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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어떻게 한국의 영웅이 되어가는가

by 격암(강국진) 2018. 5. 1.

요즘 보면 트럼프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기대가 아주 높다. 트위터에는 트럼프가 아니라 힐러리나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더 나빴을 거라는 말들이 많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꽤 기이한 것이며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사실 전세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제일 싫어했던 나라가 한국이며 우리는 오바마같은 대통령을 훌룡하다고 평가하고는 했다. 이건 그저 착각일까? 착각이라면 어떤 종류의 착각일까?



나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키워드는 지적이고 진보적인 애국자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쉽게 이 말들을 다 좋은 것들로 생각한다. 지적이라던가 진보적이라던가 애국자라던가 하는 것은 다 좋은 말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적이고 진보적인 것과 애국자인 것은 완전히 반대되는 말은 아니더라도 크게 상충하는 면이 있으며 이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란 따라서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운이 좋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오바마가 지적이고 진보적이기 때문에 그를 지지했다. 지적이고 진보적이란 것은 대개 보편질서를 지지한다는 것을 말하며 이 보편질서는 미국이나 한국같은 자국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보편적 질서와 상식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하기에 오바마같은 사람을 지지했던 것이다. 세계도 트럼프보다는 오바마를 지지했다. 


사실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은 기본적으로 윤리고 질서고 없는 약육강식이 이 세계의 전부라면 살아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경제적으로 한 나라의 경계선 이상을 넘어서 융합되어져 있고 따라서 강대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약소국과의 약속을 깨거나 무력으로 침공해 버리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식이라면 모든 약속들에 대한 신뢰는 사라질 것인데 무슨 무역이 되겠는가? 미국같은 강대국은 강하지만 세계 시장보다 더 강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는 보편적 질서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미국 대통령들은, 특히 진보적 대통령들은 다 애국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능한한 보편적 질서가 통하는 세상을 지지하지만 미국이냐 세계냐의 질문앞에서 미국을 택하는 경향이 크다. 왜냐면 그것이 미국에서 대통령이 될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은 한국에 우호적일 거라고 싶게 믿는 것에는 위험이 있다.  왜냐면 한국계 미국인은 한국과 미국의 공동번영을 바라지만 한국과 미국의 이익이 충돌할 때는 오히려 다른 미국인들보다도 더욱 더 미국의 이익에 충실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특히 정치적으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인 경우에 더 그렇다. 왜냐면 그런 한국계 미국인은 끊임없이 미국에 대한 충성심에 대해서 질문받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을 공격하면 너는 누구편을 들래라고 질문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은 끊임없이 나는 미국인이며 필요하다면 한국을 공격해서라도 미국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계 미국인이 주한대사로 온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인도 사실 같은 문제를 가진다. 그걸 정확히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계 보편적 질서를 주장하는 진보 정치인은 자신의 약점이 애국자 이미지가 약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질문받고 스스로 맹세한다. 나는 애국자다라고 말이다. 즉 보편적 질서와 미국의 이익을 모두 지켜낼 수 있기 바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그래도 그 둘이 충돌할 때는 평소에 맹세해온 대로 미국편을 들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 유권자에 의해서 지명되는 사람이지 세계인에 의해서 지명되는 사람이 아니다. 


트럼프는 그럼 뭐가 다른가? 정도의 문제겠지만 트럼프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질서따위에 크게 관심이 없다. 트럼프는 물질적이고 이기적이다. 사람은 그리고 국가는 본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여기서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일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 본인의 정치적 성공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지적이고 진보적인 미국대통령은 어떤 정책의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효과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평화롭고 심지어 통일될지도 모르는 한반도는 미국에게 이익이 되는가?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어떤가? 이 질문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런 질문일지 모르지만 사실 보편적 질서를 믿는 진보적 지식인으로서는 위선적인 질문이다. 보편적 질서하에서는 미국인과 한국인은 차이가 없다.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엄청난 군비를 써가면서 반세기 이상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을 종식하는 것이 이익이 되냐 안되냐를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고통을 외면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도 그렇지만 표면적으로는 평화가 좋은것이며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정부가 없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이 세계는 보편질서에 기반하여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각자 자기 계산에 바쁘다. 그러니까 외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지지선언은 마치 자동차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핵심 부품은 자기가 가지고 있고 그걸 제공하지 않으면서 나는 자동차의 완성을 지지한다는 식이 되기 쉽다. 누가 죽던 말던, 고생하던 말던 그걸 왜 내가 주냐는 것이다. 그게 나한테 이익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이게 선거에 이겨야 하는 애국적 진보의 보통모습이다. 지금도 당장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얻는게 뭐냐고 묻고 있다. 


트럼프라고 해서 매국노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물질을 좋아하고 장기적 예측과 분석 그리고 추상적 가치따위는 별로 신용하지 않는 것같다. 사실 트럼프가 이런 면에서는 옳을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므로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봐도 당장 눈앞의 것을 본다. 쉽게 말해 당장 돈이 된다면 왜 협상을 안하냐는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는 국제협약도 언제든지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협약을 맺는 걸로 북핵의 위험이 없어진다면 너무나 이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말과 종이를 핵무기와 교환하는 것은 어리석다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북한이 세계 경제질서에 포용되는가 안되는 가하는 것이다. 그게 이뤄진다면 미국도 북한을 공격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이 한국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물론 미국이 언제나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미국이 지금의 베트남을 무력침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물론 미국이 언제나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국이 세지만 세계 전체가 더 세다. 그런 미친 짓을 한다면 세계는 대공황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다. 


북한이 빠르게 세계 경제질서에 들어오지 못하면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도 있고 지리적 이점도 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있는 북한이 안보위기가 없다고 할 때 경제적으로 발전못할 이유가 뭔가? 한국은 해마다 북한 예산과 비슷하다는 50조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한국주식의 시가총액은 2천조쯤 된다고 하는데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오면 이 주식이 어느정도나 오를까? 절반만 오른다고 해도 발생하는 신용이 천조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경협이 다 이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열심히 도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한국과 북한은 모두 큰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다. 경제발전은 굉장히 빠를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미국이 공격할 수 없는 나라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촛불혁명의 정신을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통일도 못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다만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고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정말 한 뜻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확언하기 어렵다. 분란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무슨 식민지 차지하듯 북한으로 나아가 땅투기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문제가 없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지만 우리는 또 몇개의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진보적 애국자라는 화두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진보적인 애국자는 이제까지 별로 문제를 겪지 않았다. 왜냐면 한국의 발전이 곧 진보적 질서의 내적 수용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프랑스처럼, 독일처럼이 곧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면 한국 사회 자체는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노벨상 수상자나 위대한 미국의 정치가가 하는 말이라도 그것은 외국인이 하는 말이라는 점을 점점 무시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무조건 보편과 관념만 사랑하는 진보지식인이 아니라, 특히 외국이 만든 질서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발앞의 문제와 사실도 편견없이 직시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중독증을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힐러리나 오바마와는 하지 못했던 일을 트럼프와는 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정국은 이런 생각할 거리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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