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자유란 대개 서로 싸우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유해서 부자유해진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속박한다. 나는 게으르고 속박당하는게 싫어서 그런 것에 좀 민감한 편인데 그런 나의 눈에 보면 세상은 그야말로 함정투성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를 속박하는가. 직장은 또 얼마나 우리를 속박하는가.
타고나기를 아주 불쌍하게 태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금방 이런 저런 일들에 얽히게 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이거니와 가진게 아주 많아서 자유로울 것같은 사람들도 대부분 매우 부자유스럽다. 재산을 지키려고 소처럼 일해야 하고 더 벌려고 바쁘며 사회적 명성과 존경을 지키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일한다. 멋진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기꺼이 노예처럼 변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안빈낙도라던가 무소유같은 말이 전해져 왔을 것이다. 가진다는 것은 우리를 속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빈낙도에 관해서는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빈낙도는 정말로 아무 것도 없어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안빈낙도를 말한 사람들이 대개 지식인층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안빈낙도는 물질적인 소유나 사회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말할지는 몰라도 내적으로는 아주 충만한 사람이나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정신까지 포기해서는 지킬 수가 없다.
감수성이 뛰어나고 지식이 많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돈이 필요없다. 산책이나 하고 소박한 음식점에서 큰 기쁨을 느끼며 책이야 도서관에 가면 많고 집에도 읽던 책이 있는데 돈이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하겠는가. 사람은 때로 무인도같은 감옥속에서도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한다. 내적으로 충만한 사람은 무한정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해도 상당히 긴 시간을 사색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된다면 그런 사람은 금방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속박하려는 유혹이 정말 많다. 그러니 비록 한 순간 자유롭다고 해도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금방 스스로의 몸을 속박의 사슬로 동여매게 된다. 다시 말해 지혜나 올바른 생각 조차도 없는 정말 무지렁이의 삶을 살면서는 안빈낙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혜나 올바른 생각을 유지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물질적 소유가 또한 필요하다. 이는 안빈낙도 조차도 사실은 어느정도의 소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내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돈이 별로 필요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에 돈이 없어서는 삶이 너무 단조로워지거나 고되게 된다. 지나치게 단조로운 삶은 우리의 정신을 파괴한다. 그래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청소라도 하고 설거지라도 하는 것이 정신에 좋다. 하지만 반대로 삶의 무게에 눌려서 단순노동으로 힘겹게 살면서 그 정신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까 안빈낙도가 인생이 편해서 하는 사람의 헛소리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도 아닌 것이다. 정말로 아무 것도 없으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조차도 지킬 수가 없다.
게다가 자유라는 것도 오해해서는 안된다. 하루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공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학문제를 풀고 어려운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했더니 수험공부에 지친 아이들은 그런 건 괴상한 아빠의 일이라고 여기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지금와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공부나 수학문제를 푸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 걸 재미있다고 시키지도 않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과 다른 사람인 것은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수학문제 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노예가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안빈낙도란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의 부자도 가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도 자유롭고 안빈낙도를 즐기는 사람일 수 있다. 그 사람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속박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마음이 무거운 것은 마음속에 든게 많아서 그렇다. 그게 전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데 자꾸 나를 속박하기 때문에 그렇다. 속박이 없고 집착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몇일전에는 유명배우 주윤발이 거의 1조에 달하는 자신의 전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하고 평상시 검소하게 사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는 허름한 옷차림에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주윤발은 부자가 된 다음에도 돈에 중독되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알려진 것만으로 주윤발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주윤발은 부자도 안빈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가지 예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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