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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소동과 왕조의 몰락

by 격암(강국진) 2018. 4. 18.

한진 그룹은 한국 재벌들의 역사를 전형적으로 보이는 곳이다. 1945년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이 세운 회사에서 시작된 사업은 해방이후 미군과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체결하면서 성장한다. 그렇게 세워진 한진 그룹은 1990년에 2대 시대를 시작했다. 조중훈 회장이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대한항공은 장남인 조양호에게, 한진중공업은 차남인 조남호에게, 한진해운은 삼남인 조수호에게 그리고 한진투자증권은 사남인 조정호에게 맡겨 졌다. 지난 번에 땅콩회항으로 문제를 일으킨 조현아와 조현민은 바로 대한항공회장인 조양호의 두 딸들이다. 물론 조양호의 자식들도 이사로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데 조현아는 2018년 현재 44세이고 조현민은 그보다 훨씬 어려서 35세 밖에는 되지 않았다. 출세와 나이가 어울린다면 대단한 인재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거의 봉건 왕조의 이야기와 차이가 없다. 한진그룹의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 왈가 왈부 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 아들들과 손자 손녀들이 3대 4대로 이어지면서 회사의 경영진을 해먹는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보여준다. 사실 조선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봉건사회를 극복한 적이 없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빚을 치루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서울대 교수의 자식은 커서 부모의 서울대 교수 자리를 물려 받아도 될까? 우리는 이런 세습이 터무니 없다고 말할 것이다. 아무리 부모의 교육을 받고 그 유전자를 받았다지만 어떻게 전문적인 교수직을 세습할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실 대통령이 자기 자식도 대통령으로 만든다던가 거대한 그룹의 경영자가 자기 자식을 그룹 경영자로 만드는 것은 대학교수가 자기 자식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말이 안된다. 


왜냐면 교수란 수없이 많은 교수들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교수 한명의 판단이 잘못되어 끼칠 수 있는 해악보다 대통령이나 그룹경영자가 판단을 잘못해서 끼칠 수 있는 해악이 훨씬 더 크다. 우리가 지금 봉건왕조의 시대를 끝내고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봉건 구조로는 크고 복잡한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고 특히 세습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 명의 바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해악이 너무 크다. 


여기서 우리는 경영자 스스로는 그렇게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봉건질서를 유지하면서 나라를 혹은 그룹을 유지시켜 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것은 봉건 질서의 일부다. 확실히 박근혜같이 말도 안되는 바보가 아니었다면 최순실 정도의 인물로 질서를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은 가신들을 거느리고 가신들은 봉건질서가 만들어 내는 피해가 다수의 사람에게 가더라도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바보왕이라도 붙들고 그 질서를 지키려고 한다. 박근혜의 문제는 이제 온 국민이 다 알다시피 그녀가 아무도 믿지 못할 정도의 바보였다는데 있다. 장관도 비서도 얼굴보기 힘든 대통령이라는 희안한 대통령을 우리는 가졌었다. 그리고 나서 고작 믿고 의지했던 것이 최순실이었다. 이러니 정권이 유지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도 21세기에 봉건질서라는 것이 즉 재벌 그룹의 세습 경영이라는 것이 과연 3대를 넘어서 연장될 수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빠지게되며 만약 연장된다면 그것이 얼마만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3대 세습의 최대 문제는 물론 세습받은 경영자의 능력이다. 3대쯤 되면 태어날 때부터 어마어마한 부자로 현실감각이 있기가 지극히 힘들 수 밖에 없다. 설사 이런 문제를 일찌기 느껴서 재벌가문에서 어릴 때부터 인정사정없이 아이를 보통사람처럼 키웠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일 뿐 그 아이는 결코 보통 아이로 클 수가 없다. 왜냐면 그룹을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가 그 아이가 크면 자기 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게 될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현아, 조현민의 정신병적인 행동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뻔하다. 박근혜를 떠올려 보라. 그들이 어떤 사람에게 의지하고 어떻게 그룹을 운영해 갈지. 비극은 예고된 것이다. 


또다른 세습의 문제는 전체 그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힘의 대부분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룹이 엄청난 속력으로 팽창하고 있는 때가 아니라면 그렇다. 이렇게 되면 배가 부르지 않은 후계자들끼리 싸움이 나게 된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이 과연 갈라먹어도 될만큼 시장이 큰가? 그렇게 빨리 팽창하고 있는가? 세습이 3대쯤이 되고보면 한국은 혈연으로 연결된 귀족 계층이 생겨나 버린다. 즉 이제는 친척이라고 봐주기 시작하면 친척이 하지 않는 회사가 없다. 친척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겠다면 결국 봉건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재벌회사들의 3대 4대 세습이 되면 사과 크기에 비해서 벌레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다. 


이것도 이미 너무 심각하지만 세습의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까지 세습구도에서 말했던 것은 그저 재벌 가문들의 직계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룹의 질서를 지키려면 가신의 역할이 필수적이며 이것은 특히 2대 3대로 세습이 내려가면 갈 수록 그렇게 된다. 바보같은 사람들이 왕처럼 사는 동안 현실을 아는 여러 가신들이 실질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신도 늙으면 죽는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가신의 세습이라는 문제도 등장한다. 가신들도 자기 자식 귀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들은 그저 교육비나 대면서 자식이 커서 알아서 잘 살기 바라지만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식에게 한 재산 물려주지 않으면, 빽으로 신의 자식이나 가는 직장을 잡아주지 않으면 그 자식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래로 부패의 큰 이유는 결국 세습에 있었다. 다시 말해 가신들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더 욕심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마치 무슨 아메바 번식하듯 늘어만 가는 귀족 계층이 어떻게 사회를 파먹어 갈지 상상이 될 것이다. 이러니까 봉건 사회는 평화롭게 계속 유지가 불가능하다. 몇대에 한번씩 파국이 오거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착취와 불합리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한다. 너무 많은 귀족 계층이 피 귀족 계층을 핍박하고 피를 빨게 되기 때문이다. 이 뻔한 불합리를 깨닫고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대중은 지극히 어리석은 상태에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방으로 펼쳐진 대륙에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륙의 왕조는 대개 얼마가지 못하고 망했다. 반도나 섬에서나 대중의 세뇌와 억압으로 왕조가 오래 유지될 뿐이다. 한반도에서는 불교나 유교가 이 세뇌의 도구였고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 세뇌작업에 총동원되었다. 그래서 중국보다도 조선이 더 유교적인 국가다. 이데올로기 광신도랄까. 


21세기 한국도 3대 세습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남이나 북이나 세뇌작업이 엄청나다. 박근혜 이명박이 저지른 실정이란게 결국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그 세뇌 작업의 부작용이다. 그들을 만들어 낸 힘의 근원은 결국 봉건세습질서가 가진 돈이었으니까 말이다. 돈의 수족역할을 한 것이 언론이나 어용 대학교수들이었고 그들의 뒤에 있는 것이 돈을 가진 봉건 질서였다. 


봉건질서 최대의 상징이요 꽃이었던 박근혜의 실체가 들어나고 그 뒤에 앉아 있던 최순실을 보는 순간 국민들은 세뇌에서 잠시 깨어나 분노했다. 하지만 사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조현민, 조현아가 보여주고 있다. 여러 재벌가문들은 돈을 써서 이미지 조작을 한다. 그래서 자신들을 특별한 인간처럼 포장하고 봉건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아직도 최순실이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둥 이재용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둥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미지 조작으로 버티기에는 이미 귀족 계층의 수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삶은 피폐하다. 


오죽하면 결혼을 못하고 애를 못낳겠는가? 오죽하면 이민가야 겠다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서울대나 연고대 나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데 그런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잘 안된다는 소리가 나오면 사람들이 할말이 없다. 조선이 망하던 시절 김구는 과거 시험 공부를 해봤지만 과거 시험의 부정이 너무 심해서 무의미한 짓인 것을 알았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 취업시험이란 이 부패한 과거 시험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뭔가가 아닐까? 합격자 전원이 빽으로 들어간 강원랜드 취업비리 사건같은 것이 이런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거 아닌가? 왜 국민들이 유독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분노했겠는가? 왜 보통의 한국인들은 2400원 횡령해도 해직되고 감옥가는데 2400억 해먹은 인간들은 잘먹고 잘사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정유라를 지금 이 나라에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걸 감추기 위해 한국 사회는 얼마나 바보인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는가. 배울만큼 배운 재판관이 이재용은 삼성을 물려 받은 일이 없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다보면 바보가 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태극기 집회 참여인원이 촛불집회 참여인원만큼이나 많았다고 말하는 저명인사도 있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태양은 동쪽에서 뜬 적이 없다고 할판이다. 


이렇게 사회를 비합리적으로 운영하니까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한국 사회의 돈을 훔쳐간다. 공식적으로는 불법인 것이 현실적으로는 합법인 것을 계속 유지하는한 이런 약점은 점점 커질 것이다. 봉건사회질서는 세습 질서의 유지는 한국 사회를 서서히 죽이고 있다. 


절대란 것은 없으니 재벌의 3대 세습이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이런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잠들어 있을까? 낡아빠진 반공논쟁따위로 세뇌되어 공주님 만세, 왕자님 만세를 외치고 있을까? 조현민은 계속 공주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조현민 공주님에게 충심을 가질까?


더 끔찍한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정말 만약, 한국에서 3대 세습질서의 유지가 성공된다면 그것은 얼마만한 댓가를 요구할까? 박근혜 이명박으로 백조가 날아갔는지 그 몇배가 날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음 번에 댓가를 치루고 나면 뭐가 남을까? 나라 자체가 남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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