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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와 부산, 전라도와 경상도

by 격암(강국진) 2023. 3. 18.

23.3.18

나는 전라도의 전주에서 8년을 살았다. 그리고 처가가 부산인 관계로 계속 부산에 드나들고 있는 중이다. 전주와 부산의 차이 그리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차이는 여러가지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정치나 이념은 그들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지만 전통적으로 계속 보수정권을 지지해 온 경상도와 민주정권을 지지해 온 전라도의 차이가 정치 이념과 무관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애초에 의미없는 것이라는 결론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1995년 최초의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가 있은 이래 이미 지방자치의 역사가 거의 30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두 지방에 대한 비교를 하면서 피상적으로라도 정치이념이 어떤 나라를 만드는가를 생각해 보기 시작해야 한다.  

 

전라도에 살았던 8년간 우리 부부가 아주 자주 말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전라도는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로부터 멀기 때문이겠지만 이유가 어찌되었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흉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잘 살게 되었고 지방 자치의 역사가 어느 정도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발이 늦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흉하고 지저분한 고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지방자치 시대에는 어느 고장이나 적어도 어느 정도의 개발은 하게 된다. 지자체장을 선출하면 그 장은 뭔가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축제를 열고 거리 정화 작업이라도 한다.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상대적이지만 개발이 느리다. 그리고 그 느림이 종종 고맙다. 

 

전주에 사는 것이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에 사는 것과 크게 다른 한가지는 교통량이 적어서 한시간 정도의 운전이면 집에서 실로 먼 곳까지 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의 한시간이면 서울도 다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전주에서 한시간이면 지리산에서 고창등 거의 전북의 모든 곳에 갈 수 있다. 광주까지도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정도다. 그래서 자연히 전주에 사는 동안 전라도의 여러 곳을 구석구석 드라이브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전라남북도를 드라이브 하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우 감탄했었다. 남해안의 신지명사십리같은 해변에 가서는 한국이지만 한국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무엇보다 다행으로 생각한 것은 전라도는 아직 여러 흉칙한 건물들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 망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눈높이에서 좋다라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품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빨리 변하는 나라다. 한국의 30년 50년전은 말하자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후진국이었던 때인데 그 시절부터 진행된 여러 개발은 결국 그 땅을 되돌릴 수 없게 상처주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시절의 관점이 정말 옳았을까? 지금의 미래를 그때 제대로 예측했을까? 예를 들어 갯벌이 그렇다. 내가 어릴 때에는 나의 시야가 좁은 탓인지 갯벌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동해안의 깨끗한 바닷물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갯벌은 말하자면 지저분한 곳, 가지않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같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조수간만차가 가장 큰 곳중의 하나가 한국의 서해안이고 그래서 한국의 갯벌은 사실 세계의 보물에 가깝다. 이런 곳이 전세계에 없다. 과거의 우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몰랐기에 우리는 그냥 우리가 가진 것을 당연한 것, 지저분한 것으로 여겼을 뿐이다. 만약 그 갯벌을 과거의 관점으로 모두 망쳐버렸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최소한의 개발로 다듬은 갯벌들을 요즘 보고 있으면 너무 멋지고 사랑스럽다. 엄청나게 돈을 들인 새만금 공사같은 것으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실 그 공사가 아니었다면 아주 많은 포구들이 지금은 멋진 장소로 변했을 것이다. 군산과 김제와 부안군의 미래는 새만금으로 바뀌었다. 좋게 바뀐 것같지는 않다.  

 

전주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한옥마을도 사실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전국에 전통한옥마을들이 세워지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개발이란 낡은 집을 밀어 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라 한옥마을을 유지하고 오히려 그 주변의 생태에 투자한다는 생각은 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를 만들자는 주장도 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단은 내려졌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주 한옥마을은 한때 전국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지금도 전주의 살림에 크게 기여하는 곳이다. 그곳이 아파트단지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전주의 미래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라도에 비하면 경상도는 더욱 더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나서 솔직히 말해 안타까운 느낌이 많이 들 정도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구밀도가 경상도가 더 높고 공장이 많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역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념, 무분별한 개발을 선호 하는 이념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이 문화혁명때 자기 역사와 문화를 다 파괴하고 지금 고생하는데 경상도의 개발지상주의도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경상도에서 자연스러움이나 전통이 많이 훼손된 사례들 중에는 매우 끔찍한 것들도 있겠지만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부산만 해도 그렇다. 매년 몇번이고 내려가는 부산에서 나는 마음이 좀 복잡하다. 부산의 해변가 풍경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이다. 홍콩같은 곳의 풍경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매우 인위적인 것이기도 하다. 지금의 번쩍이는 부산도 2-30년뒤면 낡아질 것이다. 그게 과연 수리가능하고 유지가능한 곳이 될지 잘모르겠다. 하나의 지역은 2-30년뒤면 버리는 곳이 아니여야 하기 때문에 백년 천년의 눈으로 개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천년이라고 하니까 과장인 것같지만 해변이나 산을 되돌릴 수 없게 훼손하고 역사적 기록들을 없애 버리면 천년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눈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은 별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우리가 무시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보물일 수 있다. 

 

내 처가는 부산에서 해운대쪽에 있다. 그리고 부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부산은 지금 쪼개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의 해운대에 살면 서쪽의 부산에는 잘 가지 않게 된다. 차도 막히지만 새로 개발되어 볼거리도 많은 쪽이 자꾸 해운대와 기장쪽에 생겨나기 때문이다. 부산하면 서면같은 곳이 유명한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해운대나 기장쪽의 풍경에 비하면 서면은 초라하다. 부산은 계속 서쪽으로 서쪽으로 서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얼마전에 방송된 다큐에서 서면의 버려진 상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한때는 대단한 개발장소였고 번화가였던 서면은 지금의 부산을 대표하는 번화가를 생각하면 매우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개발이 언젠가는 지금의 번화가도 망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의 전당이며 신세계가 있는 해운대 지역에는 수영강이 흐른다. 높은 빌딩과 멋진 조경으로 사진을 찍어 놓으면 아주 멋진 곳이지만 그 수영강은 물이 시커멓고 물에서 냄새까지 난다. 그래서 수영강변을 산책하는 것은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만큼 쾌적하지는 않다. 자동차도 시끄럽고 냄새도 나기 때문이다. 사실 낙동강 물이 더러워서 그런지 부산은 수돗물도 안좋다. 나는 부산에 계신 처가의 수도꼭지에 여과 필터를 달아드렸는데 그 필터가 더러워지는 속력이 전주와는 비교도 되질 않는다. 그래서 그 비싼 동네에 사는 처제는 조카가 아토피가 있어서 고민이었는데 물좋은 곳에 가니까 몸이 좋아지더라는 말도 한다. 뭔가 꺼림직한 이야기다. 겉만 번지르르한 걸 좋아하는 개발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전주건 부산이건 다 흉한 면이 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크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후에 초심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싸구려 놀이공원처럼 변해 버렸는데 그 이후에 전국의 여기저기에 한옥마을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이제는 딱히 경쟁력이 크게 있지도 않다. 돈이 들어가니까 자제심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 

 

전주에 간 첫해였던가 당시의 전주시장은 슬로시티를 지향한다면서 국제학회까지 열면서 홍보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참석도 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도대체 된게 뭐가 있나 싶다. 전주도 부동산 투기 붐이 불었고 전주의 외곽쪽에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많은 돈을 들여서 재건했다던 전라감영은 재건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고 전주 사람들이 현재의 번화가로 꼽을 만한 객사주변도 몇년이 지나도록 그저 어수선만 하고 뭔가 발전이 없다.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것같다. 유명한 한옥마을 쪽은 현지인은 잘 안가는 지역이 되어버렸고 현지인이 잘가서 번화해진 객사도 뭔가 정점을 지난 것같다. 전주 국제 영화제와 객사 지역의 번영은 서로 깊은 연결이 있는데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게 개발이 진행되는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어수선만 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객사거리도 현지인이 안가는 곳이 될 차례일까? 

 

개발과 보존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하지만 전라도도 경상도도 아직은 자신의 주장을 자랑할만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전주와 부산을 비교하면서 어디가 더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정치가들이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보수가 계속 당선되는 경상도는 과연 지방자치 시대에 어떤 좋은 지역을 만들었는가? 평균으로 따지면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가 부산과 대구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계속 당선되는 전라도에서는 대안적인 지역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차이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같지만 그렇다고 과연 다르다고 할만한 뭔가가 있다는 느낌도 부족하다. 단순히 개발하냐 안하냐가 아니라 무엇을 개발하냐를 선택하고 집중해서 결과를 내야 할 것인데 흑과 백처럼 서로 다를 것같은 민주당과 보수당이 사실 그다지 별로 차이도 없다는 느낌도 든다. 

 

지방 자치의 시대는 계속된다. 그리고 앞으로 지방 자치의 시대는 더 활짝 열릴 수 있다. 교통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정보는 점점 더 빠르게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그 고장의 발전 속력은 굉장할 수 있다. 백종원이 예산 재래 시장 개발하는 것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예산에 대한 주목도가 확 바뀌는 것을 보라.  물론 세상의 모든 이념이나 비전이 하나 마나한 소리고 지역은 그냥 고령화로 황폐화되고 사람은 더욱 더 수도권으로 몰리기만 할 수도 있다. 그게 바람직하지 않으니 그걸 막겠다고 하는 것은 보수건 민주건 모든 정치가들이 하는 소리다. 과연 사람들이 그럴 의지가 진짜 있고, 그럴 능력이 있는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지 우리는 그 결과를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될 것이다. 말했듯이 다이나믹 한국에서 모든 것은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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