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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인간과 기계

인간과 기계 : 전자두뇌, 싱귤라리티 그리고 공각기동대

by 격암(강국진) 2009. 9. 30.

2009.9.30

공각기동대는 1995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그 철학적 내용으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환영받았으며 국내에서도 이진경과 고병권등 여러 철학전공자가 그 철학적 의미를 논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인간이 고도로 발달된 기술문명사회에서 기술과 융합되어지고 그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스토리는 공각기동대가 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지 공각기동대가 비교적 처음 내세운 메세지라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을 슬퍼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간성이라는게 정의할 수 없지 않는가하고 질문한다라는 점이었다. 

 

즉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윈이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다고 말하듯이 인간성이라는게 그리 특이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비약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점이 철학자들의 구미에 맞았고 그래서 철학적 분석이라는것이 행해진 이유가 되었던 것같다. 

 

세상은 확실히 1995년 무렵에 흥분상태에 있었다. 1995년 당시 인공신경망 연구를 하고 있던 나는 일본에서 iconip이라는 학회에 참석했다. 이 당시에도 세상은 지능을 갖춘 기계의 연구에 대해 무한한 희망에 차 있었다. 그 당시 공개토론회에 나온 한 미국인 교수는 인공신경망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는 하나의 그래프를 보여 주었다. 그 그래프는 1인당 생산량을 고대로 부터 현대까지 그린 것이었는데 그 그래프는 빠르게 성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무한대로 발산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 교수가 말하길 10년 정도 안에 우리는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인간형 로봇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것은 인간이 없어도 생산이 이뤄지는 시대 즉 일인당 생산량이 무한으로 발산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중에는 미국의 발명가, 커즈와일이 있다. 이 사람도 과학적 발견이 변화의 속도를 무한대로 만드는 특이점이 역사에 존재하며 그것도 곧 일어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진지하게 영원히 사는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책을 쓰는 사람이며 학회를 열고 추종자를 가지고 있다. 즉 특이점 이후의 세계라는 미래가 곧 우리에게 닥친다고 말하는 예언가같은 사람이다. 

 

물론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2009년 현재, 적어도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자두뇌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지만 그 이후의 연구에서 분명해 지는 것은 다목적 지능을 가진 기계는 대단히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즉 특정한 목적 예를 들어 필기체인식이나 얼굴인식같은 일을 하는 기계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능적 행동을 보이는 다목적 기계는 만들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아직도 물론 사람들은 여러가지 제안을 하고 있지만 누가 알겠는가. 솔직히 희망의 양은 아무래도 14년전보다는 훨씬 밑인것 같다. 종말이나 특이점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모두 깨버리는 시간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 유사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종말론의 예언은 항상 틀리고 종말의 시간은 자꾸 뒤로 간다. 특이점 예언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기술적 발전과 그로인한 세상의 변화는 우리에게 한가지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만들어 지는가, 아니면 태어나는 가하는 것이다. 빠른 세상의 변화를 예언하는 사람들은 인간성이 마치 윈도우 OS처럼 교체가능하고 수정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IT 산업이 급성장하던 15년전에 세계는 일종의 환각상태에 빠져 있었다. 즉 기계문명 만능주의에 빠져서 우리는 인간성을 간단히 재정의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미래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것이야 말로 니체가 예견한 미래라며 환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현재, 거품은 꺼지고 인간은 남았다. 물론 우리는 바뀐 사회속에서 다른 인간이 되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를 지켜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여전하다. 한편으로 거품이 꺼졌다고 해도 상대주의적이고 무한대의 자유방임풍조를 주장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상당히 유지된다. 이는 제약이란 한번 풀리고 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유란 환상이다. IT 분야에서 미친듯이 일하는 노동자들은 미래를 만든다는 생각에 흥분하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본에게 수탈당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자유의 환상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무대책이어서 이용당하기 쉬운 인간을 양산했을 뿐이다. 자유는 인간을 흩어지게 만들고 결국 대자본이나 거대 법인이나 단체앞에서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사이비종교같다.

 

우리는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봐야 한다. 우리는 기계를 알지만 기계가 되지 않는 인간 그래서 나름의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계일 뿐이거나 기계를 모르는 인간,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광대한 네트에서 길을 잃고 실종되어버리거나 매트릭스의 많은 인간들처럼 가상현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될것이다. 기계를 알고 사회의 논리적 구조를 알고 그러나 기계가 되지 않는 균형을 가지는 연습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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