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바깥쪽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부모탓이라거나 사회탓이라거나 혹은 나를 괴롭힌 누군가의 탓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영향이 크기는 하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내부의 영향도 받는다. 그리고 길게 보면 내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데 바람이 불면 나뭇잎은 거꾸로 올라간다. 옆으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떨어지는 속력이 느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뭇잎은 결국 떨어진다. 나뭇잎은 물체로서 중력의 법칙에 따라 계속 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하늘에서 끝없이 머무는 나뭇잎은 없다. 이걸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떨어지고 자 하는 것은 떨어지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살게 된다. 태어난 조건도 다르고, 살다가 이따금 경험하는 행운이나 불운이 우리의 인생길을 크게 바꾸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속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걸 당연한 것으로 알고 그리고 가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지듯 모두가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자기가 뭔가를 원할 때 그게 뭔줄 알고 원했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불평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과 선택에 대해 자신이 책임이 있다는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결국 공짜가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래서 뭘 원하는가? 우리는 대개 이걸 진지하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건 당연한 것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길 원하고, 경쟁에서 이기길 원하며,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유명해지기를 원한다. 우리는 성욕과 식욕을 채우길 원하고 되도록 많은 권력을 가지기를 원한다. 원하는 것이 끝없이 많은데 우리가 뭘 원하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인간이 가진 기회와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에는 댓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누군가가 뜨거운 아이스 커피를 원한다면 세상에는 그런게 없다. 나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사람들이 내 개인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싫다고 한다면 세상에는 그런게 없다. 세상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때 그때 원하는 것을 자꾸 바꾸는 사람, 그러니까 산에 가려고 했다가 정작 산에 도착하자마자 바다가 좋겠어라고 하고 바다로 가고 바다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산이 좋겠어라고 하는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을 뿐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 사람은 바다같은 산, 산같은 바다라는 있지 않은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고, 그때 그때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흔들리면서 인생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길게 보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욕망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끊김없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흔들리면서도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리로 천천히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때로 그것을 깨닫고서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사소한 것에 의해서 결정되었는지에 놀라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욕망은 그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일 수 있다. 초등학생시절 부모님의 보호속에서 아무 세상걱정없이 살던 그 시절이 좋았다는 것 그것이 알고 보면 가장 핵심일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하지만 그런 사람은 결국 또 다른 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보호속에서 그 사람에게 투정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퇴행성 욕망으로 현실을 살아가기 두렵고 어려우니까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지속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런 욕망은 대개 사기꾼에게 우리를 이끈다. 부모처럼 댓가없이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찾아서 살고자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속할 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이름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름에 속게 된다.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지만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는 일만 하고 있다면 그래도 청소부다. 조금 멀리서 보면 그 사람은 결국 왕이나 왕비가 아니라 청소부가 되어 있는데 그래도 이 사람은 이름만 왕이나 왕비인 자리에 연연한다. 이름에만 집착하면 실질적으로는 얻는게 없으니 인생이 불행하다. 그래도 이 사람은 그 이름이나 자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지만 스스로도 고통에 빠진다.
어떤 사람은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언제나 지평선이나 수평선 너머를 꿈꾼다. 그리고 좀 더 넓게 세상을 파악해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사람이 태어나서 그저 먹고 마시고 나이들어서 죽는 것이 전부라면 그건 짐승이나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일관성이 있는 노력으로만 이뤄질 수는 없다. 많은 일들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이고 때로 그저 아무 생각도 안하고 싶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기를 완전히 멈춰버리는 일은 옳지 않다. 뭘 생각하는가? 뭐가 나에게 중요한 일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게 세상에 있기는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고 해도 길게 보면 많은 일들은 허망하다. 학교에 있을 때는 성적만 좋으면 뭐든 다 되는 것같지만 그건 유치원 시절에는 부모의 인정만 받으면 뭐든 다 되는 것같은 생각과 같다. 어떤 시스템안에 갇혀서 그것이 주는 댓가를 당연시하면 그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시스템이 무너지면 우리는 그 긴 시간이 그저 제자리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산처럼 먹을 것을 쌓아놓고 배고파하며 사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게 살고 있다.
예를 들어 형편에 맞지 않는 결혼식을 하기 위해 삶이 흔들릴 정도로 돈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들은 그렇게 산다. 왜냐면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잘못된 것은 없다. 다만 그 사람이 그 댓가로 받게 되는 청구서를 불평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았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도 기쁘게 져야 한다. 왜 공짜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냐고 불평해서는 안된다.
'주제별 글모음 > 생활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간에 대한 존중 (0) | 2024.08.09 |
---|---|
열 대박이 한 쪽박을 이길 수 없다. (0) | 2024.07.29 |
왜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않는가? (2) | 2024.07.25 |
진보와 보수 그리고 시대적 착오 (0) | 2024.07.15 |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0) | 2024.07.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