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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내가 살고 싶은 마을

by 격암(강국진) 2013. 5. 2.

2013.5.2
아침에 누군가에게 메일답장을 쓰다가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이라는 화두가 떠올랐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저도 제가 어떤 마을에 살고 싶은지 궁금하여 다시 자판을 두드립니다. 손가락이 답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규모와 공간배치에 대하여

어느 정도가 외로운것인가를 말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숲속 깊은 곳에서 은거하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을 속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을은 지나치게 크지 않은 곳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촌처럼 지나치게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저는 대학생시절부터 규모가 작은 중소도시에 가면 왠지 흥분되는 것을 느꼈는데요. 그 이유는 작은 곳으로 가면 갈수록 저는 거기서 사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작은 마을이나 도시에 가서 거기의 벤치에 앉아보고 그곳의 여관에 숙박하면 왠지 저절로 여기에 누가 앉았을까 이 여관에는 누가 숙박했었을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인구밀도가 작은 곳으로 가면 그렇게 모든 사물에서 사람의 흔적을 떠올리는 것이 보다 쉬워집니다. 반면에서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는 마치 너무나 많은 사람이 지나가서 그 발자국을 알수없게 된 눈길처럼 인간의 개성이나 흔적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규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게 있어서 마을이 가지는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적인 거리랄까요. 예를 들어 아파트는 물리적거리는 가깝지만 심적인 거리는 먼 주거죠. 그 반대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하면 흔히 정신없이 날마다 파티를 하는 마을을 떠올리기도 하시는 모양이며 실제로 사람들이 모이면 종종 우리 뭉칩시다, 융합합시다 하는 결의하에 서로간의 거리를 0으로 만드는데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방 호형호제하고 아버지 어머니 하면서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죠.

호칭도 중요한 것이지만 호칭이전에 과연 우리는 우리들 개인간의 거리를 어느정도로 해야 하는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사는 마을이 외롭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어서 자기의 심적인 물리적인 공간을 지킬 수 있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마을이었으면 합니다. 빨리 빨리가 아니고 천천히 담백하게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관계가 있는 마을이었으면 합니다. 오래오래 같이 하기 위한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의 그런 문화가 필요할 것이고 그런 주거의 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을회관이나 광장, 극장같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 있으면서도 혼자있고 싶으면 숨어들어가 혼자 되기 쉬운 그런 숨은 공간이 많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두시간 방문하고 나면 이제 나는 그 마을에 뭐가 있는지 알겠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마을이 아니라 계속 계속 방문해도 거기에는 숨겨져 있는 뭔가가 있는거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마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을에 있었으면 싶은 것

저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특히 나무가 있는 산책길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우리 마을에는 그런 산책로가 있었으면 합니다. 조용하고 초록도 볼 수 있는 그런 산책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 마을에는 아이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가르치고 같이 고민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해결하지는 못하고 그저 지나쳐온 문제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어른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자연스레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공동체는 뭘 위한 것이건 뭔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정신이 있어야 돌아가는 것인데 자식을 위해 바뻐보겠다는 부모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을에는 괜찮은 찻집이 있고 괜찮은 음식점이 있었으면 합니다. 작은 마을이라면 그런 걸 개인적으로 만드는게 어려울 수도있을텐데요.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걸 비영리적으로 운영하는 그런 거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마을길을 아내와 아이들과  혹은 혼자 걷다가 그 찻집에 들러서 차한잔 마시는 일상을 가지고 싶습니다. 

저는 게을러서 음식만들기를 배우거나 맛집을 줄줄이 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먹는 일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값이 싸면서도 맛있는 것을 먹고 그런 것을 찾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는 것이죠. 

음식공방이 있는 마을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가지 맛있는 것들을 만들어보고 실험해 보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 말입니다. 그런 것중에 괜찮은 것이 있다면 고정상품으로 만들어서 일단은 마을 사람들이 사먹고 외부 손님이 와도 자랑스레 우리 마을에는 이런 맛있는게 있다라고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그런 마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싼게 아니라 떡라면을 만들고 어묵꼬치를 만들고 백설기를 만들어 보면서 맛없으면 맛없다고 불평하고 웃는 그런 마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책을 모아서 돌려읽을수 있는 도서관이나 책공유시스템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어릴때 꿈이 서점주인이었습니다만 책과 군것질거리와 자리를 비치한 독서공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심심하지 않은 마을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이 가장 많이 가지기 바라는 것은 바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심심하지 않은 마을이고 또 다르게 말하면 문화적 자극이 있는 마을이죠. 경치 좋은 곳에서 술한잔 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건 일년에 한두번 놀러가는 곳에서나 그렇고 몇년 몇십년을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곳이라면 그것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앞에 쓴것도 모두 어쩌면 문화적 자극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거나 어떤 음식을 시도해 볼까하고 생각해 보는 일들이 모두 새로움을 주는 일들이죠. 마을만들기라고 하면 대개 텃밭을 말하는데 사실 그저 먹는 다는 측면에서 보면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접 농사를 짓고 채소를 기르는 일은 비효율적인 일일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뭔가가 자란다라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채소를 키우는 것도 산업활동이 아니라 문화활동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는 문화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속적으로 계속 새로운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유지하는 인력이 있어서 계속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작은 마을에 정식으로 큰 시처럼 뭐든지 있기는 어렵겠지만 문화부장이 있어서 계속 재미있는 일을 궁리하고 벌여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재미있는 일을 하게 되면 그것 자체가 바깥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독서토론회를 한다던가 주민들의 글을 모아 글 모음집을 만들어 본 다던가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던가 연극을 해본다던가 하는 것들도 있을 수 있겠죠.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주제가 있으면 연례축제도 만들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상업용이 아니라 무엇보다 마을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축제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을에 꼭 있어야 할 정신

내가 살고 싶은 마을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무형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것자체를 즐거움으로 알고 재미로 아는 정신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어떤 정적인 그림을 위에서 그렸습니다만 마을도 생명체와 같은 것이라 결국 성장하고 변화해 나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적인 어떤 마을에 도달하고자 고통스럽게 힘들게 살아간다면 거기에 도착도 못할 것이고 도착해도 그곳이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인생이 과정이듯이 마을도 결국 발전하고 변화해 나가는 것에 그 핵심이 있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를 즐기며 천천히 해나갈수 있는 그런 정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상적인 곳에 도달 못했지만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할수 있는 그런 정신이 내가 사는 마을에 있었으면 합니다. 턱하니 나무 몇구루 심어놓고 백년뒤에는 여기가 멋질꺼야라고 느긋하게 말하는 그런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결과가 한두달안에 나오지 않아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형의 것은 종종 지나치게 사소한 것으로 무시되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아예 포기되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의 국가가 생존해 나가자면 그 역사를 바로 세우고 그 건국정신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듯이 마을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의 철학을 세우고 그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노력- 상징이라던가 기념행사라던가 교육과정이라던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는 마을이 제가 살고 싶어하는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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