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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강의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24. 5. 6.

인공지능 책을 낸 이래 요즘은 몇군데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길고 짧게 AI에 관련된 강의들을 하고 있습니다. 1시간짜리 강의일 때도 있고 2시간 강의 일때도 있으며 2일에 걸쳐 총 4시간 짜리 강의일 때도 있습니다만 강의를 쉽게 만드는데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강의를 할 때마다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이는 제 책을 읽고 사람들이 쓴 독후감을 볼 때도 똑같이 느끼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근본적 원인의 한 축은 물론 강의를 하고 책을 쓴 저의 탓입니다. 좀 더 쉽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탓이죠. 하지만 그것을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문제는 그것에만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건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의 탓이기도 하다, 뭐 이런 이야기가 될 수밖에는 없지만 단순히 누군가를 탓하려는게 아니라 메세지를 전달한다는게 이런 문제를 만든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제가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할 때 그 것이 아주 쉬워지는 극단적인 경우는 상대방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메세지를 애초에 들을 필요가 없는 경우였으니 쉽다고는 하지만 사실 쓸데 없는 메세지 전달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메시지 전달이 의미있지만 쉬운 경우는 그것을 듣는 사람이 아직 그 메시지의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뭘 모르는 지를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AI에 관련해서 말하자면 AI가 뭔지는 알고 있는데 특정한 AI를 만들 때 어떻게 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실들을 듣고 싶은 것이죠. 예를 들어 챗GPT 같은 AI가 있는데 그게 변수조절로 이뤄지는 것은 알고 있으나 변수가 몇개나 되는지는 몰랐는데 그게 3500억개인지 1조 5천억개인지를 듣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메시지 전달이 참 어려운 때는 듣는 사람이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경우입니다. 제 책이나 강의는 AI에 대해서는 대중적 오해가 있으며 전문화의 결과로 심지어 AI 개발자들도 혼동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그 중심 내용이니 자연히 저는 이 경우에 해당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건 강의를 듣건 제 메시지를 받는 분들은 이미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는 때가 많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여러분이 뭘 모르는지 모르고 계십니다. 물론 글자 그대로 이렇게 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발표준비를 하고 슬라이드를 읽다보면 계속 여러분은 이걸 잘못알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것같은 부분이 눈에 띈다는 겁니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종종 그런 말을 하십니다. 자신은 AI를 가볍게 봤는데 AI가 이런 건줄 몰랐고, AI가 인문학과는 상관없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건 전혀 잘 못 생각한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말하자면 자신이 뭘 몰랐던 건지를 몰랐지만 제 강의를 듣고 그걸 알게 되신 분들이죠. 적어도 메시지 전달이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경우랄까요. 

 

어떤 분들은 그냥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더 강의를 쉽게 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내용을 고치다 보니 물론 그런 과정은 계속 되어야 하겠지만 내용을 고치는데에는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도 됩니다. 자세히 차근히 설명한다는 것은 말이 한정없이 길어진다는 뜻이죠. 그러면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워집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을 왜 듣는지에 대한 전체적 그림이 쉽게 보이질 않고 앞에 들은 걸 잊어버리니까요. 그리고 더 많은 말을 듣는 만큼 생각도 더 많아져서 골치가 아프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것에는 다시 다른 의미와 설명이 연결되는 것이어서 자세히 설명하면 할 수록 질문은 줄어든다기 보다는 늘어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고 그걸 압축해서 말을 하면 한 줄 한 줄이 사실은 모르는 분들에게는 몇십분은 설명을 해야할 말인데 그냥 하게 되는 것이 됩니다. 

 

예전에 소통이란 기본적으로 착각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착각하기 때문에 소통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책에는 부분과 전체라던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들을 여러번 읽게 되고, 또 제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책들의 의미는 변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책들이 가진 모험담이랄까, 인간적인 부분이랄까 하는 부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걸 여러번 읽다보니 다른 것이 느껴졌고 사실은 바로 그 다른 부분이 작가가 전달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어떤 메시지를 정말로 들으려면 그걸 좋아해야 합니다. 그 메시지가 뭔지도 알기 전에 말입니다. 좋아하니까 자꾸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메시지를 알게 되는 것이죠. 애초에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 대해 어떤 단정을 합니다. 이건 이거야, 저건 저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래놓고 이런 메시지에는 문제가 있는 거 같아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질 않죠. 마치 저 산은 더 파봐야 보물이 나올게 없어라고 확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니 메시지의 전달은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제 책도 본래는 보다 개인적인 측면이 들어가게 만들어서 반 자서전적인 소설처럼 쓰고 싶었지만 그 기획은 너무 어려운 것이더군요. 그 길을 갔다고 해도 성공했을지, 더 결과가 좋았을지는 모르겠고, 편집자가 말리는 부분도 있어서 지금의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하면 더 읽기 어려운 두꺼운 책이 되었을 겁니다. 

 

소통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을 다시 한번 써보았습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소통이 어려운 일인데도 이렇게 블로그에 와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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