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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 그리고 좋은 집.

by 격암(강국진) 2019. 5. 13.




저는 이제까지 3번에 걸쳐서 한국의 주거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녹음을 했습니다. 그 녹음들은 주로 우리의 주거문화에서 아쉬운 것들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그걸 여기서 다시 한번 짧게 요약해 보자면 아파트로 대변되는 한국의 집들이란 대개 사생활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이웃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다양성이 제거된 집이며 무엇보다 그 안에 머무는 즐거움이 없는 단순하고 역사와 문화가 없는 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녹음을 보고 어떤 분들은 아파트가 아니면 어떻게 사냐고 묻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려면 어쩔 수 없는거 아니냐는 겁니다. 분명히 모두 다 전원주택에 살 수는 없으니까요. 역시 비판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구체적으로 특정한 집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을 예로 들어 볼까 합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안도 다다오가 1976년에 오사카에 지은 집입니다. 이 집은 작은 집입니다. 땅의 크기가 가로 세로 3.6미터와 14.4미터밖에 안됩니다. 평수로 치면 16평이 안되죠. 게다가 이 집은 보이기 위한 집이 아닙니다. 길에서 이 집을 보면 높은 2층 콘크리트 벽에 창도 거의 없어서 안으로 들여다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짓겠다고 한다면 100평짜리 대지에 여섯채는 붙여서 지을 수도 있는 그런 집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아파트가 아니면 좁은 면적에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 말은 절반만 옳습니다. 고층아파트가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것도 삶의 질을 따지기 시작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층 아파트는 서로 서로 더 많이 떨어질 필요가 있고 아파트가 고층이 될 수록 엘리베이터같은 것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집니다. 그러니까 아파트가 답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만 답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16평짜리 대지에 지은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2층 집입니다. 그리고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중정으로 설계해 놓았습니다.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다른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을 보면 문제는 단순히 단독주택이냐 아파트냐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한국에 존재하는 많은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비슷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친숙한 한옥의 사진을 봅시다. 이 한옥은 중간의 마당을 방들이 둘러 싼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방들은 마당보다 높이가 높습니다. 방들이 마당보다 높이가 높으며 중앙의 마당은 바깥 공간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높은 자리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바닥이 아무리 푹신해도 그 방안에 높은 자리가 있으면 사람들은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 자리가 돌바닥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옥에서 사람들은 주로 마당이 아니라 주변의 방들이나 마루에 머물게 됩니다. 




평면도만 보면 한국의 아파트들은 사실 앞에서 말한 한옥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중앙에는 거실이 있고 그 거실을 방들이 둘러 싸고 있는 것이 한국의 흔한 아파트입니다. 그렇지만 대개 사람들은 거실을 자기 방보다 더 많이 씁니다. 거실에는 티비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방과 거실이 높이가 같습니다. 더 넓고 오락거리가 많은 거실이 더 매력적인 겁니다. 그 결과 아파트는 사생활이 적어 집니다. 내 방문 바로 앞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니까요.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가 너무 짧아지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점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의 전원주택은 마당이 있다는 것이지 단층으로 지어지고 그 평면구조는 아파트와 실질적으로 똑같습니다. 그래서 백평짜리 대지위에 집을 지었는데도 사생활이 없기는 거의 비슷합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방들이 중간의 중정으로 나눠져 있을 뿐만 아니라 2층구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물론 단열을 어떻게 하는가에 큰 영향을 받겠지만 이런 구조는 난방비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중간에 중정이 있으니까 난방을 하는 부분은 더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방들은 모두 서로로부터 아주 멉니다. 아주 작은 집인데 방들이 서로 멀다는 표현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거리로 보면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파트의 방들과 스미요시 나가야의 방들을 비교해 보면 그렇게 말하게 됩니다. 스미요시 나가야의 방들은 위층 아래층으로 구분되거나 중간에 중정을 두고 반대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집인데도 방마다의 독립성이 아주 큽니다. 저는 한국의 아파트가 사생활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어떻게 작은 공간인데도 그 반대가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집입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중간에 중정이 있고 그 위로는 천정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눈비가 오면 그 중정으로 그냥 그 눈비가 떨어집니다. 안도 다다오는 스스로 이 집을 불편한 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집에서 이 방에서 저 방가는데 우산을 써야 할 수도 있는 집이니까요. 아파트에 사는 것에 익숙한 분들은 이런 것을 보고 질색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그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파트는 바깥 공간으로부터 폐쇄적입니다. 우리는 큰 창을 통해서 바깥을 내다 볼 수도 있고 그것때문에 다른 사람이 우리 집안을 들여다 볼 가능성도 있지만 눈비가 아파트 안으로 몰아치고 공기가 자연히 순환되는 일은 없습니다. 바깥 공간과 안의 공간은 단절되어져 있어서 계절의 변화와 날씨의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없습니다. 아파트에 있는 큰 창들은 일종의 큰 티비 화면이나 다름없습니다. 바깥을 구경만 하는 것이죠. 어떤 아파트들은 전망이 좋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그건 그냥 구경만 하는 것입니다. 


안도 다다오는 이것이 건강하지 못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랜 동안 실내에만 있다가 바깥에 나가 본 사람은 적어도 순간적으로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접하고 특히 아침 저녁으로 온도가 달라지는 공기를 접하고 장마철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눈이 내리는 것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입니다. 저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바다와 가까운 집보다는 산과 가까운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은 사계절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바다는 상대적으로 덜 그렇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인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저는 체험이라는 말안에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이전의 녹음에서 저는 스토리텔링이란 결국 체험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그걸 뭐라고 부르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 때 느끼는 것이 있고 그 옷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집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이전에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 다시 말해서 내가 뭘 체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길에서 지나가다가 보기에 좋은 집이 혹은 그저 흘낏 보고 멋지다고 느낀 집이 꼭 살기에도 좋은 집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진짜 좋은 집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즐거운 자극을 주는 집입니다. 그렇지 않은 집은 아무리 멋져보여도 사실 하루만 그 집에 머물면 지루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집들이 지루한 것은 꼭 아파트만 그런게 아닙니다. 단독주택들도 그렇습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이층집입니다. 아이들은 계단을 아주 좋아합니다. 계단은 흥미로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모든 공간이 흥미롭게 보이는데 왜냐면 중정같은 특징이 공간들을 서로 분리시켜서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걷기에 흥미로운 길이나 골목은 대개 구불구불합니다.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저 코너를 돌면 그 다음에는 뭐가 있는지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가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첫째로 지금 있는 곳에 집중합니다. 길 위의 모든 것들이 동시에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으니까 지금 길가에 있는 꽃이나 어떤 대문에 있는 그림을 보게 됩니다. 둘째로는 코너 다음에는 뭐가 있는가에 대해 궁금해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구불구불한 길은 걷기에 흥미로운 겁니다.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멋진 물건들로 가득 찬 집이라도 그냥 넓은 스튜디오 같은 공간에 그걸 다 늘어놓아서 한번에 그게 다 보이는 집이라면 그런 집은 재미가 없습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같은 집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고 계절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집인데 복잡한 구조까지 갖췄으니 그 안에서 사는 재미가 있는 겁니다. 이런 특징은 한국의 한옥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파트는 물론이거니와 단독주택도 지극히 지루하고 지극히 자극이 없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단순히 아파트인게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문화가 없고 상상력이 없고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없이 집을 짓는게 문제입니다. 그걸 다른 말로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주거 문화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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