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I 학교, AI 환경

새로운 철학이란 무엇인가?

by 격암(강국진) 2025. 4. 6.

새로운 시대는 철학의 근본적 전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철학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철학은 둘째치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가정하고 있는 근본적 전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철학은 인간의 사고이며, 그것도 그냥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자에 기반한 사고라는 것이다. 철학이 인간의 사고이며 인간의 언어에 기초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인간에게 공통적이거나 대개 공통적인 것을 당연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다라는 말을 하면 우리는 그게 뭔지 아는데 왜냐면 인간은 대부분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맛이라는 것을 날 때부터 느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군침이 도는 햄버거라던가 새콤한 소스라는 말들은 간접적인 의미만을 가진다. 즉 그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행동으로부터 그런 말의 의미를 추측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게 무슨 말인지를 직접적으로는 모른다. 그래서 만약 지구상의 어떤 인간도 가질 수 없는 감각을 가진 외계인이 있고 그 감각을 X하다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인간이 그 외계인을 본 적도 없다면 X하다라는 말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이렇게 인간의 보편적인 체험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 지고 해석되어진다. 따라서 철학이라고 하는 사고 역시 그것을 듣고 해석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전제하에서 만들어 진다. 인간의 언어는 결국 인간 대중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학이 발달하고 수학이 발달하자 양자역학처럼 인간의 자연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학이론이 만들어졌다. 수학이라는 언어는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대중이 쓰는 언어가 아니지만 인간이 만든 언어인데도 그렇다. 인간의 일상감각을 넘어선 아주 작고 큰 세계에 대한 관측결과에 근거한 수학적 이론은 인간의 자연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들지도 않은 언어로 만들어진 어떤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지금까지의 의미로 이해가능한 철학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에 관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지 않은 언어는 인간이 영원히 쓸 수 없는 언어일 수도 있다. 개미가 미적분을 영원히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철학이 인간의 언어에 기반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문자라는 기술에 기반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더 분명해 진다. 지금의 철학은 인간이 선사시대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자라는 정보처리방식이 만들어 지고 그것에 기반해서 만들어 졌다. 인간이 구술언어에만 기반해서 생각을 할 때도 생각은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을 철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은 사실상 문자의 보편화이후 더 많은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만들어 진것이다. 그 이전의 인간의 사고는 오늘날 흔히 신화라고 불린다. 구술전통에 의해서 계승되다가 문자가 나타나자 기록된 그것은 이미 문자로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문자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된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구술 언어만 있는 사회속에서 그것은 보다 덜 체계적이고 일관성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과학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2천년전의 사람도 과학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과학은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나타난 것이며 그것이 출현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수학이 과학을 만드는 기초 언어가 된 일때문이다. 이래서 뉴턴의 고전역학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즉 현대적 의미에서의 과학은 17세기 이후에나 출현했다. 

 

이제까지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중국의 공자에서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말했건 이러한 점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철학이 철학의 이러한 근본적 전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철학에서 인간은 단순히 인간의 DNA를 가진 생명체도 아니고 쓰고 읽기를 포함하는 근대교육을 받은 인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기술과 교육에 의해서 확장되어지는 사이보그다. 바로 이것이 멀리는 문명의 여명시대에서부터 가깝게는 근대화의 시작이래 당연시 여겨졌던 철학이 그 근본부터 다시 생각되어져야 하는 이유다.

 

앞에서 우리는 만약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감각을 하는 외계인이 있고 그 외계인을 우리가 본적이 없다면 그 감각이 X하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이 교육과 기술에 의해서 달라지는 사이보그라고 할 때 우리는 이 외계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동차를 타본 적이 없는 사람, 자동차라는 물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은 자동차를 모는 드라이버의 주행감각을 본 적도 경험해 본적도 없다. 그로서는 마치 자신의 몸이 자동차라는 물건으로 확대되는 경험을 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다만 말타기같은 비슷한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추측을 할 수는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자를 모르는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인은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문명인이 된 사람의 감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세금을 내고 경찰의 도움을 받고 시장에 나가서 돈을 주고 고기를 사며 산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의 진정한 시작은 문자의 시작과 함께 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이제 비슷한 일을 겪게 되고 있다. 즉 발달한 AI의 네트웍과 접속한 인간의 감각을 그걸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인 현재의 인간들인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AI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언어와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도구 없이 분석하고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로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다. 우리는 점점 AI가 뭔가를 해내는데 그것이 어떻게 그걸 해내는지를 모르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증명할 수 없는 수학공식이 답을 올바로 내는 것은 아는데 그 수학공식이 왜 맞는지는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수학공식의 경우에는 인간이 노력하면 그걸 이해할 수 있었지만 AI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AI는 수학공식보다 훨씬 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의 생활에 침투할 거라는 차이도 있다. 

 

인간이 AI를 통해 다른 인간과 그리고 다른 AI와 연결되는 세상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 철학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하는 요청은 오해의 소지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힌다. 왜냐면 그렇게 묻는 사람은 철학이라는 단어를 이제까지의 의미로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의 구체적인 설명이란 그것을 자연어로 논리적으로,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철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인이라고 불릴만한 인간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의미에서의 철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철학의 전제들을 받아들이고나서 예전의 철학과는 다른 점을 설명하거나 예전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철학을 소개할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철학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철학의 가장 구체적인 설명은 그것이 어떤 기술에 의존하며 인간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과거의 철학의 관점으로보면 불만족 스럽게 된다. 왜나면 과거의 인간은 맛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인데 미래의 인간은 맛을 느끼는 인간이고 새로운 철학이란 결국 그 미래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도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맛에 대한 설명들은 모두 추상적이고 구체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인간은 AI 시대를 맞이해서 변하고 있다. AI가 발달하면 인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몰아보는 경험보다 더 대단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의 인간이 필요한 사고는 지금의 인간의 사고와는 다른 것이다. 마치 구술적 전통에 의해서만 사고하던 선사시대의 사고가 문자 문명 이후의 인간의 사고와는 달랐을 것이 분명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새로운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이런 새로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철학을 찾고 그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철학을 이해하려고 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대통령은 어떤 종류의 왕인가를 묻는 것처럼 오해를 만들게 된다. 새로운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통상 철학이 인문학으로 여겨지지만 새로운 철학은 과학도 인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 낼 새로운 환경속의 새로운 인간이 가지는 사고이다. 

 

AI는 지금도 발달하고 있다. 그것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이 없다는 것은 마치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들을 자동차에 태워서 도로로 잔뜩 내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AI의 편향된 의사결정이 윤리적 재앙을 만들 것이고, AI라는 기술을 써서 우리가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우리는 위험한 일들에 몰두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철학은 AI가 충분히 발달한 후에 고민해 볼 수 있는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AI 발전의 한계를 설정하는 전제 조건이다. 기술이상으로 철학의 발달이 있거나 철핛의 선제적 발전이 있어야 AI는 발전할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