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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누구를 어떻게 뽑아야 할까?

by 격암(강국진) 2020. 4. 6.

선거날이 다가오고 있다. 사전투표의 경우는 이번주 주말이면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선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선거는 대개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고 국민의 의사를 잘 반영하는 사람들을 뽑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보자의 이력을 보고 공약을 본다. 또 국민의 의사를 잘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로 성비율을 맞추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뽑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여러 직종군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려고 하고 외국인 노동자 출신이나 동성애자 출신같은 소수자 출신의 국회의원도 뽑아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런 주장들은 일면으로 다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일면으로는 다 하나 마나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물론을 보자. 우리가 도대체 어떤 후보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아는가. 수십년을 같이 산 배우자에 대해서도 다 모르겠다라는 것이 인간인데 선거홍보물 찌라시 하나 보고 그 인물에 대해 알겠다고 하면 뭘 알았다는 것인가. 나는 인물론을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인지도를 유지한 거의 대권후보급의 정치가들이 아니면 사실 국민들은 그 정치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모르면 알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답이겠고 틀릴 수도 있지만 아는 것에 기초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답일 것이다. 물론 그런 것도 옳지만 우리가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사실 공부해도 모른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지금의 검찰총장 윤석렬이다. 윤석렬을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는 현정권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윤석렬의 임명을 방해하는 사람은 반정부적인 사람이고 반개혁적인 사람이라는 식의 믿음이 아주 컸다. 하지만 지금 윤석렬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전혀 바뀌었다. 윤석렬정도되면 그야 말로 내가 위에서 말한 거의 대권후보급의 정치가만큼이나 지명도가 있는 사람인데도 그렇다. 


또다른 예를 보자. 안철수는 어떤가. 안철수는 한 때 대단한 존경을 받으며 정치를 시작했으며 나도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현정부의 지지자인 나로서는 지금 뒤돌아보면 그가 한국정치에서 이룩한 것은 본인의 못난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 것밖에 없는 것같다. 민주당에서 보기 싫은 사람들,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을 몰고 나가주는 덕분에 오늘날의 한국이 괜찮아졌다는 느낌이랄까? 새정치? 그를 둘러싼 정치야 말로 가장 낡고 추한 정치였으며 역사를 뒤로 돌리는 정치였다. 이렇게도 유명한 안철수를 국민이 모르겠는데 어떤 정치가를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알고 선택하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내가 알고 있다는 확신은 위험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정책이나 이력에 주목한다. 이것은 기업가로 성공했다던가, 판검사 출신이라던가, 거대 언론사 출신이라던가 하는 식의 이력이나 FTA에 반대한다던가, 농민보조금 정책을 주장한다던가, 페미니즘에 대한 어떤 정책을 주장한다던가 하는 식의 정보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통해 우리가 그 후보에 대한 객관적인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뭔가의 의미는 그 조각난 정보를 해석하는 문맥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아주 순진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동네에 다리가 생기기를 바라면 다리를 놓자고 하는 사람을 뽑으면 된다는 식의 자세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는 얼마전에 한 현수막에서 모든 국민에게 1억씩 지급하도록 하겠다는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이 정책에 동의하냐 안하냐는 둘째 치고 일단 우리가 이게 옳다고 믿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람을 찍어야 할까? 그런데 이 사람이 진심으로 이 정책을 믿는다고 하고 게다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1억을 지불하는 정책이 실시되는 것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고 이 사람이 국회를 모두 장악하고 있으며 언론과 재계를 모두 지배하는 절대권력의 독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 하나가 당선되어서 뭐가 되는게 아니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소수파로 당선되어 국회에서 소수파 국회의원이 된다면 본인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국민에게는 1억이 아니라 백만원도 오지 않는다. 그저 언젠가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모두를 독재통치하는 그날이 오면 그걸 할거라는 헛된 약속만 받게 될뿐이다. 언제나 핑게는 있다. 극단적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문제가 있는데 문제는 뭐가 극단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는 이래서 어렵다. 국민에게 백만원주겠다는 사람과 1억주겠다는 사람을 비교해서 1억주겠다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실은 1억주겠다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안하면서 정의로운 사람인 척, 인정많고 개혁적인 사람인 척 하는 사람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백만원이라도 국민에게 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면서 1억이 아니면 백만원이든 천만원이든 0원이든 다 똑같다고 말해서 백만원이라도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을 오히려 막고 국민에게 1억을 빼앗아가는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농민이 잘사는 사회? 노동자가 잘사는 사회? 여성이 잘사는 사회? 기업이 잘사는 사회? 뭐든지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쉽지만 그 주장이 설혹 옳다고 해도 그게 꼭 그 사람이 뽑혀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여성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여성보다 남성을 뽑는게 더 괜찮을 수도 있다. 노인복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이를 국회를 보내야 할 때도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정당투표와 인물투표를 적당히 섞을 수 밖에 없다. 극단적 정당투표는 후보가 누구가 되었건 정당 이름보고 그냥 찍는 것이다. 그 정당이 올바른 일을 할거라고 믿고, 후보추천을 잘 했을거라고 믿는 것이다. 극단적 인물투표는 정당은 보지말고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하지만 인물투표는 아주 그럴듯해도 한계가 아주 크다. 우리는 그 사람을 잘 알 때 즉 그 사람이 아주 훌룡한 사람이거나 아주 나쁜 사람인 극단적인 경우에만 인물투표를 해야 한다. 나는 정치가 중에서 이명박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그 이명박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가 김대중의 후계자로 민주당에서 정치를 했다면 다른 정치를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내가 아는 이명박은 바로 이명박이기 때문에 그런 길을 걸을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노무현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명박때도 박근혜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염병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다르다. 외교부에 관련된 공무원이 모두 바뀐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때와 지금의 정부에서 교민들이 받는 대접은 확연히 다른 것같다. 이게 공무원이 전부 다르기 때문인가?


좋은 정치는 좋은 사람이 뭉친 것이고 나쁜 정치는 나쁜 사람이 뭉친 것이라는 식의 생각은 틀리다. 우리가 대선이나 총선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세세한 작은 정의구현이 아니다. 우리 동네 쇼핑몰이나 내 자식의 대학입시 정책같은 작은 것을 위해서 그런걸 말하는 사람을 뽑아주는 것은 총선이 아니다. 더 착한 사람,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을 보상해 주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을 뽑아주는 것이 이런 선거가 아니다. 


대선이나 총선은 국가라는 큰 틀을 손보는 것이다. 핵심적 과제는 그래서 시대적 과제이고 이념이다. 우리는 큰 틀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그걸 잘 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선택으로 기준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의 핵심은 사법부 바로세우기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지지부진하다. 당신은 그걸 관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더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박근혜는 낡은 과거이니 이제 묻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지난 탄핵은 부당한 것이니 다시 친박 정치세력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중요한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바람직한 이념이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이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국보수가 뭔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만 이번에 국민들이 제대로 권리를 써서 한국을 얽매어 온 낡은 이념이 끝장나는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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