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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한식의 맛과 형식

by 격암(강국진) 2015. 9. 20.

얼마전에 나는 내가 마음에 든 몇개의 식당들을 정리한 적이 있다. 한국에 살게 된지 반년이 넘어가자 그런 식당들이 하나 둘씩 늘어서 그렇게 해둘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일을 하면서 나는 좋은 가게란 어떤 가게인가라던가 전주의 맛 나아가 한국의 맛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굳이 맛집으로 한식집을 고집할 생각은 없지만 음식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 때 좋은 음식점을 고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끝에 떠오른 것들을 여기 적어둔다.


우선 왜 한국맛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해야 하는가 부터 시작해 보자.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러저러한 것은 한식이니까 이대로 지켜야 한다던가 이것에 대해서는 잘난 척을 하자던가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폐쇄적이 되기 위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서있는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다. 한식은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누구나 한국의 대표 음식이라고 말하는 김치만 해도 우리가 천년 이천년 먹던 음식이 아니다. 고려시대의 김치에는 고추가루는 물론 젖갈도 육류도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고추는 조선중기 임진왜란 이후에나 일본에서 수입되어 김치에 넣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폐쇄적으로 한식의 형태를 고집했다면 우리가 즐기는 김치도 부대찌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한국의 맛이 뭔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변해왔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더욱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다. 우리는 계속 변해 왔지만 우리가 서있는 곳을 알아야 우리가 뭘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 된다.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가 비웃는 꼴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집에 자동차 세워놓고 남이 자전거 타는 거 보고 부러워 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다시 한발 한발 걸어서 다음 단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추상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국의 맛이란 무엇일까라는 것을 고민하면 나름대로 참신한 시각을 가지게 될까? 좀 생각을 해보니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찌개가 카레와 비슷하다라는 것이고 한식과 유럽의 음식의 형식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것들에 대해 써볼까 한다.


한국의 찌개와 인도의 카레


우리는 찌게와 카레에서 공통점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도의 대표음식이라고 물으면 당연히 그건 카레라고 말하는 사람도 한국의 대표음식이 뭐냐고 할때 찌게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것이다. 나역시 무조건 찌개와 카레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같은 것도 있고 차이도 있다. 다만 그렇게 볼 때 한식이란게 이런거구나 하는것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음식의 특징이 뭘까. 그건 무엇보다도 복잡한 양념을 써서 맛을 낸다는 것이다. 한국의 음식과 매우 대조적인 것이 일본의 음식이다. 일본의 음식은 종종 재료가 가지는 맛의 순수성을 추구한다. 즉 된장이면 된장, 간장이면 간장으로 생선이면 생선으로 재료의 맛을 단순하게 추구한다. 재료를 다양하게 넣고 그것을 발효시키거나 끓여서 하나 하나의 맛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융합시키는 한국의 맛과는 다르다. 


그래서 일본의 대표음식인 스시는 결국 생선을 그저 썰어 놓은 것이 전부인 음식이다. 일본의 우동도 한국의 잔치국수나 냉면을 생각하면 면에 뭘 많이 넣어먹지 않는 단순한 음식이다. 물론 이것은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고려했을때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에도 냄비우동이 있고 한국사람도 고명을 첨가하지 않는 라면을 김치도 없이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국의 맛이 훨씬 복잡하며 이것은 일본의 나베를 먹고 그것과 한국의 찌게를 비교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단순히 맵다 아니다가 아니다. 


이것이 한국음식의 어려움중의 하나다. 한국음식의 핵심적 비결은 할머니들이나 어머니들이 갖은 양념을 적당히 넣는다라는 한줄에 들어 있다. 그게 핵심인데 워낙 집에서 요리하시던 분들은 어렸을 때 부터 여러가지 양념을 감으로 집어 넣어왔기 때문에 그건 요리의 핵심적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한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국인인데 찌개 같은 것을 만든다고 할때 도대체 그 갖은 양념이 뭔지, 뭘 언제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 한식만들기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서 그 맛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제대로 레시피도 만들어 지지 않은 한국의 음식은 그냥 통째로 잊혀지게 될수도 있다. 


한국요리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김치다. 여기저기에 김치나 김치국물을 넣으면 맛이 김치화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김치를 넣어 만드는 김치전이나 김치찌게는 만드는 법이 아주 간단한 것같지만 실은 김치의 맛이라는 것이 원래 복잡하다. 치즈처럼 재료를 하나 선택하면 거기서 맛이 나오는 것과 많이 다르다. 김치 자체가 매우 복잡한 요리다.  


그런데 김치에 무지한 일본 사람들은 김치를 단순하게 배추를 절이고 고추가루를 친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일본 사람이 만든 김치는 그 맛이 굉장히 단순한 경우가 많다. 지금이야 맛있는 김치가 한국에서 만들어 지니까 그런 김치를 만나면 이건 김치가 아니야라고 생각하지만 언제까지 그럴런지는 모른다. 김치에 대한 의식이 단순할때 우리는 김치를 폄하하고 그것을 잃어버릴때도 뭘 잃어버렸는지를 모르게 될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김치는 절인배추에 고추가루 뿌린 것에 불과하다면서 맛없는 김치를 먹고 역시 김치는 원래 맛이 없는 음식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양과자를 만드는 사람은 전문가 혹은 장인처럼 생각하면서 우리 김치를 만드는 사람은 단순노동자로 생각하는 식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말이다. 김치는 그저 갖은 양념에 절인배추를 버무린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국음식의 또다른 측면은 밥과 약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구분이 약하다. 일전에 한 일본인 교수가 나에게 홍삼액기스를 선물로 받으면서 몸에 좋다라는 말에 웃은 적이 있다. 한국사람들은 선물을 줄때 몸에 좋다라는 말을 참 잘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은 참 몸에 좋은거 좋아한다. 


우리가 한약이라고 부르는 전통의 약도 가까운 일본에는 거의 찾아볼수가 없다. 한약먹는 일본인은 찾기 힘들다. 그대신 일본에는 아직도 접골원이 여기저기에 있다. 여기저기에 아직도 한약방이 있는 한국의 풍역은 매우 한국적인 것이다. 매우 한국적이랄수 있는 음식에는 삼계탕이 있다. 여러가지 재료를 섞었을 뿐 아니라 그저 달고 짠맛이 아니라 한약재료가 내는 그 쌉살한 맛이 매우 한국적이다. 삼계탕은 스프도 아니고 닭을 먹는 찜요리도 아니며 단순히 닭죽도 아니다. 매우 한국적인 것으로 자랑할 만하다. 


한국음식의 특징에 대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기 보다는 이제 이쯤에서 카레를 보자. 카레는 본래 여러가지 향신료를 복잡하게 써서 만들어 먹는 것이다. 인도 사람은 낭이라는 빵과 카레를 같이 먹지만 우리가 익숙한 것은 밥위에 카레를 얹어놓은 카레라이스다. 어느 쪽이든 카레라이스에서 카레빼고 밥빼고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남는게 없으니까.


그런데 한국사람은 워낙 밥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모든 음식이 기본적으로 반찬이다. 즉 밥과 함께 먹는 식이다. 밥과 함께 뭘 먹는가. 우리는 불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생선찌개를 먹을 수도 있으며 김치를 먹을 수도 있다. 이런 풍경에서 우리가 뭘 먹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번 더 할 때 나는 소고기를 먹었다라던가 생선이나 배추를 먹었다라는 답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나는 여기에는 일정정도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이 글의 문맥에서 말이다.  


소고기나 생선이나 배추를 먹을 만한 한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복잡한 양념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것의 기본은 밥이다. 따라서 밥과 양념은 그저 당연한 것, 사소한 것으로 생각해서 거론할 필요도 없고 주인공으로 소고기니 생선이니만 거론한다면 그것은 한식을 먹는 기괴한 방식이다. 중요하고 고마운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질 않는다. 그것은 떡복기를 먹고 떡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소고기가 들어간 카레라이스를 먹고 소고기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요리를 먹으면서 요리사에게 감사하지 않고 이건 고기니까 누가 만들어도 맛있을거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랄까. 이런 방식이면 우리는 한식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이 없게 되지 않을까?


카레와 찌개가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식을 보면 뭐가 맛있는 한식을 만드는 가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지게 된다. 그냥 비싼 생선이나 고기가 한식의 맛을 만드는 게 아니다. 조상들이 대대로 개발한 찌게 만드는 법이 찌개를 맛있게 만드는 것이다. 재료가 좋으면 일본의 나베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나베를 먹으면서 내가 한국인이라서 기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찌개의 맛을 모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은 균형잡힌 맛의 기반을 살리는 능력이다. 일단 찌게의 기본이 잘되어 있으면 거기에 뭘 넣어도 다 맛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 진짜 맛있는 한식이 보존되고 발전되지 않을까?



한식의 형식, 유럽음식의 형식


얼마전에 일본의 허름한 식당에 대한 착각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료의 가치와 요리의 기술을 엄청 짜게 평가 하죠 특히 한식에 많은 반찬을 바라며 만원 짜리 한장 쓰기 아까워 하면서 삼사천원 짜리 수입산 소고기를 시급 칠천원 짜리 알바가 구워도 맛있다며 삼사만원을 투척하는 사람들의 미각이 문제죠.... (변종목)


내가 쓴 글의 내용과는 연결점이 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좋은 댓글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좀 바뀌어야 하는 음식문화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맛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한국사람을 좀 변명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유럽에 가서 식당에 들어간다고 해보자. 나같은 사람은 꽤 당황하게 된다. 엄청난 돈을 쓸 수는 없고 식당도 별로 그럴 식당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메뉴는 우리가 익숙한 단품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코스요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체, 스프, 메인메뉴, 후식같은 것들이 따로 따로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서 뭔가 어떤 형식을 따라 먹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웨이터도 그런 식으로 물을 자세다. 그런 식당에서 다른 거 다 빼고 한가지만 시켜 먹고 나올때에는 왠지 찜찜하다.


그런데 이게 유럽음식의 형식이다. 프랑스음식이나 이탈리아 음식에는 그 나름의 형식이 있는 것이고 그 형식대로 먹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훌룡한 문화적 유물인 동시에 현대사회와 유럽의 전통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들은 피자헛이나 맥도널드처럼 간편하게 먹는 것은 제대로된 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대인들은 간편하고 싼 것이 좋다. 적어도 그럴때가 많다. 과거의 형식에 매달리면서 음식값 경쟁을 하면 음식이 전반적으로 질이 떨어지게 된다. 맛없는 스프나 디저트는 애초에 주지 말고 돈을 덜 받았으면 하고 느낄 때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식에는 한식의 형태가 있다. 우리는 전라도처럼 수십가지 반찬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5개 7개의 반찬을 늘어 놓아야 대접을 대접같이 했다고 생각하는 전통이 있다. 밥에다가 반찬 한가지 덜렁 주는 식사는 비록 그 반찬이 비싸고 맛있는 것이라고 해도 한국식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한식의 형식도 물론 현대생활과 충돌한다. 가격은 소득수준에 맞추지 않을 수 없으니 너무 비싸면 안되는데 반찬을 죽 늘어놓으려고 하면 질이 떨어지고 잘 먹지도 않는 것도 잔뜩 주기가 쉽다. 그래서 전통적 한식의 형태에 매달리는 것을 비판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진짜로 공평하게 말한다면 전통은 전통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현대생활과 어떻게 공존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이것은 틀렸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반찬류는 부페식으로 중앙에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덜어 먹게 하는 곳이 꽤 있다. 이렇게 하면 다양한 반찬을 제공하면서도 반찬의 낭비를 줄일 수가 있다. 만약 자기 눈에 안찬다고 해서 이런 저런 작은 반찬들을 모두 배척한다면 그런 것들은 한식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콩자반이라던가 깻잎무침같은 것을 메인메뉴로 내는 집은 없다. 대부분의 젓갈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음식들이 한식에서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식은 그런 작은 반찬이 모여서 완성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스테이크 한장 덜렁 구우면 훌룡한 식사라고 생각하지 않는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한국사람은 유럽사람이 그렇듯이 그냥 전통에 익숙할 뿐이다. 우리는 바뀌어야 하지만 남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에게 너무 엄격할 필요도 없다. 편하고 싼게 꼭 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뭐가 전통인지, 뭐가 현실인지를 고민하고 여러가지 답을 다양하게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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