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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시장 선거 안내문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22. 5. 27.

22.5.27

지방선거에 대한 안내문이 와 있어서 각 후보들의 공약들을 보고 있자니 참 와닿는 공약들이 없었다. 사실 지방선거의 공약들이라는게 늘 그렇다. 후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주로 하면 공약은 대개 장기적 비전을 담지 못하고 특히 새로운 것을 담지 못하게 된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권자의 대부분은 그런 일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방향성도 없고 미래비전도 없이 그저 지금 있는 걸 전부 다 잘하겠다는 식의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늘어놓게 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안타깝다. 

 

초고층빌딩을 세우겠다, ktx역을 만들겠다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서글프다. 인구 65만의 전주에 대한 미래비전도 없이 초고층빌딩을 세우는 것이야 말로 마천루의 저주를 실현하는 일이 아닐까? ktx역이 있어서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정말 그걸 세우면 전주가 좋아질까? 지금이 기차의 시대도 아닌데다가 이미 전라도를 지나는 기차들은 대부분 익산을 통해서 전남으로 가는데? 더 핵심적인 문제는 전주의 인기가 떨어진 것이다. 한옥마을의 인기가 줄어든 전주는 10년전과는 달리 그다지 인기좋은 관광지가 아니다. 다른 곳에 좋은데가 얼마든지 생겼기 때문이다. 전북지역의 교육중심인 전주라지만 사실 지방대 자체가 모두 몰락하고 있다. 전주는 사정이 좀 괜찮지만 전주 주변의 전라북도는 전부 인구가 줄고 노인만 남아 고사하고 있는데 10년후의 전주에 뭐가 남을까? 그냥 하던대로 미적대다가는 고사하고 마는 길밖에 없는거 아닌가? 

 

이 문제는 지방도시 대부분의 문제이며 특히 수도권에서 먼 강원도 전라도 제주도와 경상북도에서 그렇다. 서울 인천 경기지역은 이미 거대 도시화되었고 부산도 근처를 흡수하고 있으니 수도권과 부산근처의 도시는 좀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거기서 떨어지면 농어촌지역이던가 그 지역의 중심도시지역이지만 전주처럼 힘을 잃어가고 있는 중소도시가 되고 만다. 

 

나는 지방을 수도권의 식민지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수도권은 좋은 건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자본을 써서 지방을 지배한다. 대표적인 것이 젊은 인력들이다. 지방은 그저 서울을 보면서 그들의 방식을 수입하고 그들의 은혜를 기다린다. 중앙에서 다리 놔주고 길놔주기를 기다리고 수도권사람들이 쓰는 돈에 기대여 사는 모습이 마치 수출주도형경제로 외국만 쳐다보면서 살았던 20세기의 한국이나 약탈로 표현될 정도의 쌀 수출로 조선사람들은 밥도 잘 못먹고 살았다는 일제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식민지 관점으로 보았을 때 지방도시의 미래는 몇가지에 달려 있다. 그 첫째는 교육이다. 식민지는 교육없이는 망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이 후진국에서 선진국까지 성장한 기본 원동력은 교육열에 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교육을 열심히 시키기 때문에 한국은 성공한 것이다. 지방도시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우선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은 젊은 세대다. 그들이 그 도시의 미래다. 

 

둘째는 첨단기술이다. 후발주자인 식민지가 선진국이 주는 것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계속 약탈경제를 유지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가진 나라는 더 혁신적이고 진취적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작고 후발주자인 회사나 도시나 나라가 진취적이지도 않아서는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결국은 제아무리 투자 많이 해도 남 좋은 일 시키고 마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세계 최고의 첨단 수준을 자랑할 수 있을 만큼의 진취성을 보여야 한다. 한국만 해도 그렇다. 선진국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한국이 순식간에 선진국에 들었다고 말할 수 있게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바로 고속인터넷을 깔던 김대중 시대부터다. 뭔가 하나라도 세계 최고는 한국이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류열풍으로 세상을 휩쓸고 있고 반도체로 인정받고 있으며 자동차도 판다. 첨단 이미지가 없었다면 한국은 이정도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엠에프로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자 한국은 더 혁신적이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이 있는 것이다. 

 

지방도시도 작고 예산이 없다는 말만 할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이나 인천처럼 거대한 도시가 시도할 수 없는 진취적 미래를 시도해서 그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쫒아가는게 아니라 선도해야 한다. 지방도시하면 시골이나 후진적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진취적이지 못하다면 지방도시에는 미래가 없다. 삼성같은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생존방법을 찾는데 벤처가 더 보수적이기까지 하다면 살길이 있을 수가 없다. 

 

진취라고 하면 여러가지 방향이 있을 것이다. 가장 흔한 것이 IT기술을 이용한 미래 생활을 구현하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전통문화보존이나 음식문화보존, 패션, 영화산업등 여러가지 산업측면에서 좀 더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주라면 맛의 도시이므로 전세계 최고 수준의 음식학교가 전주에 있다면 어떨까? 세계가 알아주는 한식요리사가 되려면 그 학교의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는 시대가 되면 어떨까? 이것이 핵심 공약이라면 어떨까? 이것은 앞에서 말한 교육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다. 주차빌딩을 건설하고 강력한 주차단속을 해서 실질적으로 차없는 도시로 만드는 것은 어떤가. 방문객들에게 이런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첨단성이 없이 그저 하던대로 산다면 국가로 말하면 필리핀같은 나라가 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빨리 뛰어가는데 작은 도시가 더 느리게 간다는 것은 배부른 생각이다. 

 

세번째가 문화적 정체성이다. 이 역시 앞에서 나온 것들과 연관된 것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그 지역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면 그 지역은 쉽게 외부에 동화된다. 한국이 한국적 문화정체성이 없었다면 미국이며 중국이며 일본에게 휩쓸려 사라졌을 것이다. 중소도시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지켜가는 중요한 방식 중의 하나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고 이야기를 발굴하며 과거를 보존하는 일은 소중하다. 전주인에게 전주인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지역 경제의 중심화다. 도시는 도시만으로 살 수 없다. 수도권이 지방을 식민지화했다고 나는 비판조로 말했지만 그건 도시의 속성이자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지역의 진정한 중심지역이 되어야 지방도시는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중심이라는 것은 물론 교육을 포함하는 것이지만 쇼핑이나 문화면에서 그래야 한다. 나는 그래서 전주에는 대형쇼핑몰이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는 전주시의 정책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도 있고 그걸 무시할 수만은 없겠지만 왜 전주시에 이케아가 있고, 코스트코가 있고, 스타필드가 있으면 안되나? 

 

지금 수도권의 기차들은 주로 익산을 지나서 전남으로 간다. 전북의 중심인 전주역을 지나서 가는게 아니다. 그래서 지금 ktx를 전주로 지나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언젠가 군산이나 익산에 이케아가 서고, 코스트코가 서고 스타필드가 서면 그때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인가? 할 수는 있나? 그런 날이 오면 전주는 실질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건 다 막으면서 아파트는 열심히 짓고, 이번에는 초고층 빌딩을 짓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안다. 이런 말. 그저 허공에 흩어질 말인 것을. 그래도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시장선거 전단지를 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국가다. 이건 뒤집으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느긋하게 선진국따라가다가 꼬꾸라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게 전주의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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