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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신도시 택배논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18. 4. 22.

요 몇일 다산신도시 택배 논란이 시끄럽다. 정부가 택배회사와 아파트주민간의 협상에 끼어든 결과 실버택배를 실시하고 정부가 보조를 해주기로 했다가 강한 여론에 떠밀려 뒤로 물러나는 일도 있었고 연일 그에 대한 기사에 주민들을 비판하고 나아가 거의 저주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나는 대다수 네티즌들의 비판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산신도시 택배문제 (아래에서는 다산문제라고 줄여서 말하겠다)의 기본은 이유가 뭐가 되었건 간에 집은 개인의 소유이며 그로 인해 생기는 비용은 그 개인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옳지 그것을 택배회사에게 전가하거나 사회에 전가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분양된 아파트가 좋아서 가격이 폭등한다고 해서 그 이익을 지역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다산신도시 주민들을 비판하는 것인데 기사에 따르면 그 비판에 대해 엉뚱한 답변만 늘어놓은 주민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나의 사안은 그와 관련된 다른 사안들이 있고 또 같은 사안이라도 다른 차원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사실 이런 측면들이 많은 사안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논의될 가치가 작은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사실 다산문제란 단순히 다산신도시 아파트단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어준은 그의 프로그램 뉴스공장에서 다산문제의 본질은 건축회사에게 있다는 주장을 폈다. 시공사라는 중요한 요인이 망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민들은 이런 엉터리 건설을 한 건축회사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고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그것이 다산문제의 첫번째 기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사기를 당했다는 이유로 그 사기의 피해를 제 3자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지적 자체는 옳다. 잘못은 시공사가 한 것인데 그로 인해 생기는 피해를 보상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니 주민들은 그걸 또다른 곳에 전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 나오는 댓글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다산문제의 본질을 갑질로 이해하고 있는 것같다. 즉 힘이 없는 택배기사들이 건당 몇백원을 받을 뿐인데 그들에게 말도 안되는 노동을 강요하는 갑으로서 다산신도시 주민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애초에 다산신도시택배 문제를 크게 알렸던 원인이 주민회에서 만든 택배기사 대처 요령이었다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세상에는 언제나 문제들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이 안내문안에 들어있는 정신으로 해나가자는 발상은 추악하기 짝이 없다. 왜냐면 1차적 고생은 결국 택배기사들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민들로서는 자신들은 '택배회사'와 싸우거나 협상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회사와 직원은 같은 것일까? 왜 주민회나 택배회사라는 고래들의 싸움에 택배기사들이 우선 어려움을

 겪어야 할까. 왜 주민들은 애초에 이런 식으로 설계를 해서 문제를 만들어 낸 건설회사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택배기사들을 윽박지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공고를 내보내는가. 이건 돈은 식당사장이 버는데 거기 알바생에게 갑질하면서 욕하고 무릅꿇으라고 하는 갑질 손님이 하는 짓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런 식의 일처리가 보편화되면 한국 사회의 많은 곳에 있는 말단 직원들이 고래싸움에 당하게 된다. 그것이 사실 갑질의 본질이다.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들을 힘없는 사람들에게 떠밀어 해결하라고 약자인 너희들이 당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갑질이 아닌가. 다산신도시 아파트 주민회에서 내놓은 최고의 품격과 가치라는 말은 그들의 이런 품위없는 게시물과 함께 인터넷을 뜨겁게 했다. 특히 그들도 어디가면 갑질을 당할 처지의 보통사람들이라는 말이 많았다. 이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그 둔감함이 다산신도시 주민들로 하여금 꼭 그들만의 문제도 아닌 것을 혼자서 다 뒤집어쓰게 만들고 있으며 국민들의 도움도 얻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들은 그들이 택배기사들에게 한 말들이 깡패짓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떤 정당성을 늘어놓는 것은 점점 더 사안을 나쁘게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다산문제는 다른 측면들이 있지만 나는 이런 지적들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측면들이 적어도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국에 외부로부터 고립된 공간을 가지는 마치 성과같은 아파트 단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들어가는 것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은 물론 사람도 제약된다. 보행자가 걸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라고 해도 거리에서 자연스레 단지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는 구조를 가진 아파트들은 많다. 이렇게 되면 일부러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면 가기가 번거롭고 아파트 내부의 공간은 주민들 전용공간이 된다. 애초에 이 다산문제는 아파트가 개방형이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더 외부인이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아파트들이 늘어간다. 그런 구조가 만들어 내는 결과 중의 하나가 자동차 진입금지다. 


그런데 성처럼 폐쇄된 공간으로 만들어 지는 아파트단지는 과연 도시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일까? 그 주민들에게도 좋기만 할까? 내가 두고 두고 언급하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만들었던 사건이다. 그 벽때문에 임대아파트 아이들은 통학을 할 때도 빙 둘러가야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성처럼 폐쇄된 구조를 가진 아파트를 만들고 그것을 "최고의 품격과 가치"로 선전하는 것에는 이런 차별과 분리를 찬양하는 정신이 들어 있지 않은가? 즉 아파트 내부의 공간을 주민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 높은 안전과 더 좋은 사회적 접촉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주민들에게도 그리고 거기 살지 않는 주변 거주민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많다.  다산문제가 가지는 또하나의 중요한 본질은 여기에 있다. 만약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모여서 자기들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애초에 그들끼리 정말로 거대한 성을 쌓고 그들끼리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 효과가 중요하다. 빌게이츠도 자기 전용 지하철을 깔아서 쓰지는 않는다. 성을 만들어 그 안에서 생활하면 그 안의 생활을 아무리 좋게 만들어도 결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난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생긴다. 택배가 어렵고 배달이 어려운 것은 그 한 예다.


아파트가 열린 구조이면 아파트 주변의 상가와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당연히 주변 상가도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그런데 폐쇄형으로 만들면 주민들은 바깥으로 나오질 않고 나올 때는 차를 타고 슁하고 멀리 가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내부의 상가들이 잘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 구조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명하다. 결국 제약된 구조를 유지하면 발전은 정체되고 그로 인한 불편과 비용이 증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담장을 높이 쌓아 올린 작은 성안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불편과 비용을 무릅쓰고라도 그렇게 살고 싶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불편과 비용이 생기니까 그걸 주변 지역사회로 전가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이 성과같은 아파트 단지들은 마치 한국안의 외국처럼 한국 사회를 이익을 빨아들일 자원처럼 여기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그 안쪽에는 청정구역을 만들고 바깥으로는 오염물질을 내보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너희들도 원하면 우리처럼 살라고 말하는 식인 것이다.


성처럼 폐쇄된 아파트 공간을 설계한 사람들은 이런데도 그걸 선전한다. 그러면서 그것의 좋은점들만을 말하고 나쁜 점들은 숨기려고 한다. 그런 것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한다. 택배기사들이 차를 쓰지 말고 배달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의 배후에는 이런 진실이 있는거 아닐까? 그런데도 여기저기 폐쇄가 늘어만 가고 있는 것같지 않은가? 아니 솔직히 우리중 다수는 우리도 그런 성처럼 폐쇄된 아파트에서 안락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자연스레 임대주택 주민들은 범죄자처럼 여기면서? 이러니까 다산문제가 단순히 아파트 단지 하나의 문제가 아닌것이다. 늘어나는 폐쇄속에서 도시가 망해갈 수 있다. 


또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자동차 없는 거리의 문제다. 자동차는 아주 많은 문제들을 만든다. 보행자에게 위협이 되고 이웃과의 소통을 막는다. 물론 공기의 질도 악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의 통행을 막으려는 시도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이것은 아파트란 주제를 넘어서는 범위에서 일어난다. 서울시장 박원순이 하는 말에서도 차없는 거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 자동차의 통행을 막으면 당연히 좋은 것도 있지만 문제도 생긴다. 그걸 다산신도시 아파트 주민회처럼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는 결코 차없는 도시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 치뤄야 할 비용은 내야하고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며 무엇보다 비용과 불편함의 증가를 막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실버택배는 그런 해결책으로 나온 것중의 하나다. 


우리는 더 쾌적한 삶을 살고 싶다. 여러번 소개한 다산 신도시 아파트의 선전문구처럼 사실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달성하고 싶다. 우리는 삶의 질을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이루는 방법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사회적 이익을 외면하는 것이라면 그런 방법은 통할리가 없고 통해서도 안된다. 결국은 그건 사회전체로 보면 품격의 추락이고 가치의 추락이 된다. 


나는 우리가 충분한 창의성이 있고 다산신도시 아파트 주민들도 대부분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답은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관행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민회나 건설회사처럼 집단이 되면 그 집단을 지배하는 사람중에는 생각없는 사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생긴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지름길을 찾으려고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처럼 말이다. 어디서나 그런 사람들이 문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잘 배제하는 노력또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회같은 방패의 뒤에 숨어서 착취의 이득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만다. 결국 욕먹어 마땅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착취당하는 식민지의 아픔을 외면하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생긴 본국의 안락함을 즐기는 사람이 내가 무슨 죄가 있냐고 말한다면 그건 옳은 말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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