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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믿을 수 있다는 당신에게

by 격암(강국진) 2018. 3. 27.

"도저히 북한은 믿을 수 없다"는 당신에게라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를 쓴 신은미씨는 재미교포로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여행기를 책으로 내기도 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 책에 관련한 북콘서트에서의 발언으로 종북으로 몰리기도 했는데 이에 관해서는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앨리스 죽이기라는 다큐영화가 나왔다고 한다. 


ⓒ 신은미


신은미씨의 기사를 읽고 나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것만으로는 글을 쓸 정도의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를 앞에 두고 있다. 어쩌면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자유왕래가 가시권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럴 때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주제는 확실히 중요한 주제이며 입장을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선전과 감성의 홍수속에서 어디로 떠내려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 속에 나오는 북한포비아를 퍼뜨리는 종편언론이나 보수정권에 대한 지적은 물론 옳은 것이며 그녀의 기사에 나온 내용들은 다 유익하며 좋은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접근과 메세지는 남북간의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대부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녀가 쓴 것이나 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쓰지 않고 보지 않는 것에 있다.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그녀의 글은 북한에 대한 감성적 호감과 남한에 대한 선입견으로 차있다. 북한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는 글이 사실은 남한에 대한 선입견으로 차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표는 북한을 지배하는 호전적 세력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신은미씨는 그녀가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지적하려고 한다. 사실 그녀는 외교관이 아니라 북한 관광객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남한의 대표역시 종편언론이나 보수정권이 아니라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남한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을 무시하며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북한을 믿고 있을거라거나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순진하고 착하며 약속을 잘 지키는 북한 사람들을 무지하고 편견에 찬 남한 사람들이 믿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라고 말하는 것같다.


사람은 단순히 믿는다와 믿지 않는다는 이분법으로 설명되어 질 수 없다. 이 이분법적 사고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면 이분법적 사고는 곧잘 너는 한국정부는 믿지 않고 북한 사람은 믿으니 종북이구나 하는 식의 결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신은미씨가 이런 사고의 희생자였다고 들었다. 그녀가 희생자였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그녀의 글을 읽어보니 그녀쪽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싶은  접근이 보였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본래 인간을 믿을 수 없다. 어떤 의미와 문맥에서 우리는 인간을 언제나 믿어야 하며 믿을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 반대도 다른 문맥에서는 참이다. 왜냐면 인간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며 어떤 사람들은 특히 매우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한에서도 그런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본다. 


예를 들어 신은미씨를 종북으로 몰았던 종편방송이나 보수정치세력의 정치가들을 신은미씨나 신은미씨가 글을 기고하는 오마이뉴스의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신은미씨가 겪었다는 고통을 통해서 그녀나 오마이뉴스는 그들과의 차이를 느꼈을 것이며 우리는 그들을 믿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여러가지 사회적 비극을 양산했다고 느낄 것이다. 나도 아직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박사모나 박근혜와 이명박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또다른 것도 믿는다. 내가 싫어하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도 대부분 개인적으로 이웃으로 만나면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며 때로는 좋은 사람 아주 가끔은 아주 좋은 사람들이기도 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전두환도 이웃집 아저씨로 만났으면 그냥 좋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현정부를 지지하는 나같은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그냥 사소한 비극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해방이래 반세기동안 지독하게 겪어 왔다. 


그런데 겨우 남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이 차이때문에 세상에는 못믿을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38선 이북의 사람들은 선량하고 착하며 우리와 다를게 없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사상이나 종교란 무서운 것이다.  남과 북과 같이 오랬동안 대치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는 서로를 의심할 이유가 충분하다. 북한도 남한에 대해 그렇게 말하겠지만 우리는 도저히 북한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할 이유가 있다. 그건 북한 지도자의 사진을 존영이라고 부르며 사진에 비만 내려도 어쩔줄 몰라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의 마네킹을 가지고 화형식도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잡혀가서 처벌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대중은 어리석고 조종당하기 쉬워서 이유없이 북한을 믿지 못하는게 아니다. 미국이 무조건 선이라고 믿으며 미국국기 흔드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아주 소수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통해서 그리고 지금 밝혀지는 보수정권의 정치공작에 대한 수사를 통해서 그걸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일베같은 사이트의 포스팅을 보고 와서 한국인 전체에게 도촬이나 성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훈계한다면 이것은 한국인들 대부분에게 모욕이다.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글을 쓰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제대로된 목표를 두들기고 있는지 아니면 허공에 존재하는 상상의 허수아비를 두들기고 있는지 조심해야 한다. 선입견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런 일을 하기 때문이다. 


북한 대중이 선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그것을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 알지 못할 거라는 오만과 편견에 기초한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산가족들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때가서 한번 보라. 그런 태도가 얼마나 헛된 허수아비를 두들기는 것이었는지. 한국인들은 북한 사람들을 선하게 느끼며 가족으로 느끼고 돕는데에 있어서 용감하다. 다만 현명하게도 환상을 가지지 않을 뿐이다. 태극기를 들고 몽둥이를 든 보수단체들에게도 한계를 느끼는데 3대를 세습해서 내려온 정권밑에서 지배되어 온 사람들의 한계를 느낄 뿐이다. 전두환도 하는 짓을 북한 사람은 못할 것이라고 믿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진정한 신뢰구축은 오히려 이렇게 우리가 서로 다르며 당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고민할 때 만들어 진다. 짐승의 교배와 인간의 사랑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느끼고 알아가려고 하는데 눈치없게도  '아따 이처녀 엉덩이도 튼실하고 더 볼것도 없구만. 빨리 합방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사랑을 촉진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사랑을 깨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남과 북이 만나게 되면 보나마나 문화적 충격이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나 똑같다는 것에 우리는 신기해하고 감동할테지만 작다면 작은 차이도 마치 손톱밑의 가시처럼 우리를 아프게 할 것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사소한 말투나 버릇때문에 니가 나를 무시하니 미워하니 하고 싸우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북한을 미워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면 비극이 생길 것이다. 남한의 역사를 돌아보라.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그 역사를. 우리는 그걸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말이다. 


스스로와 상대방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도 모자란 점이 많지만 그들도 모자란 점이 많다.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아주 높을 것이고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사려깊은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을 독일사람이 매우 높게 평가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제한된 채널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실험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남한 사람들은 서로와 어떻게 소통할 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말 몇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두달 쯤뒤에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될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재개될 것인가? 내년쯤에는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도 북한에 관광을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질문들에 대해 더 정확히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그때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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