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젊은이의 생각, 부모세대의 생각

by 격암(강국진) 2022. 2. 10.

2022.2.10

우리는 언제나 자기 위주로 세상을 보거나 기껏해야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위주라는 말은 물론이거니와 객관적이라는 말도 언제나 의미가 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언젠가 캐나다로 가족들을 보낸 기러기 아빠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이랬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좋은 곳에서 교육받기를 원해서 캐나다로 가족을 보내고 그 학비를 버느라 외롭게 죽도록 일했는데 자식의 생각은 완전히 반대였다는 겁니다. 그 자식은 아버지덕에 자기가 좋은 곳에서 공부하고 호강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그 자식의 입장에서는 비교대상이 캐나다 학생들이니까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시의 한국 학생들보다는 자식이 호사스럽게 공부했다고 생각하지만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건 자기 학교에 있는 누구나 하는 일인 겁니다. 그런데 그 캐나다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살고 아버지가 해주는 것이 더 많죠. 그러니까 오히려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겁니다. 생각의 테두리가 다르면 객관이라는 말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난 그런 테두리 없이 진짜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는 사람은 대개 진짜 바보입니다. 

 

사실 베이비붐 세대도 국제시장같은 곳에서 그리는 과거의 가난과 고통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컸습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대학 진학율이 30%쯤 되었는데 우리 부모의 세대에서는 아예 중학교도 못간 분이 아주 많습니다. 대학진학이 보편화된 것은 베이비붐 세대부터였죠. 그렇다면 그렇게 대학에도 갈 수있게 된 베이비붐 세대가 감사만 느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통 부모에게 감사는 했지만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만든 세상에는 불만이 많았죠.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하는 거니까요. 

 

그런 우리 세대가 이제 부모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요즘 청년들은 우리가 어릴적 꿈꾸던 선진국에 살고 있지만 청년입장에서 보면 온통 부족한 것 투성이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요즘에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부럽다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은 쉽고 그 대학에서도 공부도 안해도 졸업시켜줬고 취직하고 집을 샀더니 그게 불어서 은퇴할 무렵에는 누구나 부자되는게 쉬웠던 그런 복받은 세대가 부모세대라고 생각하는 것같았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입장에서는 반박할 것이 많은 이야기지만 그들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것도 같습니다. 우리세대가 한국 전쟁의 참상같은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느끼듯 그들도 군사독재와 가난과 부패가 지배하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느낄테고 사실 뭐든지 빛과 어둠이 있으니까요. 요즘에는 학폭이 큰 이슈지만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폭력이 훨씬 더 일상적이었고 선생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를 아프게 지낸 사람도 있고 그런 시대를 낭만적으로 지낸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힘들었는가하는 문제는 영원히 결론나지 않을 논할 가치가 없는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기존의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 변화에 반영되는가 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도 그 새로운 세대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성세대는 기득권이죠. 그래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들에게 유리한 세상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변하는데 그 이유가 두 가지만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은 그 부모세대의 투자처였고 노후대책이었으며 한국발전에 필요한 인적자원이었습니다. 회사와 노조가 싸움이 되는 것은 노조의 전략이전에 회사가 노동자를 필요로한다는 사실에 기반합니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기성세대는 대학교육을 받았던 베이비붐 세대를 필요로했기에 협상이 있고 변화가 있고 승리가 있었던 겁니다. 또하나는 그 신세대가 숫자가 많다는 겁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종류의 불만과 소원을 가집니다. 민주사회에서는 그 많은 소원들중에서 다수가 소원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뤄지기 쉽겠죠. 선거도 소비도 문화도 그 다수가 주도합니다. 

 

이 두가지는 오늘날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구분포 그래프가 아주 잘 보여줍니다. 지금은 신세대가 소수이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게다가 산업구조도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업이 취업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고 때로는 부담스러워합니다. 정년연장과 청년실업문제가 서로 충돌할 때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의 부모세대는 자식세대가 자신들을 부양할 것을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사람은 소망을 가지지만 민주사회에서 그것이 더 잘 반영되는 것은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인구분포의 정점은 베이비붐 세대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소망을 무시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신세대의 시대가 왔는데도 기성세대가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겁니다. 보수대 민주 구도의 정치 싸움은 사실 노년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싸움입니다. 신세대는 자기 싸움을 하지 못하고 그냥 여기 껴라 저기껴라라고 유혹만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메세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나라라면 자연스레 그 문화도 상당히 기성세대의 것으로 유지됩니다. 하지만 사실 시대는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미국이며 유럽의 나라들을 동경하면서 자라나온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문화는 21세기에는 시대착오적입니다. 386세대는 미국의 록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서구의 1960년대 70년대 문화를 수입했지만 사실 그 시대는 서구에서는 황금시대라고 불리던 시대였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것들이 파괴된 덕분에 세계대전이후 세상은 활황이었고 아폴로 달착륙이 1969년의 일이었기에 과학의 발전은 1970년까지만해도 금방 우주시대를 열 것같았습니다.  자유와 낭만을 부르짓던 문화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겁니다. 무한한 발전이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믿던 시대에서 말입니다.

 

지금도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화성으로 가자고 하며 신대륙개척을 외치지만 21세기는 자원문제, 환경문제로 고통받는 시대입니다. 가난한 후진국들이 자원이며 노동력을 싸게 대주던 덕분에 선진국들이 마구 흥청망청거릴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없습니다. 중국같은 거대한 국가가 부상하자 연료든 고기든 생선이든 뭐든지 그들이 약간만 더 소비해도 전체 지구가 앓아누울지경입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같이 살아남자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코로나 시국이죠. 식수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고 미세먼지로 노을도 보이지 않으며 미세플라스틱 때문에 조만간 생선도 못먹게 된다는 시대에 뭐가 자유와 낭만이며 무한한 발전입니까. 남이야 어찌되건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나라는 어찌되는지 미국이며 유럽의 나라들이 잘 보여줬습니다. 한때 우리의 모델이었던 그들이 말입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신세대는 모여서 부모세대의 한계를 말하며 자기들끼리 뭉쳐서 자신의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주장하며 사회를 바꿔나가게 됩니다. 부모들은 대개 나이만 많지 답을 모르니 우리끼리 답을 모색해 보자고 말입니다. 그게 바로 1980년대의 대학생들이 하던 것이죠. 하지만 숫자가 작은 지금의 신세대들은 적어도 아직은 그걸 한국사회에서 표시가 날만큼 하고 있지는 못한 것같습니다. 

 

부모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의 생각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며 분신자살했던 1970년과 지금의 노동환경이 같다면 우리는 너무 하다고 하겠죠. 더구나 이제는 산업환경도 바뀌어 그렇게 노동시간만 늘려서 될 일이 아니라고 비판할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유아원이나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험보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만 갑니다. 지금의 시대는 학교와 사회를 가르는 벽을 낮추고 취업에 있어서 학벌이 가지는 중요성을 낮춰서 더 일찍 세상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꼭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능력측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게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당연하기 때문일 겁니다. 여전히 학생들은 똑같은 교과서를 배우고 서로 경쟁하면서 계속 학교안의 세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약 주당 노동시간 제한 규정처럼 학생을 학원이나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한다면 누가 그걸 반대할까요? 당연히 기성세대가 반대하겠죠. 만약 고등학교처럼 대학교도 평준화를 해서 수학능력 평가의 최소점을 획득하면 어디든 가까운 대학에 가서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다고 하면 누가 반대할까요? 이것도 기성세대가 반대할 겁니다.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기만 해서는 학력이 떨어질거라고 하면서 학생들을 위해 나쁜 일이라고 할 겁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쓸 수 있게 놔두면 그들은 필연코 그걸 낭비할거라고 주장할 겁니다. 학생들이 모이게 내버려두면 같이 놀 생각만 하지 미래를 위해 소통하게 될거라고는 안믿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무상급식같은 것을 실시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보수의 주장과 놀랍게 비슷합니다. 결국 답은 내가 알고 있으니 조용히 기성세대의 명령대로 열심히 뛰라는 말입니다. 실은 자기도 안했던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고, 자기도 안 읽는 책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정말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아가 대학까지 부모가 시키는대로 학교안만 바라보고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면 결과가 잘 나올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 경우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 변한지 모르고 공부는 무슨 공부냐 정신차리고 농사나 열심히 지으라고 말하는 부모도 과거에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가 잘산다면 그것은 부모말을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학생이 부모말대로 살았다면 민주화도 없었겠지만 한국 영화의 부흥도 없었을 것이고 k-pop도 없었을 겁니다. 노동조건도 열악했겠죠. 게다가 이런 사회적 이득을 제외하고도 개인적으로 불행했을 겁니다. 사실 한국만큼 빨리 변하는 곳도 없으니 부모세대는 자식세대의 환경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부모라면 최소한의 것을 하는 자식에게는 그 나머지는 자기 맘대로 하라고 할 겁니다. 자기는 모르니까요. 하지만 많은 부모는 확신에 차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식을 낡은 시대속으로 집어넣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특히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삶에 대한 자기의 생각 즉 철학입니다. 자기 나름의 가치관이 없으면 무한경쟁에 빠져서 끝없이 노력만 해야 합니다. 언젠가 서울대 의대생이 나는 이제 그만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엄청 노력해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입학하고 보면 결국 거기있는 건 모두가 다 서울대 의대생입니다. 그 안에서 또 노력을 하다보면 능력의 한계나 타고난 조건의 열악함을 절감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다시 제자리고 또 엄청나게 뛰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그 고생길을 스스로 선택한게 아니라 부모나 주변사람의 권유에 따라 하다보니 거기왔다는 생각일 겁니다. 

 

진짜 도움이 되는 철학이란 자기 삶의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가 위안을 얻을 철학을 얻으려면 자기들의 문화를 키우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문화는 결국 철학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인구적으로 소수를 차지하는 젊은이들이 자기 문화, 자기 철학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양보가 필요합니다. 서로 서로 말하고 어울릴 기회도 많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는게 힘들다면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자신들의 머리로 생각하고 소통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별로 그런 여유를 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오답에 빠져들게 하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청춘 남녀가 갈라져 서로를 상처주고 싸우는 것입니다. 서로 도와도 쉽지 않을 판국에 분열하여 서로 싸우고 있으면 더더욱 세상을 바꿀 힘을 내기 힘들겠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젊은이들은 누군가의 자식들이고 그들의 불행은 결국 모두의 불행이 되기 마련입니다. 기성세대는 그들에게 경쟁에 이기고 더 노력하라는 말대신에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자신도 그 댓가를 치루게 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