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8년에 당시로서는 문을 연지 2년된 지방학교인 포항공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 당시에는 의대가 지금처럼 인기 있던 때가 아니어서 적어도 지방의대는 서울의 명문대의 공대보다 합격률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물리학과는 이과 계열 최고의 인기학과였고 입학성적이 좋아야 갈 수 있는 학과였다. 그러니까 나 정도면 서울에 있는 대학의 의대에 가고자 하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랑같지만 내가 졸업하던 해에 대학입학성적으로 우리 고등학교 1등이 나였으니까. 그렇다면 성적순으로 나열하면 서울이건 지방이건 의대가 인기 학과를 싹쓸이 하는 지금의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할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보다 보편적으로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당시에는 나만 의대를 그다지 안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내 주변에 있던 학생들중 성적이 상위권에 있던 학생들 중에는 우연이겠지만 정말 의대가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화학과, 화공과, 전자공학과, 물리학과 같은 것이 인기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보다 더 인기있었던 것은 대학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과에 상관없이 서울대에 가겠다는 학생이 많았고, 고등학교에서도 그걸 거의 강제하다 시피했다. 매해 학교 앞에는 서울대 몇명이라는 현수막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 서울대가 어떤 학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인재들은 전부 의대만 가려고 한다면서 그게 문제라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종종 본다. 그렇다면 이같은 변화는 왜 일어났을까?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돈이다. 그 이유는 이중적인데 첫번째 측면은 당시보다 지금의 의사들이 훨씬 돈을 더 잘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기라서 대기업들이 이공계 신입생을 잘 뽑았다. 지금은 서울대 나와도 삼성전자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지만 당시에는 서울대 연고대 수준이 아니라도 삼성전자같은 대기업에 잘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포항공대는 당시에는 기업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좋았는데 그래서 원한다면 졸업생중에 평점 3.0 정도만 넘으면 대기업에 못들어가는 곳이 없었다. 내 느낌에는 거의 원서만 쓰면 합격이었다. 그래도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대학원 진학을 원했다. 기업은 명문대 출신 학생인데도 학부졸업하고 그냥 기업에 들어가 준다고 하면 감지덕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면 잘할 수록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가고 더 돈을 잘 벌것 같은 곳에 취직하는 거야 언제나 마찬가지만 그때는 이공계 다른 학과를 가도 그렇게 취업문이 좁지 않았고 먹고 살기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리학과는 고체물리학으로 인해서 반도체 분야와 깊은 관계를 가지기도 하지만 사실 그때도 돈과는 그리 관련이 없었는데 괜찮은 대학에 가면 못먹고 살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에는 착시현상도 있다. 그때의 대학교 졸업장과 지금의 대학교 졸업장은 내가 보기엔 의미가 좀 다르다. 사실 당시에는 대학진학률이 30% 정도 밖에 안됐다. 그러니까 성적순으로 치자면 제일 경쟁력 낮은 대학에 가는 사람도 중간은 넘는 사람들이었고 당시에는 젊은 학생들의 수가 지금보다 2배 가까이 컸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 말은 숫자로만 치자면 지금의 상위 15%-20% 정도만 대학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적 숫자로만 치자면 당시의 명문대 합격생들은 지금의 상위 5%에 해당하는 학생에 가깝다. 대학교 졸업장도 명문대 졸업장도 좀 더 가격이 높았던 시대랄까.
지금은 어떤가? 대학의 숫자가 급증했다. 1988년에는 4년제 대학의 숫자가 100여개였는데 2025년 현재 4년제 대학의 숫자는 200여개다. 그래서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간다. 그러나 의사의 정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3000여명이다. 이게 뭘 말할까? 정부는 계속 대학생수를 특히 이공계 대학생 수를 늘려 왔던 것이다. 이 흐름에서 의사는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이젠 평생 직장 같은 개념이 사라졌고 점점 더 근속연수가 짧아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실 그런 개념이 많아 남아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어딘가 취직하면 이젠 평생 그 직장에 다닌다는 분위기가 꽤 있었다. 그러니까 의사는 지금도 자격증을 가지고 평생 일할 수 있지만 그 와는 달리 다른 학과의 대학생들은 이젠 그 어렵다는 취직을 해도 계속 일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2025년에 의대의 인기가 다른 학과의 인기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다. 의대 졸업자 말고 다른 대학생들의 졸업장의 가치는 하락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처럼 벤쳐 사업을 해서 크게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미국의 부자들은 상당수가 이공계출신으로 자수성가형 부자다. 머스크나 주커버그가 의대나오지는 않았고 집안 돈을 물려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재벌 3세거나 집안에 땅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왜 한국 주식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냐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한가지 말해 둘 것은 그 미국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주식으로 부자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벤쳐가 안되고, 주주의 권리를 무시하는 풍토가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통해서 이공계 졸업자들의 미래를 막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공계 인재가 없어서 문제라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계속 회사에서 일할 값싼 노동자가 없어서 걱정이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말이다.
돈이 가지는 두번째 의미도 있다. 당시에도 사람들이 돈을 좋아했지만 그때는 지금정도로 돈만으로 가치를 따지던 때가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때는 훨씬 더 사상적이고 낭만적인 시대였다. 물질적으로는 지금이 그때보다 비할 수 없이 풍족하지만 그때는 민족이니 국가를 생각하는 사상이나 개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생이라면 철학책을 끼고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는 척하는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시기였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이 무조건 정답이라는 말은 지금처럼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세대의 일원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과학자를 원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직업안정성도 높고 연봉도 높으니까 하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요즘 젊은이들은 유치하게 생각하지도 모르고 이해를 못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정말 삶에 대한 이상이라는 게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당연히 잘 살아야 하며, 잘 산다는 것은 당연히 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요즘에는 그래 보인다. 누군가가 철학과나 물리학과에 가서 진리를 탐구한다 운운하면 미친 놈 하나 나왔다고 할 것같은 분위기랄까.
진리의 탐구나 이상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보여서 약간 수정해 보겠다. 지금의 관점에서 돌아보며 말하자면 나는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의사로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치있는 일이지만 내게는 그리 재미있고 가치있는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나는 뭔가로 부터 탈출하고 싶었는데 대학을 입학하는 시기에 벌써 취직생각하고, 직업 안정성 따위를 따지기 시작하면 나는 결코 그 뭔가로 부터 탈출 할 수 없었을 것같기 때문이다.
그 뭔가는 아마도 내 주변 사람들의 상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공감할 수 없고 심지어 어른들의 일이라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은 유치해 보이는 어떤 생각들에 점점 더 빠져서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 나는 싫었다. 나는 그것을 코가 꿰이는 일이라고 말하고는 하는데 내가 그들에 맞춰서 바쁘게 살면 살수록 온갖것에 얽매여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질 것만 같았다. 사실 사람들이 종교 시설에 가거나 철학책을 읽거나 물리학 책을 읽으면서 일상을 벗어난 곳에 접근하려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일단 내 질문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걸 하면서 하기에는 의사는 너무 바빠 보였다. 나는 한국 의사들이 부유하게 사는 비결중의 하나가 과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국보다 의사가 인기가 없다. 한가지 숫자가 그 이유를 말해주는데 영국에서는 인구당 의대생의 비율이 한국보다 2배 반이나 높다. 의사가 흔한 것이다. 그런데 일은 한국에도 아주 많다. 1988년과 1925년의 차이중 하나는 그때는 국민의료보험이 없었고 지금은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그래서 자잘한 병으로도 병원에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사의 수는 제한해 놓고 사람들은 병원에 전세계에서 제일 많이 간다. 결국 의사는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의사의 수입이 높은 것은 시간당 임금이 높아서 라기 보다는 온갖 일을 자기만 하겠다고 하고 일거리를 독차지 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처방전없이 쓸 수 있는 약도 한국은 제약이 높다고 들었다. 그것이 풀어지면 병원에 안오고 약국에서 사람들이 직접 약을 살텐데 그러면 의사의 일이 줄어들 것이다. 의사들은 그게 싫다. 이렇게 의사의 일이 많기 때문에 현실을 보면 법적으로는 의사의 일인데 그걸 간호사들에게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그래야 돈을 벌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술도 간호사가 하는 일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누구나 여유롭게 살면서 보람찬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돈을 잘 벌고 싶다. 세상에는 그런 일은 없다. 적어도 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산다는 건 말이 안된다.
나는 물리학의 길을 걸었던 덕분에 내가 궁금해 하던 질문들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인공지능을 전공했으며 뇌과학을 공부했다. 외국의 여러 연구소에서 뛰어난 연구자들과 만나서 같이 연구하는 경험도 가질 수 있었고 이스라엘, 미국, 일본등 여러나라에서 장기간 살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해 보기도 했다. 물론 내가 다른 길을 걸었다고 했을 때 그게 꼭 실패였고 불만족 스러웠을거라는 건 아니다. 의사가 되어서도 만족스럽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후회가 없다. 나로서는 잘 살았고 재미있는 삶이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살던 시대의 나라는 개인의 선택이고 경험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른 시대를 살고 있고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특수한 경험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치 돈이 안중요한 것처럼 글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아주 중요하다. 돈은 자신이 그걸 관리할 수 있다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욕심에 미쳐서 삶이 탈선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돈따위 생각하지 말고 꿈을 추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사실 어느 정도 먹고 살 계산이 있으니까 그렇게 산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삶은 견딜수 없는 궁핍으로까지 빠진 적은 없다.
단지 나는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나는 개인에게고 하나는 정책에대한 것이다. 개인에게는 어느 정도 먹고 살 계산이 있다면 그 다음에는 재미있고 의미있게 살라고 권하고 싶다. 의사로 사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있을 수 있다. 다른 걸 해야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특히 꼭 물리학을 공부해야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들리는 이야기에는 이런 말이 좀 귀한 것같다. 세상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재미있게 살라는 말을 안해 준다. 자꾸 너 이러면 죽을만큼 후회한다는 식의 협박만 하는 것같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어쩔지 몰라도 재미있게 살고자 했을 때 꼭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힘든일도 있지만 어찌저찌 살게 된다. 재미있게 살아라고 난 권하고 싶다. 내 경험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 경험에는 후회하지 않는다. 돈돈 하다가 바보같이 살면 그렇게 힘들게 번돈 쓰는 사람은 따로 있고 본인은 과로로 내가 뭐하러 이렇게 사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 인기있는게 나중에도 인기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나도 말하자면 인기학과에 진학한 학생이다. 당시에는 물리학과가 인기 있었으니까. 지금은 어떤가? 의대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하기도 싫은 걸 했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는 정책에 대한 것이다. 세상을 재미없고 의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정책을 펼치면 더더욱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세상을 돈으로만 보고 대학을 무슨 인력자원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보는 식이다. 사람의 행복이란게 밥한공기 먹을 때 보다 밥두공기 먹으면 두배로 늘어나는게 아닌데 생각의 기초가 그만큼이나 저열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흔히 국민들을 쥐어짜서 하는게 발전이고 세상을 제로섬의 경쟁으로 봐서 이쪽 저쪽 사람들이 싸우게만 만든다.
돈도 중요하지만 인문계건 이공계건 전공자들이 즐겁고 재미있어 할 것을 생각하는게 중요하다. 월급을 2배로 주면 연구자들이 2배로 늘어나는게 아니다. 연구자들이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것은 예술가에게도 통하는 것이고 다른 어떤 직종의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것일 것이다. 사람은 꼭 돈때문에만 어떤 것을 하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자꾸 돈과 직위같은 것으로 흥을 깨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컨텐츠가 인기가 있다고 할 때 재미없는 공무원이 지원을 하면 어떻게 될까? 도움은 안되고 싸움만 난다. 세상을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이 의대 과열문제의 해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의대가 꼭 재미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모두가 재미있어할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곳이 그만큼 재미없으니까 돈이라도 벌려고 의대에 가려는거 아닐까. 물질적으로만 풍요로운 걸 추구하지 말고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무엇보다 모두가 재미있게 사는 세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그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돈에 관심없는 사회가 가장 부유해 진다. 미래지향적이고 가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돈돈하는 사람들은 가진 걸 투자는 안하고 움켜쥐고 살려고만 한다. 그건 사회적으로 매우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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