 나열해 보자면 경복궁, 민속박물관, 북촌, 인사동, 교보문고, 대학로, 명동, 남산 정도다. 우리는 잠은 용산역 바로 앞의 찜질방에서 잤다. 나는 민속박물관이 아주 잘 만들어진 것에 감탄했고 남산타워의 야경에 감탄했다. 북촌의 떡볶기 집도 재미있었고 수영장이 딸린 찜질방도 재미있게 즐겼다. 



우리가 본 서울은 물론 아주 작은 일면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이 글에서 서울이 이렇다라고 말했을때 그것은 내가 이번에 본 서울이 이렇더라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내가 보지 못한 곳이 서울의 진면목일 가능성은 아주 크다. 나는 아무래도 관광객처럼 서울의 일부를 돌아다녔을 뿐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서울 여행은 즐거웠다. 그리고 서울이 좋은 곳이라고 나는 느꼈다. 나는 서울에 또 가보고 싶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아주 많이 그렇지는 않다. 나는 한편으로 찜찜함을 느꼈다. 좋은데 뭔가가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했는데 왠지 그 모습은 화장발일 것같고 대화의 내용이 좀 단순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길게 못만날 것같은 느낌이랄까. 서울은 활력과 미래같은 것이 좀 부족해 보였다.

 




서울에는 좋은 것이 가득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예측을 넘는 의외의 것이 있는 느낌이 줄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모든 것이 너무 새 것이었기 때문이다. 낡기만 한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새 것과 헌 것의 조화라고 말하기에는 서울이 보여주는 것이 너무 반짝거리는 새 것밖에 없다.

 

긴 역사를 말해주는 낡은 의자며 간판에서 우리는 때로 힘을 느낀다. 역사는 짧은 수명을 사는 우리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것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느끼게 하는 곳에 서면 이곳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곳이 아니며 미래에도 계속 되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50년된 벤치만해도 그곳에 누가 앉았을까 하는 생각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런데 서울은 새로운 것으로만 뒤덮여서 그런 힘을 오히려 잃은 것같다. 말하자면 돈만 들이면 서울같은 도시를 금방 또 하나 세울 수 있을 것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사동을 보자. 인사동은 20년전에 비하면 화려해졌지만 오히려 싸구려 쇼핑몰같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를 느끼게 하는 힘은 줄었다. 우리는 흔히 이걸 상업화가 그 지역의 정체성을 지워버렸다고 표현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새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왕 새로운 것이라면 미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 만들어진 것들에서도 나는 별로 그런 것을 느끼지못했다. 창의력이 넘치는 새로움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이미 식상해진 것들을 따라한 듯한 새로움이랄까.

 




대학로는 여전히 야외공연도 하고 연극공연도 하고 있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 진면목을 느낄 만큼 오래 머물수는 없었다. 수십년전 아직 한국이 세계를 알지 못할 때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선진문화를 소개한다는 뜻도 강했다. 지금은 어떨까. 환경이 변했으니 대학로도 새로운 역할을 찾았을까? 소극장들이 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벗기는 연극만 있다는 불만도 들은 적이 있다. 21세기에 공연 문화는 어떤 의미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신과 문화를 파는가 아니면 뻔한 소비 상품을 파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잠깐의 거리방문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고 가치다. 우리가 물자가 흘러넘치는 도시에 가더라도 그저 그것에서 멈추면 그 도시는 타락과 방종을 상징할 뿐이다. 도시는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가치와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어매리칸 드림이라고 말해지는 미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자유주의와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런 정신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더 그 도시와 국가를 사랑하게 된다.

 




한국은 민주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스런 역사로 공식화하는 일은 합의되지 못했다. 여전히 이승만과 전두환, 박정희를 자랑스런 역사로 여겨야 한다는 사람들이 여당을 하고 있는 세상이니까. 누가 옳던지 간에 어쨌건 정신은 분열되어 있고 따라서 정신은 없다. 정신이 없으면 도시는 그저 소비의 장소일 뿐이다.

 

한국은 전통과도 단절되어져 있다. 본래 불교의 나라였고 유학의 나라였던 한국은 이제 기독교의 나라에 가깝다. 과거는 숨어들었거나 단절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습과 사치로 얼룩진 한국기독교가 세계에 뭘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통도 아니고 새 것도 아니라는 평가는 여기서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일본에서는 아사쿠사라는 신사와 온천문화가 일본적인 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유럽은 그들의 역사를 자랑하고 미국은 그들의 정신을 자랑한다. 한국은 그게 뭐가 되었든 자신감이 없고 자기가 분열되어 있는 것같다. 전통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고 즐기는 것같지 않고 한국을 바꾼 개혁정신에 대해서도 미적지근하다.



 


새마을 운동같은 것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인가. 나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질 않다. 오히려 중국의 대재앙이었던 문화혁명같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반공을 강조하는 여당이지만 사실 그들의 문화는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공산당 스럽다. 재미없다. 새마을 운동이나 마을만들기 운동이나 현실에서는 그게 그거 일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정신이 그 뒤에 있는가가 뭔가를 아주 재미없게 만들기도 한다.

 

정신적 정체성을 말한다고 해서 꼭 일사분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가지 다른 것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 자체가 문화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나라는 아니다. 다양성에 있어서 오히려 서구나 일본보다 더 떨어진다. 지금의 한국은 다양성에 대한 관용은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합의도 없다. 그것이 한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을 북한처럼 재미없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만든다.




 

나는 북촌마을의 떡볶기며 용산역앞의 포장마차들이 재미있었다. 남산의 야경이 좋았다. 서울에 좀 더 머문다면 서울만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좀 더 찾을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경은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멸종하는 쪽인 것같다. 그런 것들이 밀려나고 고급 옷가게나 커피숍이 채워지면 서울에서 나는 뭘 보게 될 것인가. 그저 거대한 쇼핑센터 그것도 체인점으로 어디 다른 곳에 가면 똑같은 곳이 있는 그런 곳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서울 여행이 좋았던 점이 많았는데도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를 나는 몰랐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정신적 공허함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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