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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미래의 한국으로서의 일본

by 격암(강국진) 2012. 5. 21.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한국의 미래라고 말한다. 한국이 일본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으로 거기에는 산업화가 일찍 이뤄진 나라가 일본이라는 점도 있지만 소위 단카이세대가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와 시차를 두고 존재한다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전쟁후에는 으례 남자가 많이 죽고 없어진 상태에서 베이비붐이 생기는데 일본의 경우는 그것이 세계2차대전이었지만 우리의 경우는 마지막전쟁이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에 10년정도의 시차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한국 부동산 거품붕괴론의 근거가 되는 인구구조에 기반한 설명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설명은 물론 무리한 것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치 타임머쉰을 탄것처럼 한국의 미래로 가서 살고 있다면 나는 과거의 한국에게 이러한 변화가 올것이라던가 이런 것을 조심해라라고 말할수 있을까.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는 주장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한국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혹은 국가적 차원에서 뭘 할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진짜 미래로 갈수는 없기 때문에 애플이나 구글주식을 사둬라라는 식으로 백투터뷰쳐같은 영화에 나오는 조언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성적으로라도 예를 들어 금을 사둬라라던가 의사는 틀렸어 요리사를 하도록해같은 이야기를 할수 있을까?

미래예측뿐만 아니라 현실도 모른다.

글을 쓰기전에 약간의 경고가 필요하다. 내가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즉시 깨닫게 된것은 현실을 안다는 것도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본에 사는 내가 한국의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한국의 미래를 아시겠군요라고 말할것이고 어느정도는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안다'는게 뭘까? 

무슨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게 아니다. 그럼 당신은 현재의 한국은 '아는'가? 현재의 세상도 워낙 크고 복잡해서 우리가 그안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걸 안다고 할수가 없다. 우리는 매우 일부만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만 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때의 이탈리아나 영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혁명적시기의 중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이 그걸 대중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알게되는 때쯤이면 그건 이미 혁명이 완결되는 때에 가까울꺼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사람이 요즘의 한국에 오면 한국에 왕도는 지켜지고 있는지, 예의범절은 지켜지고 있는지만을 물을 뿐 인터넷 속력은 얼마나 빨라요라거나 스마트폰은 얼마나 대중화되어있지요라고 묻지는 않을 것이다. 말한필에 얼마입니까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관점으로보면 지금의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고 별볼일없다고 생각하는 회사나 사람이 지극히 중요할수 있으며 지금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들이 별반 중요하지 않은것일수 있다. 그러니까 안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월세가 비싸다. 


비싸고 싼것은 소득수준과 비교해야 할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일본의 월세 즉 미래의 한국의 월세는 비싼 것같다. 그리고 물론 전세가 없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기묘한 투자상품이다. 아파트는 낡아도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 썩어가는 은마아파트 같은게 10억이 넘는걸 보면 10억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왜 저런데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 이유는 물론 아파트란 물가상승률이상으로 값이 오르는 좋은 투자상품이라는 믿음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주택거품이 꺼진 이후 그런 믿음은 없다. 집이란 짓고 수리해서 쓰다가 낡아지면 허물어서 다시지어야 한다. 자동차가 10년되면 낡아서 폐차하는 차가 나오기 시작하듯 집도 시간이 지나면 값이 없어지거나 유지비가 많이 드는 상품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집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이제 집을 세주는 집주인은 집에 대한 감가상각비와 유지비를 모두 월세로 받아야 앞뒤가 맞게 된다. 한국에서는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은행에서 이자주듯 값이 올라서 돈을 벌게 해준다는 인식이 있기에 집세를 적게 받을수도 있고 심지어 4억짜리를 2억받고 살게 해주는 전세라는게 가능한 것이다. 


그럼 역시부동산거품이 꺼지면 안좋은거네, 부동산이 자꾸 오르는 나라가 더 좋은거네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은 장기불황에 시달릴지 모르나 그만큼 물가가 천천히 오른다. 일본은 10여년전 과거의 영화를 봐도 그안에 나오는 물가가 엄청나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내가 한국을 떠났던 1999년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물가가 말도 안되게 올라있다. 다시 말해 거품경제에서 돈은 뒤로, 모르는 곳에서 빠진다. 집값이 오르니 월세가 오르는 속력도 빠르다. 월급은 천천히 오르지만 말이다. 전세금 올려주면서 고생해야 하며 전세금을 저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안타깝게도 물가가 빨리 오르니 돈의 값어치가 내려간다. 그래서 집가진 사람들이 1년만에 1억씩 집값이 올랐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것이 거품경제다. 안그러면 다들 그렇게 집없는 설움을 말하면서 빚내서 집을 사겠는가.


이글의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과도기가 아닐까. 즉 현재의 한국에서 미래의 한국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다. 과도기에는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쪽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같다. 금리에 따라 계산이 복잡해지겠지만 집값이 안올라가는데 전세로 집을 빌려준 사람은 사실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월세로 전환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집값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부동산게임의 법칙아래서 그 전제가 무너지면 집을 가진 사람쪽이 피해가 더 클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은 가격으로 평가했을때 소득수준에 비해 비싼집에 사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물론 비싼집을 사면 더 많은 돈을 투자한거나 마찬가지니까 좋은집에도 살고 투자도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때문인데 투자효과가 사라지면 그계산이 맞지 않는다. 다시말해 삼성이나 현대의 과장급이면 이정도 집에는 살아야 하는거 아냐라는 식의 상식적 주거수준에 대한 계산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상식에 그냥 매달리면 그사람은 주거비를 엄청나게 지불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래도 상식은 체면같은 것과 얽혀서 거기서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할것이고 그댓가를 지불하게 되지 않을까.


교통비가 비싸다. 


일본 교통비 비싸다. 우리집에서 동경이케부쿠로까지 전철을 타면 15분남짓타는 것인데 한국돈으로 3천 5백원은 된다. 온가족이 동경나들이를 전철로하고 돌아다니면 4인이 하루에 전철비만 5-6만원쓰는건 일도 아니다. 


일본택시값은 전설적이다. 위에서 말한 전철로 15분 걸린다는 거리를 택시를 심야할증으로 타면 십몇만원을 내야 한다. 공항에서 택시타고 시내로 갑시다같은 소리를 자기돈 주고 하는 사람은 재벌급 인사나 그렇게 할수 있다. 


일본도로비 살인적이다.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동경부근에서는 백킬로 달려서 5만원가까이 낸다. 서울 부산거리를 달리듯이 내면 도로비가 수십만원이란 이야기다. 여기서 오사카나 후쿠오카까지 달리면 그보다 더나온다. 


신칸센도 비싸다. 비행기값이나 차이가 없다. 그러고 보면 비행기값도 비싸다. 물론 할인을 잘해서 타면 방법이 있다지만 그게 늘상그런게 아니니까. 일본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가 국내 교통비가 이렇게 비싸서 한국가거나 호주 하와이 가는것의 상대적 가치가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런것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소위 토건족이 온갖 도로며 신칸센을 건설하고 도로 철도 다리를 민간업자에게 넘긴 것때문에 생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격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신칸센 가격이 비싼데 도로비가 싸고 비행기값이 싸면 누가 신칸센을 탈것인가. 반대로 신칸센이 엄청싸다면 누가 비싼 도로비를 낼것인가. 그런데 교통망의 상당부분이 민간업자에게 이익을 올려주고 있다면 결국 이익을 내기 위한 로비가 작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도 지금 각종 지자제에서 민간업자에게 교통관련 시설들을 맡기고 있다. 대중이 교통비를 많이 내는 것이 자본에게 점점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면 한국인들은 결국 10여년후에는 엄청나게 비싼 돈들을 마치 세금내듯 살아야 한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이 한때 유향이었다. 그 88만원에서 교통비를 훨씬 더 많이 내면 더 힘들것은 뻔하다. 


난립하는 학교때문인지 진로잡기가 복잡하다. 


일본의 학교에 대해 두단락의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주요특징은 두가지로 말할수는 있을 것같다. 일본의 학교는 다양하고 일본의 학교서열화는 한국보다 더 심하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초등학교가 무척이나 다양해서 학제가 복잡하고 학비가 비싼곳도 많다. 내가 보기에 이런 시스템은 결국 일종의 필터로 작동한다. 즉 대단한 천재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부자집출신이 아니면 이 시스템을 통과해서 좋은 학력을 가지기 어렵다. 부자집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다른 곳에 다닌다. 그게 중학교 고등학교로 시스템으로 연결되고 대학교를 결정한다. 


거기에다가 일본에는 달콤한 당근도 있다. 일본드라마를 보면 턱도안되는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알바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경우를 본다. 인기없는 뮤지션들이 알바하면서 살거나 부업으로 알바를 구하려면 바로 구할수 있는 그런것 말이다. 상대적인 이야기지만 일본은 알바자리도 많고 수입도 좋다. 시간당 거의 만 3천원수준이다. 알바해서 행복한 삶을 꾸리는게 가능하기야 하겠는가 만은 알바가 직업이 되는게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다. 


거기에 강한 커뮤니티같은게 존재해서 사회가 반드시 자본주의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즉 좋고 싸면 더 팔리는게 아니라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하던 집을 물려받아서 살아간다는 발상이 더 쉽게 가능하다. 그 동네의 그가게는 그 동네의 일부로 존재감을 가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달콤한 당근인 이유는 애초에 뚫기 어려운 공부해서 지도자층이 되는 성공코스 옆에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는 평범한 삶으로의 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드라마나 애니는 이 '평범'한 삶의 아름다움을 마치 무슨 주문외우듯 계속하는데 물론 그런 메세지는 문맥에 따라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사회를 보수적으로 유지하려는 자본들의 욕망이 결부되었다는 느낌조차 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어떨까.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면 내가 보기엔 외국인 노동자들을 줄여야 할판이다. 내가 말한 조건이 존재하는데 중국인들에게 국경을 그냥개방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조건이 유지될리가 없다. 일본사회는 일본사람은 잘났건 못났건 우리의 일부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적어도 한국사회보다는 그런것 같다. 한국은 공장에서 싼 노동자 못구하면 외국인 노동자 들여오면 된다는 발상이 쉽게 생긴다. 


한국도 슬슬 학교들이 복잡해지고 있다. 대학들은 물론 고등학교도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투자도 하고 더 빛나는 모습으로 변해서 생존이 더 쉬워질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것은 결국 방법이 문제일뿐 자본이 욕망하는데로 학교시스템이 변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도 사교육비가 높아서 중산층이 그걸 대는 것이 절망적이란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같다. 그들이 포기상태에 들어가면 생각자체가 신포도처럼 바뀔수 있다. 한국의 아이들도 일찌감치 우리집은 가난하니까 서울대같은 곳을 졸업하는것은 꿈꾸기 어려워 그런데는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난 대단한 피를 가진 사람들이나 가는 것이지. 나는 아빠하던 일이나 물려받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 이미 그렇게 생각한다던가?


커뮤니티가 강하다. 


글이 길어진다. 지루하므로 이것에 대해서는 간단히 정리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커뮤니티가 강했다라고 하는 것이 보통 알려진 것이다. 일본 자본주의란게 가족자본주의로 종신고용을 강조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가 중국이나 과거의 한국에서처럼 부푸는 단계에서는 사회는 그저 개인의 합이며 자유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큰 매력을 얻지만 경제가 제자리거나 심지어 수축단계로 들어서면 개인의 자유와는 다른 미덕이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누구나 학교를 가기 쉽고 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직장이 생기며 시간이 지나면 진급하는게 당연한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로 혼자서도 살수 있고 인간적 신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그 추세가 뒤집어지면 어떨까.


얼마전에 한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함께 3대가 살아가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원인은 높은 생활비를 감당할수 없기 때문이다. 같이 살면 육아를 분담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생활비를 줄일수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가지 불편함을 참아야 하고,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런 불편함을 최소화할수 있는 문화내지 가족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실패하면 공동생활은 엄청난 고문이 된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해야할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가족공동체의 부활이랄까.


일본은 지역공동체같은게 원래 세다. 그래서 이런 저런 모임이 많다. 먹을 것도 그렇다. 일본에는 자급자족수준은 아니더라도 동경같은 대도시 한복판을 제외하면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많다. 싼것만 찾기로 하자면야 중국산같은 것은 한없이 싸지만 세상이 흉흉하니 믿을수가 없다. 선진국들은 대개 그렇기는 하지만 중고물품을 사고 파는 것이 한국보다 훨씬 더 발달되어 있다. 결국 같은 동네에서 먹을 것, 입을 것 같은 것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일본사람들이 헌물건만 쓴다는 것은 아니지만 돌려서 입고 쓰는 것에 있어서 좀 더 활성화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도 온갖 체인점천국이긴 하지만 전혀 상업성이 없어보이는곳에 있는 가게도 많은데 그런 가게들은 대개 지역커뮤니티와 강하게 연합한다. 내가 아는 커피숍은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담소같은 느낌을 주는 곳도 있는데 그런 식이다. 


가족 공동체건 지역공동체건 공동체란 결국 부분적으로라도 외부로부터의 불확실성에 저항하는 단위다. 성장하는 경제속에서는 그런 공동체가 주는 제약이 억압으로 작동해서 공동체가 파괴되지만 유지되는 경제나 수축되는 경제속에서는 작은 공동체가 가지는 경쟁력이 올라간다. 


사실 이것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이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국가공동체라는 하나의 공동체만이 있고 그안에 아무런 내부적으로 작은 공동체가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모든 사람이 먹는 오이는 한 회사가 전부 키운다는 식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말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천이나 만개의 작은 공동체로 나누고 그 공동체가 각자 오이를 키워먹는다면 각 공동체마다 오이키우는 사람이 따로 필요해진다. 각각은 장단점이 있다. 분명한 것은 연료가 부족하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상황에서는 거대공동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맺는 말


그래서 금을 사야할까, 주식을 사야할까 아니면 땅을 사둬야 할까. 현금이 최고인가? 뭐 이런 질문을 떠올린 사람들에게 좋은 답을 해줄수 없는 것이 미안하다. 솔직히 나도 그런 답도 생각해 봤는데 전부 다 답이 아니다. 주식은 폭락하고 부동산투자는 답이 아니며 금리가 제로금리인데 현금이 무슨 답일까. 금을 사둔 사람은 어쩌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면 물가가 고정적이면 무슨 투자건 그리 크게 될것은 없다. 


남은 것은 한가지 답인데 결국 인간이 소중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경제가 잘나갈때도 인맥이 소중하다 같은 말은 흔하다. 새삼 인맥관리 잘해라라는 말이 틀릴것은 없게 들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단순히 인간이 소중하다라는 말로는 답이 아닌것 같다. 


작은 공동체가 소중하니까 인간이 중요한것인데 작은 공동체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작은 공동체의 철학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위에서 든 예로 보자면 무조건 대가족으로 뭉치면 좋아질까? 되지도 않는 권위를 행사하는 가장이 나타난다던가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가족이 나타나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면 어쩔것인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커다란 위협도 된다. 


인간이 소중하다. 작은 공동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인간이 특히 소중하다. 물론 이것에 멈추면 너무 보수적이다. 그렇지만 이 작은 공동체를 양보할수 없는 보험으로서 소중하게 지키고 진취적인 것으로 뻣어나게는게 필요하지 않나 한다.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면 아주 추운 겨울이 몰려올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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