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촌3호의 하루
어느 닭공장에는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 되자 닭우리에는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교촌3호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먹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닭우리에는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교촌3호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먹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닭우리에는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교촌3호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먹었습니다.
교촌3호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문이 너무 일찍 열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졸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어떤 날에는 빗소리가 천장에서 시끄럽게 나기까지해서 더 더욱 졸음이 왔습니다. 그것뿐이면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물도 어느 날에는 너무 적게 주어질때가 있었습니다.
물이 충분히 있는가 싶으면 또 어느 날에는 먹이가 전날보다 적었습니다. 그 전날에 교촌3호는 그가 평생 행한대로 정확한 속력과 강도로 같은 만큼의 먹이를 삼키면서 정확히 먹이를 먹었고 그건 그 전날도 그리고 그 전의 전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먹이를 먹는 동작에 능숙한 나머지 그런 동작을 취하는 것은 거의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날에는 먹이가 너무 빨리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분명히 어제 내가 잠을 자면서 우리의 오른편으로 치우쳐서 잤기 때문일거야. 우리의 정확히 한가운데에서 자지 않을거라면 우리라는게 왜 있겠어? 내가 우리의 한가운데서 정확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잔다면 나에게는 다른 어떤 날보다도 많은 먹이가 주어질것이 틀림없어.'
그래서 교촌3호는 우리의 한가운데에서 정확히 자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어느날 교촌 3호는 먹이통에 평상시보다 2배가까이나 되는 먹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교촌3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먹이는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그것은 교촌3호가 자면서 몸을 움직였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교촌3호는 몸을 움직이지 않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에는 자포자기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먹이가 더 많이 주어질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특이한 날에 대한 설명을,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는 심각히 생각했습니다. 이건 특이한 날이 가끔씩 있는 것 일수도 있었고 단순히 중앙에서 자는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의 균형과 자세가 어떤가에 따라 먹이가 다르게 주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답은 잘 몰랐지만 우리 안에서의 자는 위치와 먹이의 양에 대해 교촌3호가 이제까지 개발한 이론에 대해 교촌3호는 매우 뿌듯했습니다. 자신의 현명함과 성실함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데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처럼 성실하게 생각하며 사는 닭도 없을꺼야'
교촌3호는 잠이 들기이전에 그가 취했던 발의 모양새와 물의 양이 관련이 있다는 그의 다른 이론도 분명 검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주인집 아들 계란이
한편 그 닭공장 주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집이 닭공장을 하고 있는데다가 머리 위쪽이 뾰죡하게 생긴 괴상한 머리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그를 계란이라고 불렀습니다. 계란이는 이런 별명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피해서 가급적 집안일을 하면서 집안에서만 매일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닭장문을 열고 물을 주고 먹이를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시 물을 주고 먹이를 주고 닭장문을 닫았습니다. 그는 그의 못생긴 얼굴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면 너무 부러워서 자신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예쁜 숙이와 하루만이라도 데이트를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내일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달걀이에게 언젠가 엄마는 콩을 많이 먹으면 잘 생겨진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머리 모양도 예뻐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달걀이는 매일 같이 콩을 많이 먹으면서 삽니다.
교촌3호의 고민은 정작 닭을 키우는 계란이에게는 기묘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계란은 아침이되면 닭장의 덮개를 열어 빛을 들어가게 하고 물을 주고 먹이를 주었습니다. 교촌3호가 고민하는 그 모든 일들은 교촌3호의 어떤 노력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라 바로 그 아들의 서투름과 게으름때문에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서투르고 성의없이 먹이를줄 때면 어떤 날에는 먹이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어떤 날에는 먹이를 주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닭장에 빛을 집어넣는 것도 그 아들이 늦잠을 잔 것 때문에 그렇게 되는 날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데 교촌3호는 엉뚱한 고민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생각에 따르면 교촌3호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촌3호가 있는 우리에 있던 다른 닭들이 한마리 한마리씩 없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교촌3호는 그 닭들이 닭튀김이 되기 위해 죽임을 당하고 껍질이 벗겨져서는 튀겨진다는 사실을 알수는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다른 닭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마땅했습니다. 교촌3호가 어떤 법칙을 고민해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어떤 닭들이 우리에서 사라지는가에 대한 이론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촌3호는 먹이의 양은 우리 안에서 어디에 자는가에 달려있다는 그의 가설을 증명하는 일에만 골몰할 뿐 다른 닭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교촌3호는 다른 닭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그가 관심있어하는 수면시간이라던가 물의 양이라던가 먹이의 양과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끔 다른 닭들이 내는 소리가 시끄럽게 나면 수면에 방해를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촌3호는 내 주변에는 다른 닭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닭들의 존재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런 닭의 존재가 머릿속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그런 닭들이 사라지건 말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입안 가득한 콩을 삼키면서 계란이는 생각했습니다.
'그 닭은 바보야!'
3. 물을 주는 기계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닭공장의 주인은 물을 주는 기계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닭장에 주어지는 물은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양으로 주어졌습니다. 주인집 아들인 계란이는 물주기를 신경쓰지 않아서 좋은 일이라고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닭들에게도 좋은 일일거라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이제 서투른 주인집 아들이 대충 물을 주는 것과는 달리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양의 물이 주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젠가 닭공장을 100% 기계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때가 오면 먹이도 자동으로 정확히 같은 양이 주어질뿐만 아니라 천정이 열리고 닫히는 것도 자동으로 행해질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닭들이 어떤 무게가 되면 자동으로 골라져서 자동으로 도살되고 자동으로 털이 뽑혀서 튀김이 되는 그런 미래도 가능할것이었습니다.
그 자동으로 물주는 기계가 설치되고 얼마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계란이는 교촌3호의 혼잣말들에 귀를 기울이다가 기묘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는 자신이 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교촌3호가 스스로가 물을 먹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이유는 어느 날에는 목이 더 마르고 어느 날에는 풍족히 물을 먹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이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교촌3호는 어떻게 하면 물을 더 먹을 수 있을까나, 지금 물이 있을때 물을 아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따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계가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의 물을 주고 물통을 자동으로 청소해 버리게 되자 교촌3호는 금새 물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자신이 물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교촌3호는 죽을테지만 교촌3호는 물이란걸 자신이 마시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물이 고마운 거라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계란이는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 자신도 특별히 열심히 뛰거나 수영을 할때가 아니면 자기가 숨을 쉰다는 사실, 공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도시로 가보니 공기가 지독했습니다. 매연과 이상한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그제서야 계란이는 자신의 동네에 언제나 있는 그 상쾌한 물이며 공기가 당연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신이났는지 얼마지나지 않아 조명 기계와 먹이를 자동으로 주는 기계도 설치했습니다. 이제 닭장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강도의 빛이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또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양의 먹이와 물이 닭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교촌3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촌3호는 살아있었지만 살아있는게 아니라 무슨 밭에나는 무나 배추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닭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닭들은 모두 꿈없는 잠을 자는 것처럼, 몽유병환자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비극이 생겼습니다. 닭장안에 있던 닭들이 매우 약해져서는 많은 닭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촌3호도 매우 약해졌습니다. 어느 닭이 잘난 척하면서 말했습니다. 이게 다 우리가 방탕하게 시간에 맞춰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어지는 먹이만 먹지않고 다른 것을 먹거나 쓸데없이 움직이거나 이런 저런 다른 공상에 시간을 보내는 닭들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맹렬히 노력해서 매일 매일을 똑같은 일과에 따라 살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꼭 필요한 일만 해야겠습니다. 허투른 생각을 하지말고 진리의 말인 내말만을 다시 반복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멍한 머리를 가진 한 닭이 말했습니다.
'잘 이해가 안갑니다만.'
잘난체 하는 닭이 말했습니다.
'잘 모르니까 그런 겁니다. 공부하세요.'
멍한 머리를 가진 닭은 조용히 잘난체 하는 닭의 말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교촌3호도 잘난체하는 닭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따랐는데도 몸이 좋아지기는 커녕 날로 나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사방에 물어서 이유를 찾았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보니 그것은 모두 기계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닭들이 몽유병환자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닭은 닭이 살아기에 충분할 만큼의 불확실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조에 오징어를 옮길때도 그냥 편안한 수조만 만들어주면 오징어가 다 죽어버린다구. 그런데 수조에 오징어를 먹고 사는 놈을 하나 넣어주면 오징어들이 훨씬 나쁜 환경에서도 오래 살아남지. 살려고 움직이다보니까 살게 되는거야. 모든게 다 정해진 대로만 있으면 생명은 오히려 단축된단 말이야!'
술을 한잔 마시면서 아버지가 초빙해온 사람이 말했습니다. 보험을 들라고 찾아온 친척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잘난 척하는 닭의 말은 자신이 말한대로 더더욱 기계처럼 살면 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닭은 닭이 살아남기에 충분한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촌3호는 그 잘난척 하던 닭을 찾았습니다. 혼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닭은 죽었는지 튀김이 되었는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계란이는 생각했습니다. 닭에게 꼭 필요한 불확실성이 있다면 인간인 자기에게 필요한 불확실성이라는게 있을까? 계란이는 교촌3호가 철학을 하지 않는 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철학을 하는 계란인지는 확실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란이는 불안해 졌습니다.
4. 철학을 하는 닭
기계들은 없어지고 이제 전과 같은 나날이 돌아왔습니다.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 3호는 다시 건강해 졌습니다. 아침에 문이 열리고 물과 먹이가 주어졌습니다. 어떤 날에는 조금 더 많이 어떤 날에는 조금 더 적게 주어졌습니다. 교촌3호는 다시 물과 먹이에 대한 그의 이론에 골몰하는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그에게는 신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수면과 물과 먹이였으므로 그는 그것들에 집중하며 그것들이 변해가는 불확실성과 싸우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자신의 즐거움을 최고치로 올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그도 이 세상이 수면과 물과 먹이로만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도 다른 닭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닭장밖의 세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먹이와 물을 줄때 마다 나타나는 인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조에 따라 그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수면과 물과 먹이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그것들 이외의 것에 시간을 쓰는 일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닭이나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계 장치 사건 이후 그의 마음에도 한가지 의혹이 생겨나긴 했습니다. 벌써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일이긴 했으나 그는 한때나마 물이란게 소중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기계가 규칙적으로 정확히 같은 때에 정확히 같은 양의 물을 주던 때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지만 그는 자신이 물을 마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옛날 처럼 그는 물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내일은 물이 안올지도 모릅니다. 그럴때를 대비해서 몸에 수분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던가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돌고 도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그가 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며 물이외의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이웃 닭이 어떻게 되더라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집중한다는 자신의 신조가 옳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애초에 물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웃 닭이 어떻게 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더라면 그는 이웃닭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점점 더 이웃닭이 중요하게 느껴지게 되지는 않았을 까요? 애초에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믿음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나 이정도 생각을 한것은 교촌3호에게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을 느끼며 교촌3호는 생각을 중단했습니다.
그는 횡설수설하던 이웃닭 한마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닭은 너무도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다가는 또 일단 말을 하면 너무나 많은 말을 하기를 좋아해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골치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닭은 철학을 하는 닭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촌3호는 그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도대체 물이며 먹이와 어떻게 연관된다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교촌3호는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먹이를 좀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철학을 하는 닭은 대답했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은 먹이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먹이와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더 중요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럼 그게 뭐에 대한 것인가요?'
'이것은 우리는 누구인가,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교촌3호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철학을 하는 닭에게서 관심을 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니 우리는 닭이다. 우리는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는 닭이다. 그건 뻔한 일인데 그것에 대해 저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것은 도무지 알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철학을 하는 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닭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닭도 없는 것같았습니다. 아랫칸에 살고 있는 닭은 그런 닭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같았습니다. 그는 결국 그다지 주목을 끌던 닭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교촌3호도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허무맹랑한 생각보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해야 할때이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할때였습니다. 어느새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한때 물에 대해 잊어버린 때가 있었다던가, 철학을 하는 닭이 있었다던가 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교촌3호는 우리 중간에 똑바로 몸을 고정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불어나고 있는 몸무게는 그의 성실한 삶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5. 계란이의 결혼식
계란이는 숙이와 데이트 한번 번번이 해보지 않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계란이는 처음에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왠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따금 갑자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정은 이랬습니다. 숙이를 쳐다보면서 어쩔줄 몰라하는 아들을 알고 있었던 계란이의 엄마는 혀를 차더니 계란이에게 숙이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숙이한테 장가라도 들고 싶은거냐?'
장가라니! 그냥 데이트만 한번 해봐도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던 계란이, 날마다 콩을 먹으면서 얼굴이 잘생겨지면 언젠가는 숙이와 이야기라도 한번 해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계란이는 장가라는 말을 듣자 머리를 누가 망치로 때린 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기는 감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얼굴이 뻘개져서는 우물쭈물 계란이는 말했습니다.
'나같은게 그런 말하면 사람들이 화내.'
그말을 듣자 계란이의 엄마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는 갑자기 크게 웃었습니다. 한동안 웃던 엄마는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말했습니다.
'이 등신아. 누가 화낼 일인지 한번 보자꾸나.'
그러더니 몇일이 지나지 않아 계란이에게 엄마가 말했습니다. 숙이랑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멍하니 쳐다보는 계란이에게 엄마는 말했습니다.
'이 바보야. 너도 세상을 알아야해. 솔직히 네가 그리 잘생기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안다. 그것때문에 네가 다른 아이들한테 기죽어하는 것도 알고. 하지만 말이야. 세상은 잘생기고 안 잘생기고에만 관련된게 아니란 말이야. 너는 항상 콩을 먹으면 잘생겨지는가, 아카시아 기름을 바르면 잘생겨지는가 이런 질문만 하지. 이제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 말이야.'
'그럼 뭐가 중요한건데?' 계란이가 말했습니다.
'흥! 돈이지.'
'돈?'
'그래 이바보야.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부자가 바로 네 아버지란 말이야. 여자들이 얼굴 잘생긴거 따지기나 하는줄 알아. 돈이면 다란 말이야. 결국 이 마을에서 네가 결혼하자고 해서 결혼하지 않을 여자는 하나도 없다구. 너는 네가 이 마을에서 제일 못난이인줄 알더구나. 사실은 너는 이마을의 왕자란 말이야. 네가 조용해서 그러려니 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구나!'
계란이는 한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못생겨서 가장 못난 아이로 생각했던 자기가 왕자님같은 사람이라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질않았습니다. 그러고보면 자기집이 다른 집보다 부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때로 돈걱정을 하는데 그는 그래 본 적이 없었습니다. 뭐든 가지고 싶으면 다 가질수 있었기에 그는 마치 공기나 물처럼 돈은 그저 늘상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스로가 돈때문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그럼. 정말로 내가 숙이랑 결혼하는거야?'
'당연하지. 내가 그 집에 가서 우리 아들이 숙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을 꺼냈더니 당장 오늘이라도 데려가라고 야단이더구나. 그래서 그럴 수는 없고 다음주에 데려오겠다고 했다. 숙이는 이제 네 색시가 된 거야!'
계란이는 아무튼 너무 기뻣습니다. 그렇지만 습관때문인지 당장 숙이네 집에 달려가서 숙이를 만날 용기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멍해서 한 주가 지나고 드디어 숙이를 계란이네 집으로 데려오는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숙이는 다른 어떤 날보다 예쁜 모습으로 멋진 옷을 입고 계란이 옆에 앉았습니다. 계란이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실감이 안나서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계란이를 쳐다보면서 은근히 비웃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기도 인정했습니다. 자기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숙이랑 결혼할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계란이는 자신이 왕자같이 귀한 사람이라는 엄마의 주장에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식은 시작하기 직전이었고 숙이는 계란이의 신부가 되기 위해 자기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돈이라.' 계란이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건지 몰랐습니다. 그저 잘생긴 얼굴이 중요한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잘생긴 기준으로 생각하면 자기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신은 부자였고 자기는 왕자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꿈꾸기도 부끄러워할 정도의 여자였던 숙이가 몇일만에 신부가 되겠다고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너무 기쁜 날이어야 마땅한 날에 계란이는 매우 기쁘다가도 왠지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콩을 많이 먹어서 잘생긴 남자가 되고 그래서 숙이가 자기를 좋아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고 계란이는 생각해 봤습니다. 적어도 그것은 자기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돈때문에 숙이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계란이는 탁자위로 눈을 돌렸습니다. 거기에는 먹음직한 닭튀김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였습니다.
튀김이 되버린 교촌3호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계란이는 숙이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숙이는 이제 매우 달라보였습니다. 숙이가 나쁜 여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 마을여자들은 다 그렇게 결혼한다고 합니다. 계란이만 낭만적 사랑운운했을뿐 결혼할때가 되면 부모가 정해준 남자, 특히 돈이 많은 남자를 골라 결혼하고 애를 낳고 그렇게 결혼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엄마도 그렇게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계란이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잘생겼냐 잘생기지 않았냐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돈이 있냐 없냐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한거라고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숙이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꽉 다문 입이며 예쁘게 쳐진 눈꼬리를 쳐다보다보니 왠지 계란이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당장 알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이렇게 결혼하고 이렇게 아이를 낳고 이런저런 역할을 하면서 늙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자기 아들이 누구와 결혼하는가 하는 것은 내 아내가 결정할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일까? 엄마가 가르쳐준 것이 끝일까? 돈이 있냐 없냐라는 질문에 비하면 잘생겼냐 잘생기지 않았냐하는 것이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질문이 있어서 그 질문이 돈이 있냐 없냐하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탁자위에 튀김이 된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가 보였습니다. 철학을 하지 않는 닭은 그저 죽어서 닭튀김이 되었을 따름입니다. 자기의 운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채 말입니다. 닭이 닭이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불확실성에 대해 계란이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기는 너무 좁은 집안에서만 머물면서 생각하지 않는 닭처럼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란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숙이를 보았습니다. 잠시후 계란이는 숙이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해.'
그 순간 철학을 하지 않는 계란이는 철학을 하는 계란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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