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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인공지능에 대한 글

근대화와 AI 그리고 식민지

by 격암(강국진) 2024. 3. 30.

AI 시대가 온다는 말이 세상에 많다. 나는 이런 시기에는 근대화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농업위주의 산업, 종교 중심의 사회, 전근대적인 교육과 신분제도가 있었던 사회에 근대화의 물결이 도달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던가? 엄청난 발전을 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근대화가 전근대적인 사회에 도달했을 때 일어난 일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식민지화다. 근대화를 먼저 이룩한 유럽의 나라들이 전세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이 전세계가 근대화되는 과정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유럽의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것이 아닌가? 조선도 마찬가지로 그 근대화가 먼저 일어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요즘 AI에 대한 소개를 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들으면 그것들이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한가지 우려가 생겨난다. 그것은 그들의 말이 마치 전근대적으로 사는 조선이나 인도같은 곳에서 들렸던 광고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장에서 만든 어떤 기계나 천같은 제품들이 얼마나 좋은가를 선전하는 광고말이다. 그런데 그런 제품들의 소비에만 몰두하던 나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식민지가 되었다. 근대화된 나라가 전근대적인 나라를 만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저쪽은 공장에서 물건을 대량생산하고 있는데 이쪽은 수공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나라였다. 저쪽은 자본이나 토지를 근대적으로 다루는 나라였는데 이쪽은 소유권도 애매하게 존재하는 나라였다. 이런 만남속에서는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일이 없어도 시장은 순식간에 근대화된 나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결국 땅이고 돈이고 다 선진국에게 빼앗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근대화는 많은 지역에서 식민지화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한 전근대적 국가들의 사람들은 근대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근대화를 '근대화의 결과물인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니까 문화주택에 살고, 양복을 입고, 서양신을 신고, 서양화장품을 쓰고, 서양차를 마시는 것이 근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의 산업과 공동체는 파괴되고 힘을 잃고 결국 나라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근대적 문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 문명의 핵심은 단순히 기계가 아니다. 즉 서양사람들이 자동차를 타니까 우리도 자동차를 타면 그것이 과학기술문명에 산다는 뜻이 아니다. 과학기술 문명의 보다 강력한 의미는 오히려 사회조직이나 회사조직 그리고 학교조직에 있다.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에 있다. 과학기술문명이란 하나의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 혹은 하나의 새로운 문제해결 패러다임으로 기계만 만드는게 아니라 사회와 회사와 학교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만든다. 왜냐면 그렇게 시스템이 만들어졌을 때 전체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 문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은 그대로인 채 단순히 서양의 법을 그대로 실시한다던가, 서양의 물건을 그대로 쓰는 것으로는 전근대적인 사회들은 근대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철학이 필요했고 문화적 변화가 필요했다. 사농공상 운운하는 신분제를 생각하는 나라에 서양물건이 들어온다고 갑자기 근대화가 이룩될 수는 없다.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는 것, 계약이 중요하다는 것, 조직 내부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거대한 정밀 기계속의 부품 하나가 하는 역할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전근대의 문화와 관행이 남긴 근거없는 믿음들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AI와 관련된 변화는 어떨까? 거대한 회사들은 AI를 개발하거나 그들의 회사에 AI를 도입한다고 야단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새로 나온 AI를 써보고는 신기하다고 야단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AI를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AI 시대는 반드시 지옥을 만들 것이니 그것을 막거나 느리게 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의 모습은 가난한 후진국에서 영국에서 만든 천같은 것을 처음 보고 신기해하던 그때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AI 문명은 다시 한번 식민지 시대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이유는 AI 문명이라는 것을 한쪽은 이해하는데 다른 쪽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AI를 사용하는 소비자는 AI를 사용하는게 아니다. 그건 AI를 써서 슈퍼지능을 가지게 된 회사가 AI 이전 시대의 무력한 개인과 접촉하는 것으로 당연히 소비자가 위험하다. AI의 시대란 개인도 AI를 써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다. 이걸 위해서는 AI 패러다임의 교육이 필요하다. 

 

돌아보면 근대화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근대화의 역사가 곧 대중교육의 역사다. 그저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대로 농사를 짓는 전근대 시대의 농부는 학교교육이 필요없었다. 말만 할 줄 알면 글자를 몰라도 농사일을 할 수 있었고 그게 지주에게는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장이나 회사 노동자는 어떨까? 무엇보다 근대화된 나라에서는 자꾸 세상이 변한다. 그러므로 근대화된 국가에서 교육받지 않은 개인은 쓸모가 없고 무력하다. 근대화가 지속되려면 그 사회는 개인 혹은 시민에 대해서 다른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근대화된 국가의 정상적인 인간이란 '교육받은 인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적어도 읽고 쓸 수 있는 인간이다. 그게 안되면 그들의 노동의 가치는 한없이 떨어진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예를 들어 한국은 고등학교는 대부분 다니고 대학교도 70% 이상진학하는 높은 교육열의 나라니까 문제가 없는가? 하지만 조선의 교육열이 낮았기 때문에 식민지가 되었을까? 조선에서 더 많은 서당과 서원을 세워서 유학교육을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근대화속에서도 문제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근대화속에서 만들어진 근대화패러다임 혹은 과학기술패러다임을 가르치는 기관이다. 교회에서는 물리학을 가르칠 수 없고 서당에서는 근대학문을 가르칠 수 없다. 각각의 기관이 전제하고 있는 기본패러다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근대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교육은 무의미하다. 마찬가지로 AI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학교의 교육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AI 패러다임을 가르치는 새로운 교육없이는 수 많은 사람들이 교육없이 근대화속에 던져진 사람들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지금의 학교시스템 안에서 교육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해도 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코딩을 열심히 배운다던가 미적분을 배운다던가 안배운다던가하는 것이 핵심이 될 수는 없다. 그 핵심은 새로운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환원론적인 과학기술 철학과는 다른 종류의 철학이며 그걸 통해 세상과 스스로를 새로운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사람들은 AI를 그저 무슨 일이든 해주는 마법으로만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AI의 시대가 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런 세상에는 인간이 있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근대화는 대학같이 그 철학과 지식을 집대성하는 기관이 있어야 촉진된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에도 그런 기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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