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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윤오영의 수필집, 곶감과 수필

by 격암(강국진) 2010. 2. 10.

윤오영의 수필집인 곶감과 수필의 첫장에는 윤오영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윤오영 (1907-1976) 


서울 출생으로 호는 치옹 동매실주인. 보성고교에서 20년간 교편을 잡았다. 현대문학에 측상락을 발표한 이래 수많은 수필과 새로운 문학논문을 발표했다. 저서에는 수필집 고독의 반추, 방망이 깍던 노인, 수필문학 입문이 있다. 


내 소양이 낮은 탓도 있겠으나 나는 이리저리 책을 읽으면서도 매번 다시 꺼내 보내보는 책은 그리많지 않다. 그러나 그중에 유달리 튀는 한권이 있으니 그게 윤오영의 수필집이다. 나는 마음이 울적하거나 가슴이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윤오영의 수필집을 꺼내어 한두개의 수필을 읽곤 한다. 또 큰딸에게 소리내어 수필을 읽어달라고 할때도 있다. 애초에는 아이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으나 딸아이가 읽어주는 윤오영의 수필을 듣는 것은 나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이렇게 윤오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윤오영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피천득이 쓴 치옹이라는 윤오영에 대한 글을 읽자 한마디 글이 쓰고 싶어졌다. 


피천득에 의하면 그는 평생 손해만 보고 산 사람이라고 한다. 가세가 기울어 양정고보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을 해야 했고 평생 송강, 노계, 연암을 읽고 사서삼경과 노장을 읽었으나 해방후 그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데에 그쳤다. 피천득은 그가 원했다면 대학 졸업장을 구하는 것이 쉬웠던 그 시대에 대학졸업장쯤은 얼마든지 구할수 있었을 것이며 그의 지적 수준으로 보아 그는 아주 훌룡한 대학교수가 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는 가난하고 이름없는 고등학교 교사로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는 소년시절에 몇편의 글을 쓴이래 40년간 침묵하다가 측상락을 1959년에 발표한다. 그의 나이 이미 53세때이며 그가 경이적 수량의 걸작을 써냈다는 수필문학은 1972년에 창간되었으니 그가 죽기 불과 4년전에 창간된 것이다. 그래서 피천득은 그를 대기만성의 예라고 말하며 그가 5년전에 죽었더라면 큰일날뻔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글은 매우 함축적이면서도 뭔지 모를 그리움을 주고 평범한 광경에서 마음에 평화를 주는 글이 많다. 그의 수필집 곶감과 수필의 첫 수필인 달밤은 채 한페이지가 안된다. 


달밤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때 일. 어느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온 웃마을 김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하며 걸터 앉았다. 그는 이웃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있고, 뜰은 달빛에 젓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됐소. 농주 두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본 적은 일찌기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버렸다. 


이윽고


"살펴가우"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있었다. 


글에는 지식을 전해주고 어떤 주장을 전달하는 글이 있다. 전에 어떤 현대 철학가가 쓴 데리다 철학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정리되는 것도 아니라 마치 무슨 숙제를 받는 것같은 느낌이다. 반면에 윤오영의 글은 아주 주장이 없고 가르침도 없는데도 주장이 느껴지고 가르침을 받는다. 바로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느낌이고 더불어 마음이 잔잔해 짐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윤오영의 수필을 내가 자주 자주 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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