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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야 할 고등학교의 역할

by 격암(강국진) 2018. 4. 26.

오늘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봤다. 그것은 대학입시중 정시의 확대를 두고 교사와 시민들간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기사였다. 이에 따르면 교사들은 정시의 확대에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정시가 확대되고 수능위주의 문제풀이 입시로 돌아가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EBS 문제집이나 풀고 학교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정시의 확대를 원하는 시민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축소를 요구하면서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시의 확대를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이 기사의 단어 하나 하나가 눈이 확 떠지는 말들이었다. 나는 교사들의 주장이 가지는 행간의 의미와 배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학생들이 학교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수능위주의 입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마치 그것이 자명한 진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학생은 정말 학교에만 집중해야 할까? 우리 시대에 고등학교가 가지는 역할의 비중이 계속 이렇게 커야만 할까?


오늘날 학교는 특히 고등학교는 30년전과는 대단히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지식이 우리 사회에 누적되었다. 다시 말해 그간에 대학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누적되었다. 그런 반면에 고등학교 교육에서 필수 부분으로 말해지는 교과목의 내용과 수준은 변화가 거의 없다. 30년전의 대학에서 배우던 걸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게 아니다. 30년전의 대학과 지금의 대학은 분명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한잔의 물이 사막에서 가지는 가치와 물이 넘쳐나는 곳에서 가지는 가치가 다르듯이 고교 교육과정에서 제공하는 지식이 가지는 가치는 전과 지금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낡은 지식이며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 이제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며 인강을 통해서도 잘 배울 수 있다. 


이때문에 학교란 선생님이 교과목을 강의해 주고 그것을 학생이 배우는 곳이라는 당연한 패러다임이 위협받고 있다. 이제는 기술적으로 전국최고의 강사가 강의 한 것을 전국의 학생들이 모두 다 들을 수 있다. 애초에 높은 연봉을 받는 강사들은 아주 뛰어난 교수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의 하나 하나에 들이는 준비의 양이 일반 교사들로서는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때로 자료수집을 돕는 보조원까지 고용해 가면서 강의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경쟁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학교에서는 학생을 1대1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최고 인기가수가 될 수 없듯이 교사들사이에도 가르치는 기술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는데 통신환경이 그들을 이제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든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잔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최고 인기가수의 노래도 사방에 흔한 가운데 동네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만약 고교 교과과정 내용만을 시험보는 수능 시험으로 대학입시를 치룬다면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에 탄원서를 낼 것이다. 제발 학교에서 수업좀 줄이라고 내 자식은 내 맘대로 키우겠다고 할 것이다. 아니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강의 하지 말고 인강틀어 놓고 관리만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대학입장에서도 이게 문제가 있다. 고교교과 과정 내용만으로는 오늘날 대학에서 인재로 크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고등학교의 교과서 교육 내용이란 크게 말하면 100년전과도 별차이가 없다. 그걸 배워서 대학에 가면 갑자기 현대 사회를 쫒아갈 수 있을까? 대학이 입시에서 자율성을 가지고 자기 맘대로 학생을 뽑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분명히 있다. 즉 현실사회와의 괴리가 비교적 작은 대학과 과거에 묶여 있는 고등학교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더 준비된 학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 격차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 소위 창의력교육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의력이라는 단어 속에 앞에서 말한 격차에 존재하는 것을 집어넣고 이제는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창의력 교육이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사실 그 내용은 대부분은 선행학습인데 말이다. 영재교육이 달리 있나? 사실 다 선행학습이다. 사실 대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는 말한다. 그 차이를 줄이겠다고. 우리가 창의력교육하겠다고. 우리가 그걸 관리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시험이 확대되어 왔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의욕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애초에 교사도 옛날과 똑같이 만들어 지고 있다. 지금의 교사자격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교과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생각해 볼 때 고등학교 교사가 앞에서 말한 격차를 줄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그들이 교육을 독점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리다. 그들은 좋은 의도를 가졌을지 몰라도 그들은 그들이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 배워서도 안되고 배울 시간도 주지않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고등학교의 현실을 보면 학생들은 자기 소개서를 잘 쓰기 위해서 일찌감치 자기 이력을 부풀리는 일에만 매진한다. 오늘날의 선생님들은 학생을 교실에서 가르키는 일보다는 글짓기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 것같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고교교과과정 안에 있지 않은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데 그 배우는 부분은 대충 얼머무리고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배웠다고 주장할 수 있도록 자소서를 잘 쓰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초밥요리사가 뭘하겠는가. 초밥을 만들지. 고등학교 교사가 고등학교 교과과정 말고 도대체 뭘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들이 그 이외의 것을 잘하도록 자격증이라도 땄나? 


그러므로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어 온 가운데 지금의 학교는 더욱 더 모순과 위선에 차게 되었다. 만약교육을 케익만들기로 비유하자면 지금의 고등학교는 사실상 학생들에게 케익을 만들기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케익 포장법만 가르키고 있다. 그러면서 케익만들 시간도 없고 케익 만드는 법을 배울 시간도 없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 부분을 줄이면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지옥같은 세상이 오는거 아닌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에는 큰 오해가 있다. 공교육이 곧 고등학교 교육을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자꾸 고등학교라는 틀 안에서 뭔가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것이며 꼭 그럴 필요가 없다. 안되는 것을 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비용이 증가한다. 사교육비의 증가는 오히려 고등학교라는 틀 안에서 하지 못하는 교육을 시키려고 하니까 생기는 것이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의 고통도 증가했다. 


오늘날 우리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에게 뭐가 필요할지 모르고, 사회의 다양성은 더 증가할 것이다. 그런 무형의 것을 고등학교 교육과정이라는 틀안에 집어넣어서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산업이 전망이 좋으니까 6급이나 7급공무원들이 공부해서 영화만들고 드라마 만들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존의 고교교육시스템이라는 것은 특정한 지식을 전달하도록 만들어진 기계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 이외의 것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고교교과과정 중에서 절대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 위주로 교육 내용을 줄이고 고등학교 졸업장은 바로 문제풀이 위주의 자격시험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그게 본래의 수학능력시험 평가의 의미다. 점수도 절대평가로 할 필요가 없고 등급제로 해서 뚝뚝 자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즉 고교교육이라는 것을 오히려 간소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남으면 학생들은 다른 공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교육말고 무슨 공교육이 있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미리 대학에서 배워보면 어떤가? 대학에 잘 적응해서 많은 것을 배울지 안배울지 알아보는 방법은 대학교육이란 걸 그냥 받아보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자기가 대학가면 뭘 어떻게 배울지도 모르면서 성적에 맞춰서 아무 과나 가는 것보다 가서 배워보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가? 이건 마치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는 지망생들을 여름캠프에 참가시켜서 프로야구수준에서 경기를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력적으로는 한국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많으니 그들을 강사로 쓴다면 충분히 실행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학생수 감소로 망해가고 있다. 대학교육이란 걸 약간 변형된 형태로 만들고 고등학생들에게 경험하게 만들고 평가할 시설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망하는 지방대학 캠퍼스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의 현실은 좀 기괴하다. 학벌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학 교육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넘친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그 다음세대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시스템은 막는다. 애초에 배우고 싶으면 모두 대학에 가게 하면 되고 가르 칠 능력도 되는데 지금의 시대에는 뒤진 지식들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달달 외우라고 한다. 고등학교는 점점 사서오경을 가르치던 서당같아지고 있다. 


기초는 중요하지만 기초만 한다고 뭐가 되지 않는다. 구구단을 잘 외우고 곱하기를 잘하는 것은 수학을 배우는데 필요하지만 수학자가 되겠다면서 복잡한 곱하기만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것은 바보다. 지금의 고등학생들을 보면 나는 딱 그 생각이 난다. 배워야 할 것은 엄청많고, 가르칠 사람도 세상에 넘쳐난다. 그런데 몇십년전과 실질적으로 똑같은 것을 배우면서 주어진 시간안에 문제를 빨리 푸는 연습만 미친 듯이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고등학생들은 학교안에 갇혀서 더욱 더 시대에 뒤진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은 복잡하다. 얽힌 실타래의 핵심은 고등학교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그럴 수가 없는데에 있다. 대학에 가서 지식을 배우겠다는데 그걸 자꾸 필요없는 자격시험으로 막는데 있다. 평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이 대학입시라면 우리는 오늘날의 인재를 고등학교 교과과정내용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이건 엉터리다. 그래서 요즘은 출신대학 이름을 보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문대 출신이란 건 고등학교 공부를 잘했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럴거면 대학입시는 왜 그렇게 어렵게 보나. 왜 대학입시때문에 다들 그렇게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나?


이 실타래를 잘라 버리자. 대학을 평준화하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기본적 능력만 있으면 다 가게 하면 된다. 고등학교 교육을 단순화하고 고등학교 시절에 대학에 가서 미리 대학수준 공부를 배워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게 하라. 이런 그림에서 어디에 사교육비의 폭발적 증가가 확실한가? 비용을 나라에서 대면 될거 아닌가? 그게 공교육 아닌가? 


왜 고등학교가 나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여기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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