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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를 잘 쓰는게 정말 인재인가?

by 격암(강국진) 2018. 3. 25.

이런 상상을 해본다. 에스페란토어나 수화처럼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대학입시를 치루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뽑힌 사람들이 과연 인재가 맞을까? 아마도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언어에 재능을 없는 인재들은 이런 입시를 통과할 수가 없을 것이다. 흔한 말로 아인쉬타인이 한국에 태어났어도 이런 입시는 통과 못한다는 말이다.


막내의 일로 고등학교 입시설명회에 갔었다. 친절하게 대학에 제출할 자소서를 쓰는 형식에 대해 설명해 주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솔직히 나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미친 짓인가. 학생들 스스로가 자소서를 잘 쓰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 쓴다 한들 자소서를 잘 쓰는 능력은 국문학과 지망생이나 갖춰야 할지도 모를 덕목이지 이게 이공계 학생들에게 요구해야 할 덕목일까? 자소서는 문학이 아니니 사실 국문학과 학생도 필요없는 능력이 자소서 쓰는 능력일 것이다. 


물론 자소서를 잘 쓰는 능력은 나름 가치가 있고 이공계 학생도 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언젠가는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공계 인재를 뽑는다고 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봐야 하는 능력이란게 자소서 쓰는 능력일까? 그 답이 부정적이라면 왜 고등학생들과 선생님들이 3년 내내 자기 자소서 쓰기를 걱정하게 만드는가. 이게 에스페란토어나 수화로 대학입시를 치루는 것과 뭐가 다를까? 지금의 입시는 사서삼경으로 국가를 위해 일할 관리를 뽑던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재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봐온 바에 따르면 진정한 팔방미인 인재는 정말로 드물다. 그런 팔방미인 인재는 한해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 일 것이다. 초등학교때부터 미적분 혼자서 공부하며 즐거워 하는 그런 천재들도 팔방미인이 못될 수 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지금의 학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이런 입시정책을 만들어 낸 그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기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팔방미인 인재였나? 적어도 이공계 인재는 아니었던 것같다. 과학적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 사회를 주로 주도하고 있다면 이런 엉터리 상황은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인재의 대부분은 말하자면 특정 분야의 관심과 능력이 뛰어나고 오히려 어떤 부분은 평균보다도 못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그들이 아직 나이가 어린 초중고 시절에는 더 그렇다. 인재들은 인재이기 때문에 누가 뭘 시키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어떤 분야로 파고드는 일이 많다. 그런데 아직 어린 나이에는 그렇게 자기 관심사대로 파고들면 능력과 지식이 균형을 잃기 쉽다. 예를 들어 사회성이 그렇다. 천재적 이공계 인재인데 소설은 한권도 안읽었다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원만한 천재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대개 훨씬 더 나이가 든 이후의 일이다. 상상해 보라. 고등학생 아인쉬타인이 자소서를 꼼꼼하게 잘 작성하는 모습을. 그게 상상이 되나?


나는 지금의 한국 입시의 모습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입시따위 없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대학에 간다고 해보자.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돈? 대학입시때문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모들은 지불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대학진학률은 70%를 넘어 80%에 이른 적도 있었다. 다시 말해 금전적으로 우리나라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모두를 공부시킬 능력이 있다. 대학입시 없다고 등록금때문에 부자만 공부하는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대학생? 천만에. 기술적 발전이 있었는데다가 지금은 박사급 인력도 많아서 모든 사람들을 대학교육 시킬 능력이 넘친다. 오죽하면 박사학위가진 대학 강사들 처우문제가 시대의 문제이겠나. 지금 있는 대학들도 문을 닫는다고 난리다. 


그렇다면 대학입시가 인재를 골라내는 역할을 못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인가? 서울대나 연고대 졸업생 혹은 인서울 대학과 지잡대 졸업생의 구분이 필요하니까? 그게 지금 내가 하는 말이다. 지금의 입시가 인재를 골라내는 방식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있는 인재들을 말라 죽이고 있는 것같다. 아인쉬타인에게 정말 쓸데없는 서류작업에 매몰되게 만들어 좌절시키고 있는 대학입시다. 대학 학문을 일단 하기 시작하면 그걸 좋아할 인재가 대학공부 자체를 시작도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등학교의 현실과 대학의 현실이 가지는 간격이 하염없이 늘어나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나로 하여금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또 있는데 바로 특목고, 자사고, 외고같은 특수 고등학교들이다. 나는 외국에서 살았던 이유로 한동안 외고 졸업생은 기본적으로 문과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도 외고가 인기가 좋았던 무렵에는 공부잘하는 중학생들은 모두 외고에 가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이공계에 관심있어하는 중학생들도 외고에 가라고 압력을 받았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퀴리부인을 중어중문과에 집어넣는 짓 아닌가? 게다가 요즘은 대학간판이 좋아도 인문계는 취직이 안된다고 난리라고 한다. 돌아보면 자식을 외고에 집어넣은 부모들은 자식을 망친 것이 아닌가? 


나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대해서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한 고등학교란 하나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 학생들이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특별한 교육을 그 고등학교가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특별한 교육이란게 절반은 대학교육의 흉내고 절반은 선행학습이다. 


명문고등학교들은 자기들이 대단하다고 자랑이겠지만 일개 고등학교가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 포항공대같은 곳의 교수진과 시설을 따라갈수 있는가? 나는 묻고 싶다. 만약 그 학생들이 너무 뛰어나서 고등학교 과정에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왜 그냥 대학으로 보내지 않는가? 지금이 영국의 귀족학교처럼 귀족과 평민이 나눠서 공부해야 하는 시대도 아닌데 무슨 특별한 교육이 있다는 것인가? 특별한 교육이 있다고 한들 그걸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 대로는 인재도 봤고 세상도 본 사람이다. 포항공대를 졸업했고 영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해본적도 있으며 포항공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한 후에 이스라엘, 미국, 일본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많은 인재들을 봤고 그들과 같이 연구도 했었다. 하버드 대학이니 동경대 학생이니 유태인 천재니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런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교육은 인재를 죽이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고, 할 능력이 된다면 하루 빨리 세상의 최첨단에서 연구하고 일하는 사람과 같이 있게 하라. 그런 사람이 한국에 없다면 외국으로 보내라. 


제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간에 끼어들지 말라. 미래에는 이런게 필요하다고 하고 인재는 이런 걸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그 인재를 세상으로부터 격리하지 말라. 그건 마치 작곡의 작자도 모르면서 모짜르트에게 자꾸 음악은 이런거라면서 작곡을 하고 싶으면 일단 내가 시키는 것을 다 마치고 난 뒤에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는 사실 대부분 쥐뿔도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영재교육이니 특별교육이니 하는 것은 다 그들의 망상에서 나온 이론의 결과물일 뿐이다. 


고등학생들은 대개 휴일도 없고 저녁시간도 없이 학교공부에 매달린다. 그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좋은 말을 늘어놓으면서 결과적으로는 할 일을 더 늘리기만 하는 한국의 기성세대는 욕을 먹어야 한다. 창의성이니 토론수업이니 자율수업이니 말은 좋지만 우리는 학교와 세상을 가르는 벽을 무시하는 위선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벽안에서 나만 아는 진리를 아이들 머리속에 박아넣으려는 시도는 적어도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결국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만 할 뿐이다. 바보같은 말을 하는 국회위원이 넘치는 사회에서 학생만 정의롭고 지혜롭게 키우려고 하는 것은 소용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사회성을 기르게 하는가? 그것이 학교라는 테두리가 가지는 가치인가? 천만에 학생들은 학교에 가도 친구와 어울릴 시간이 없다. 일본의 중고등학교가 많은 시간을 부활동에 쓰고 있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형식적으로 한국학교에서 뭘 한다고 해도 언제나 거기에는 경쟁과 평가가 있다. 이런데 무슨 사회성이 있겠는가? 친구를 눌러야 내가 이기는데. 입시걱정은 머리를 떠나질 않는데. 


심지어 사회성도 기르지 못하게 하는 한국의 학교는 애들에게 날마다 일기를 쓰면서 자기 이력서를 고쳐 쓰는 일에 몰입하게 한다. 이건 마치 일찍 부터 취업재수생 생활에 대비하게 만드는 것같다. 일찍부터 공무원 생활교육을 시키는 것같다. 한국의 인재로 뽑히는 아이들이 의학이나 법률공부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무원시험이 엄청난 경쟁률인것도 이상하지 않다. 왜냐면 그런 공부들은 사실 가장 따분한 공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것을 공부하기 보다는 관행과 밝혀진 사실들을 사용하는 일에 몰두하는 공부다. 즉 지금의 시스템이 살려놓은 인재가 잘할법한 공부가 바로 그런 공부다. 


한국의 대학입시에 대한 개선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이것이다. 


차라리 대학입시를 폭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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