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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서문 : AI 시대는 인간의 변화없이는 오지 않는다.

by 격암(강국진) 2024. 8. 1.

들어가며 

 

AI 시대는 인간의 변화없이는 오지 않는다. 

 

AI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22년에 챗GPT3.5가 선풍적 인기를 얻은 것을 시작으로 생성형 AI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이래 매주 매달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AI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명한 투자가 워렌 버핏은 2024년 5월 버크셔헤셔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AI를 핵무기에 빗대어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AI가 세상을 바꾸는 범위와 속력이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빠르다. 앞으로 몇년이 지나지 않아 AI는 더 작고 빨라져서 각 가정의 PC나 스마트폰에서 작동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 AI들은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면서 세상을 지금보다도 훨씬 더 빨리 바꿔갈 것이다. 오늘날에 존재하는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미래가 얼마나 빨리 올 것인가 혹은 그 미래가 좋은 것일까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지만 AI가 머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날의 학교는 이런 시대에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사회와 학교는 변화의 속도가 다르고, 다양성에서 차이가 난다. 상대적으로 학교는 변하지 않고 획일화된 교육을 하고 있다. 사회속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변화를 만들고 있지만 학교는 이런 변화를 쫒아오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에서는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데 학교에서는 주로 경쟁만 하면서 현실 사회의 문제와는 다른 오래된 문제만 풀고 있다. 당연히 사회의 평가방식과 시험문제를 푸는데 집중하는 학교의 평가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한가지를 말하고 싶다. 그것은 AI 시대는 인간의 변화없이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것같지만 본격적인 AI의 발달은 다른 무엇보다 인간의 정신적 문화적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계몽주의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AI가 발달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AI 시대를 위한 사고를 해야만 한다. 그 사고는 근대적 사고의 핵심이 되는 과학적 사고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AI의 발달은 우리가 근대와 이별을 해야함을 의미하고 우리가 대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말이 과학적 사고가 틀렸다거나 앞으로는 사라질 거라는 뜻은 아니다. 과학적 사고는 중요하게 남을 것이다. 다만 그 사고가 전개될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다. 달라진 환경속에서는 다른 전략과 가정을 가진 사고가 더 효율적이다. 

과학적 사고는 정확한 원인에 대한 탐구와 객관적 지식의 추구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학교교육도 대개 이러한 사고에 기반하여 행해지고 있다. 반면에 AI 시대에서는 정확한 인과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지식은 반드시 객관적이 아니며, 새로운 지식은 주로 컴퓨터 최적화과정을 통해서 발견되어 지게 된다. 이 AI 시대를 위한 사고는 아직 공인된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나는 이것을 이 책에서 확률적 사고라고 부를 것이다. AI는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확률통계적 방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주제상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들리기 쉽다. 그리고 그런 부분도 약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예언이라기보다는 AI가 발달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우리’는 기술자가 아니라 대중과 시민들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AI가 발달한 세상이 저절로 올 것이고 우리는 확률적 사고를 하게 될거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수의 사람들이 확률적 사고를 하는 일없이는 진정한 AI 시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하지 못한 AI 시대란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재앙적 시대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확률적 사고가 과학적 사고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왜 필요하며 앞으로의 교육에 어떠한 변화를 요구할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나의 이러한 주장은 근대화라는 우리의 과거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는 근대교육을 통해 대중에게 과학적 사고를 가르치는 일이 없이는 근대화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과학자가 과학을 이해한다던가 어떤 회사가 대단한 기계들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사회나 국가가 근대화될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전근대의 국가와는 달리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인 나라가 근대화된 나라일 수는 없었다. 문맹은 기계의 설명서도 계약서도 읽을 수 없다. 그들은 근대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근대화를 결국 실패하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 의무교육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이고 교육은 권리이자 의무가 된 것이다. 공장과 기계가 존재해도 그것의 사회적 환경이 되는 근대화된 인간들 즉 과학적 사고를 하는 인간들이 없이는 그 공장과 기계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생기는 문제는 노동자가 비참한 노동환경을 가지게 되거나 근대화가 느렸던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사례중의 하나인 조선의 후예인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근대화는 대단한 물질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것 이상으로 사고의 전환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런 근대문명적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다고 해도 근대인은 전근대인과 이미 다르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벌거벗었다고 해도 전근대에 있었던 왕의 백성과 근대를 사는 공화국의 시민은 행동하는 방식도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도 서로 다르다. AI 사회로의 전환은 당연히 기술적 발달을 요구하지만 근대화과정을 생각해 보고,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기술적 발달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AI가 제대로 발달하는 미래로 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제약이 되는 것은 기술적 발달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전환과 제도적 개혁을 포함하는 사회적 합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 

AI와 관련해서 지금 우리는 전근대의 말기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 AI를 개발하는 것은 소수의 거대한 자본을 가진 회사거나 국가이고 대중들은 AI가 뭔지 아직 잘 몰라서 미래에 대해서 극단적인 희망을 가지거나 공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AI가 사라지게 하지 않는 직업이 어떤 것인가라던가 AI 시대에 인간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의 역할이 없어도 AI시대가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뛰어난 공학자나 대단한 기업만으로 진정으로 AI가 발달한 나라를 만들 수는 없다. AI의 진정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장과 기계에서처럼 AI의 사회적 환경이 되는 사람들이 AI 시대에 걸맞는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교육은 지금의 의무교육처럼 권리이자 의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문맹처럼 될 것이고 아마도 쉽사리 자신의 데이터를 줘버리는 등의 행위로 인해서 착취당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 교육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AI 사회로의 전환이 어떤 물질적 변화만으로 생겨난다고 생각하며 그것의 전제조건이 물질적 변화 이상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변화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AI가 안전해 지는 길이 기술적 문제라고만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침팬지가 조종해도 안전한 제트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사고가 AI 시대에 걸맞게 변하지 않으면 AI는 위험한 것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나는 근대교육의 핵심이 과학적 사고인 것처럼 AI 교육의 핵심도 확률적 사고라고 믿는다. 챗GPT같은 AI를 사용하는 법을 익힌다던가 코딩을 배우는 것, AI 기능을 가진 교과서로 공부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태블릿 PC로 성경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종교교육이 아니고 공학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런 것들은 수단에 불과하고 AI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오늘날 AI 교육이라고 하면 AI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공부할 법한 것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지금이 컴퓨터의 시대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AI의 시대가 온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AI 개발자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을 위한 AI 교육의 핵심이 AI 개발자 교육일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진정한 AI 교육은 오늘날에도 항상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하는 경영자나 투자자를 위한 교육이나 보편성보다는 개성을 강조해야 하는 예술가를 위한 교육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고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확률개념에 익숙해지도록 키워야 할 것이다.  

과학적 사고가 당연한 세상에서 확률적 사고라는 것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새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은 수영하기를 배울 것을 강요한다. 이 말은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은 결국 환경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우리의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화 이후 진보적인 지식인의 생각은 근대적 사고를 보완하고 완성하거나 근대적 사고를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근대화 이후의 인간의 삶이란 결국 근대 사회를 그 환경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퍼나 쿤의 과학철학이나 분석철학을 근대적 사고를 보다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근대에 대한 비판은 자연히 근대가 자리잡자마자 시작되었다. 일찌기 산업혁명의 후반기에 태어난 마르크스는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근대적 사고가 만들어 낸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 특성이 인간이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으로 행동하고 노동하는 존재가 되기 보다는 어떤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노동하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산주의로 알고 있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그 자체가 답이라기 보다는 근대적 사고의 문제로 인해 생기는 인간의 부품화내지 비인간화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의 교육론도 결국 근대 사회 속의 인간이 창의적이지 못하고 부품같아지는 현실을 목격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고 니체이래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말들도 표준화, 수단화되어지는 인간을 근대적 사회가 주는 억압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리오타르는 거대서사의 가치를 부정하고 근대의 보편적 진보이념이 더이상 가치가 없다고 말했으며 푸코는 근대의 지식체계가 권력과 결탁하여 개인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적 사고의 전제를 거부함으로서 근대적 사고를 부정하려는 시도이다. 객관적 지식의 존재를 전제하는 근대적 사고와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성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환경과 문맥속에서 지식과 정의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지식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믿어지는 것은 어떤 사회적 관습이나 권력이 강요하고 있는 지식일 뿐이다.

나는 확률적 사고가 어떤 철학자의 철학과 같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률적 사고는 과학적 사고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확률적 사고를 설명하는 말들은 과거의 사상가들이 제출한 대안들과 통하고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이미 확률적 사고의 조각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예를 들어 확률적 사고가 AI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부분을 생각하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AI가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어떤 시스템을 전제로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은 구조주의철학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월가의 투자자였지만 AI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던 나심 탈렙이 쓴 책이나 네이트 실버같은 데이터 분석가가 쓴 책속에서 우리는 확률적 사고라고 생각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말하는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책을 AI 시대에 대한 예언서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은 과거의 사상가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제 보다 구체화된 AI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찰속에서 추상적 사고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미래적인 AI 기술이 어떤 특성을 가지는가로부터 확률적 사고의 특징들을 꺼집어 낼 수 있다. 뉴턴 과학이 과학적 사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면 AI 기술은 AI 시대를 위한 확률적 사고라는 것이 뭔지를 구체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AI가 발달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의 사상가들은 어떤 새로운 사회나 교육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런 사회가 유지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당시에는 없었다. 산업혁명이 없이는 전근대 사회가 근대사회로 전환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대와 분명히 결별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오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런 대안적 사회가 유지가능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날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AI 기술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 만든 AI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의 사람들이 상상한 것을 초월한다. 다만 우리가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제대로 작동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확률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이유이며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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