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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AI는 소통을 위한 것이다.

by 격암(강국진) 2024. 9. 23.

AI는 보통 자동기계로 이해되는 일이 많으며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로 생각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는 AI라는 기술이 왜 발달했는가 그리고 무엇에 가장 쓸모가 있는가를 생각할 때 오해를 만든다. 모든 기술은 필요에 의해서 발달된다. AI가 발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사회가 너무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과의 소통을 점점 힘들어 하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바벨탑의 전설을 재현하려는 것같다. 높은 탑을 쌓는 인간들에게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게 하는 저주가 내렸다는 이 전설은 복잡한 현대 문명 사회속에서 현실이 되어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록 의무교육에 따라서 문맹을 벗어났지만 점차 문맹에 가까워진다. 법전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법 시스템을 다룰 수 없다면 의미가 없고 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계약서가 너무 길고 복잡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오늘날의 세상은 한 개인이 직접 보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며 빠르게 움직인다.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폭탄이 우리의 물가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의 영향으로 점점 더커지는 불확실성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진짜로 큰 돈이 걸린 판단은 개인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의 정보 분석에 근거해서 내려져야 한다. 오늘날에는 세상에 수 많은 전문가가 있고 그 전문가들의 상담을 받으면서 기업의 총수나 정치가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판단할 수 없다. 세상에는 이미 너무나 엄청난 지식의 탑이 건설되어져 있다. 마치 전설에나오는 바벨탑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서나 직원이나 컨설턴트따위를 쓸 수 없는 일반인들은 점차로 도시속의 촌놈 아니 심하게 말하면 제트기를 탄 원숭이 같아진다. 흘러다니는 말의 의미를 전혀 모르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며 지금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아니 지금 내게 필요한게 뭐고 그런게 존재나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도대체 내 아들이나 딸은 무슨 학과로 진학해야 하는지 아무 감도 생기지 않는다. 어떤 곳에 있는 집을 사야 하는지, 어떤 주식을 사야하고 어떤 적금 상품에 가입해야 하고 어떤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 아무 감도 생기지 않는다.

 

AI의 발달은 따지고 보면 이런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재미를 위해 사회적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AI의 성공적 응용의 예는 문자인식인데 이는 수 많이 존재하는 문서와 책들을 스캔하여 디지털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에 의해서 발달한 기술이다. 이 기술이 없다면 사람이 일일이 타이핑해서 디지털 파일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결국 책과 문서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AI를 쓸모 있게 한다. 세상에 책이 열권정도 밖에 없다면 AI 기술이 필요없다. 네비도 길이 너무 많고 복잡하니까 필요한 것이다.

 

AI가 인간의 필요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발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그것이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AI가 하고 있는 일은 그 데이터를 생산하는 시스템과 소통하는 것이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기술이란 자동차를 기계가 운전하는 기술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교통 시스템이라는 시스템이 만드는 데이터에 기반해서 그 시스템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우리는 기계를 보는게 아니라 환경을 볼 필요가 있다. 결국 환경이 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가 AI가 된다.

 

AI가 소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무시되는 이유는 우리가 종종 환경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환경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동차는 그냥 달린다. 그것이 교통 시스템이라는 게임의 작은 일부라는 생각은 쉽게 망각된다. 왜 그런가? 왜냐면 우리는 교통법이 있고 도로가 있고 신호등이 있고 자동차 수리소와 주유소가 있으며 운전규칙을 지키는 다른 운전자가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AI는 아직 기계가 친기계적인 환경을 당연히 가지는 것처럼 친AI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AI는 본래 훨씬 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위한 것이다. 데이터가 달라지면 AI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AI의 경우에는 더욱 더 우리가 AI를 통해 환경과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는 AI가 요즘은 흔하다. 그것도 아주 잘한다. 이럴 때 우리는 이 AI를 인간 프로그래머를 대체하는 기계로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본래 컴퓨터는 인간이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계다. 그런데 그걸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프로그래머가 만든 프로그램을 써서 자기 컴퓨터에게 일을 시킨다. 우리는 이걸 당연시하게 되었지만 이건 당연한게 아니다. 이건 마치 내가 수화만을 아는 장애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중간에 번역자를 세우는 것과 같다. 당연히 번역은 소통에 왜곡을 가져오고 소통의 양을 제한한다. 그 번역을 인간이 하니까 비싸고 느리다. 내가 컴퓨터에게 시키고 싶은 것은 단순한 작업인데 나는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가 알아봐야 하고,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은 유료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작업들까지 잔뜩하는 거대한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을 짜는 AI란 말하자면 내 개인용 컴퓨터 언어 번역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을 컴퓨터 언어로 번역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일전에 내 맥에 저장된 아이폰의 백업파일에서 내 사진을 저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걸 해주는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그 가격이 5만원이나 했다. 그래서 AI에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AI는 당장 그 일을 하는 프로그램을 짜서 파일을 빼내고 저장해 주었다. 불과 1분정도의 대화면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실행된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상업용 프로그램을 짜서 파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나와 컴퓨터와의 소통이다. 이건 단순히 돈을 절약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필요한 것만을 컴퓨터가 한다. 나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 코딩을 배울 필요도 없다. 코딩은 AI가 하고 실행도 AI가 한다.

 

이런 걸 법률 시스템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나는 법률가가 아니므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룩하기 위해서 법률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법률 시스템과 소통하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다. AI가 단순히 지식을 주는게 아니라 AI는 나로하여금 법률시스템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이건 내가 알파고같은 프로그램을 써서 바둑 세계챔피언만큼이나 바둑을 잘 두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알파고에게 이 상황에서 바둑을 이기고 싶으면 뭘해야 하는가를 물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법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상속세나 전기세를 줄이는 방법같은 거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AI가 프로그래머를 대체하고 법률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희생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눈이 너무 팔려서는 안된다. 문제는 내가 컴퓨터와 소통하는 것이었는데 이제까지는 그걸 하는 방법이 프로그래머라는 전문가를 키워서 그 사람에게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컴퓨터의 사용법이 인간의 한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한계가 깨지는 순간 전체 소통의 양과 질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컴퓨터의 의미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종종 자동 전화 교환기의 예를 든다. 전화가 나왔던 초기에는 인간 교환수가 전화를 연결했다. 그리고 자동기계가 나오자 이 인간교환수들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인간 교환수가 직업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다. 전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전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교환수가 연결해 줄 수 있는 전화통화량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전화는 세상을 바꿔왔다. 전화기가 세상을 얼마나 바꾸어 왔는 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자동 전화 교환기의 도입을 인간 교환수들의 실직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터넷의 도입을 종이에 쓴 편지가 경쟁력을 잃은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만큼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AI는 모든 종류의 시스템과 인간간의 소통을 혁신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시스템과 인간이 아니라 시스템과 시스템 그리고 AI와 AI의 소통도 AI가 혁신할 수 있다. 이런 혁신은 이미 어느 정도 일어나서 많은 부자 회사들이 만들어졌다. 인터넷 상거래, SNS 회사, 공유경제 회사같은 것들 말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하는 것은 우리들의 상상력에 달린 일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예를 들어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AI가 개선한다고 하면 좀 무섭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AI가 직접 대면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날은 오지 않을거라 믿는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이미 기계를 써서 소통하고 있다. 전화기의 예를 이미 들었지만 메신저나 SNS가 또다른 예다.

 

우리는 먼저 인간과 인간의 소통도 그냥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얼굴표정의 인식이나 목소리 톤의 인식같이 인간의 5감을 쓰는 소통도 있지만 글이나 말로 행해지는 소통이 많다. 그런데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고전적 소통방식에 있어서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 예를 들어 누구나 멋진 말로 자신이 오늘 점심에 갔었던 커피숍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SNS나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보내는 기술은 많은 사람에게는 해방이었다.

 

말주변이 없는 사람들도 사진만 찍어서 보내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SNS의 나쁜 점을 말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기술은 중독되면 즉 과용하면 다 나쁜 기술이 된다. 자동차도 너무 많이 타면 다리가 약해진다. 그런 걸 고려하면 대중이 SNS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SNS가 좋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장애인들에게 소통할 도구를 준 것이다. 말주변이 좋고 글을 잘쓰는 사람들은 정말 별거 아닌거 가지고 자신이 대단한 것을 한 것처럼 말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소외되고 있던 사람들이 이젠 자기를 표현하고 소통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았을 때 AI를 통해서 소통하는 일이 미래에는 큰 인기를 끌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사진찍느라 바빠서 경치를 잘 못볼 정도다. 그런데 AI가 자동으로 마치 내 전용 사진작가이자 전기작가처럼 내 사진을 찍어주고 글도 써서 나의 하루를 멋지게 기록해 준다면 어떨까? 나는 그냥 여행을 즐기고 그 여행은 멋지게 기록으로 남아서 나중에 볼 수도 있고 남에게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더이상 사진찍느라 바뻐서 뭘 못하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게 AI를 통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아니면 뭔가? 지금도 이미 AI가 회의록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AI는 환경과 시스템과의 소통에 대한 것이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우리는 먼저 우리의 주변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는 계속 우리 주변을 살피면서 이 길은 어떻게 건너야 할까, 저 풀위에서는 미끄럽지 않을까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 주변을 살피고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문제는 지금 우리 주변의 환경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은 곧 또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우리 주변의 환경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 농부가 작물을 키우려면 하늘도 보고 농작물도 살펴야 한다. 공식대로 하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보편성에 기반한 것을 가르치는 경향때문에 자꾸 환경과의 대화를 잊게 만든다. 장사로 말하자면 고객이 뭘 필요로 할까를 살피면서 그에 맞춰 물건을 만들기 보다는 어떤 절대적 기준으로 좋은 물건을 만들면 장사는 되게 되어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부터 대학에 이르기 까지 긴 시간동안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자기 자신을 둘러보는 일을 하지 않은 채 표준적이고 똑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경쟁하면서 산다.

 

그래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AI하고도 경쟁하려는 듯 하다. 누가 누구를 이기는가, 누가 누구를 대체하는가에 주목한다. 세상은 변한다. 그 변화의 핵심은 AI와 인간의 경쟁이 아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AI라는 기술을 통해서 연결과 소통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누구인가를 바꾼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확장한다. 그것이 AI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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