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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인간과 기계

인간과 기계 : 꿈과 현실, 정신분열증의 연구

by 격암(강국진) 2009. 10. 28.

2009.10.28

꿈과 환각

 

우리는 모두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세계는 단 하나이며 그걸 모두가 보고 듣고 인지하는데 단지 가끔 우리가 착각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이런 착각은 수시로 일어나는데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아주 익숙해져 있는 환상이 있다. 그게 바로 꿈이다. 우리는 꿈에서 별별 희안한 일들을 경험하고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시 경험하지만 깨어나고 나서 그것을 현실과 구분 못하고 충격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꿈만 환상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이 환상이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빛이 정보를 가지고 우리 눈에 들어오면 우리는 우리 눈에 들어온 그 정보대로 사물을 보게된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보다는 우리의 마음속에 여러가지 정보가 미리 있어서 그것이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즉 가상적 현실을 이미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서 그것을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로 확인하고 고쳐주는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즉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시각의 착각을 불러오게 만드는 그림들이나 눈의 맹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않다. 

 

두뇌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그러나 지극히 간단하게 만들어진,  그림은 이렇다. 

 

외부의 현실 -> 해석기 -> 의식

 

우리는 해석기가 해석해 보내서 것을 의식한다. 해석기는 일종의 잡음제거기로 생각할 수 있다. 현실은 잡음이 많고 애매한 것이지만 해석기가 잡음을 없애고 깨끗해진 그림을 의식으로 보내주면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잡음제거가 때로는 엉터리가 되어 착각을 만들어 내고 뭔가의 이유로 잡음제거가 엉망이 되면 환각이나 환청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잡음이고 어느 쪽이 실제인지는 때로 확실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산의 모습을 보다가 우연히 사람얼굴 같은 것을 발견할때가 있다. 그리고 일단 사람얼굴을 보게 되면 이제는 그 얼굴모양을 무시하려고 해도 계속 사람얼굴이 보인다. 우리 마음안에 그 형태에 대한 선입견이 들어갔기 때문에 잡음제거기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정신분열증과 유령에 대한 이론

 

이 잡음제거의 과정이 잘 안듣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정신질환의 경우다. 정신분열증은 치매와 더불어 우리가 흔히 듣는 정신질환의 하나지만만 실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는 물론 정확한 증세나 정의도 애매모호한 상태다. 정신분열증의 증세는 인지적 장애, 과대망상, 환청, 환각이며 이와 더불어 의욕감퇴, 사회성 감퇴등을 겪는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박해 받고 있다고 느낀다. 없는 것을 보거나 들으며 의욕이 떨어져서 조용히 혼자지내게 된다. 

 

정신질환의 증세들은 소위 정상인들에게도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사례들을 읽다보면 자신도 약간 정신분열증의 기미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 세상에 정신분열증 환자와 환자가 아닌 사람에 대한 명확한 선이 존재하는게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도 당연히 근거없는 의심을 하고 환청이나 환각을 겪으며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때를 경험한다. 결국 질환이냐 아니냐가 정도의 문제라는 것인데 여기서 지극히 타당한 구분선은 만들기 어렵다. 정신질환은 바이러스처럼 명확히 그 존재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유령에 대한 이론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론이라기 보다는 그냥 상상에 불과한 것인데 바로 우리가 늘상 유령을 본다는 이론이다. 이 유령은 실상은 하나의 꿈이며 환청 환각이다. 우리가 고개를 확 돌렸을 때 특히 조명이 부족하여 사물이 잘 안보일 때 순간적으로 그리고 거의 늘상 우리는 거기에서 사람이나 사람의 얼굴을 본다. 

 

사람이나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은 인간의 모습 특히 얼굴을 인식하는 쪽으로 매우 잘 발달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사방에서 인간의 모습이나 인간의 얼굴을 본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미묘한 표정변화를 읽어서 감정을 읽어내고 사람들을 모두 구분해 낸다. 이것을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동물원의 고릴라를 보라, 아니 심지어 다른 인종의 사람을 보라. 어떤 동양인에게는 서양인이 모두똑같아 생겨보이고 고릴라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동양인끼리는 쌍둥이도 그 차이를 금방알아낸다. 그정도로 인간의 머리는 얼굴의 인식에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방에서 얼굴 모양을 찾아낸다. 

 

우리가 늘상 보는 유령의 얼굴은 곧바로 사라진다. 계속 들어오는 감각정보에 따르면 거기에 얼굴이 있다는 판단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타났다 사라짐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고 게다가 우리는 거기에 사람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은 거의 의식에 도달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까지 도달하면 유령의 환각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의 단계에서 우리의 불안감이 증폭된다. 우리는 실제로 유령을 끊임없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를 상영할 때 몇십초마다 한프레임씩 귀신의 얼굴을 집어 넣은 것같은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는 여러가지 에러 신호를 처리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는 듯하며 이를 조절하는데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관여하는 것같다. 따라서 도파민의 양이 너무 많으면 우리는 환각과 환청 기괴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신분열에 대한 이론이며 그래서 정신분열증환자가 먹는 약은 실은 도파민의 양을 조절하는 약이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정상이 된다는 것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생각보다 정신병의 단계에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정신병의 경계 근처에 있다. 그래서 가벼운 충격이 그 선을 넘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는 정상인은 이래야 한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으며 그 정상적 상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와 크게 다르고 비정상이라고 부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무시한다. 마치 아들을 굳게 믿는 사람이 아들의 방종에 대한 분명한 증거앞에서도 그것을 무시하듯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는 환청을 무시하고 무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대단한 재능으로 고려되는 것은 사실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미묘한 차이에서 단서를 잡아내고 영감을 받는 능력이야말로 기계가 하지 못하고 인간이 잘하는 능력이다. 기계적 반응을 보이는 일은 기계가 잘한다. 따라서 그걸 넘어서는 능력이 현대에 가치있는 일, 가치있는 재능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쓸 때 사전 계획을 조금 세우기도 하지만 매문장 매단어에서 내 머리에는 수많은 정보가 오고간다. 그것 중에서 뭔가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나는 열린태도를 가져야 한다. 누군가를 흉내내겠다던가 뭘 하지 말아야 겠다는 식의 선입견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공학자나 과학자들의 연구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말할 것도 없다. 그 근거를 알 수 없는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상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현대의 황금같은 능력이다. 우리는 끝없이 다르게 보다, 남과 달라지라는 말을 듣지 않던가? 심지어는 엉터리가 될지라도 남과 다른 사람이 낫다고 말하지 않던가?

 

현대인에게 있어서 이렇게 보면 정상이 된다는 것은 싸구려 인력이 되라는 말같은 것이다. 현대인들은 환청과 환각을 보도록 장려되고 괴상한 상상을 하도록 장려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영화나 티브이를 통해 책을 통해 괴상한 상상력을 소비한다. 그리고 좀더 기괴하고 특이한 상상을 위해 우리를 조여댄다. 영감과 환각은 차이가 있다고 해도 종이 한 장의 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정신질환의 상태에서 멀리있는 것일까. 

 

정상을 넘어서

 

장자는 나비가 된 꿈 호접몽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표현은 이미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위에서 도파민 치료제를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럼 도파민의 과대분비를 촉진하는 약을 쓰면 정신분열증의 증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술적 영감을 불러오는 상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마약이라고 말해지는 약들도 환청과 환각을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환각이나 환청이란게 비정상적인 거라면 우리는 왜 있지도 않은 거짓 이야기로 넘쳐나는 영화나 티브이를 돈주고 보는 것일까. 배우들이 멋진 모습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유혹하는 장면을 소비하는 대중들은 비정상적인 것일까? 사실 이 세상은 환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돕는 기계를 만드느라 매우 바쁜 것같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오늘날 서비스업에서 계속 외치고 있는게 아닌가? 로또는 꿈을 만드는 기계가 아닌가? 프로 스포츠는 어떤가. 멋진 옷이며 자동차는 우리를 우리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소도구가 아닌가? 우리를 움직이는 우리가 소비하는 열정과 꿈과 목표는 사실에만 기반한 것인가? 우리는 본질적으로 여자 피규어 인형수집에 몰두하는 오타쿠와 정말로 다른가?

 

진실의 세상은 모든 사람이 다 보는 것이라지만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일까. 나에게 어떤 것이 보인다면 그것이 환각이라던가 환각이 아니라던가 하는 것이 차이를 만들어 낼까?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정신훈련이나 약물을 통해서 죽은 동생을 되살려 내는 환각을 만들어 냈다고 하자. 그럼 뭐가 문제일까. 일단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마도 죽은 동생이 나와 함께 한다는, 내 눈에만 보이고 나하고만 소통한다는 '사실'을 현실과 조화시킬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같은 '사실'을 공유할 친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같이 '환각'을 사실로 만들어 사는 것에 성공했다고 그래서 그 '환각'이 정말 사실로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도 몇몇 사람은 그것이 사실처럼 보이지만 실은 만들어낸 환각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을 것이다. 당신의 사실은 진짜로 사실인가? 그건 어떤 환각이 아닌가? 사실과 환각은 정말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아니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천천히 단계가 변해가듯이 회색지대가 존재하여 구분하기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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