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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나이드는 것과 낭비

by 격암(강국진) 2013. 10. 3.

누가 말하길 젊음은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것이고 늙는다는 것은 시간이 낭비된 것을 아까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돈을 써도 부자는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테고 빈털터리는 그걸 왜 썼나 싶어서 그 돈이 낭비된 것을 아까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낭비된 것들에 대해 아까워 하게 된다. 


이쯤 되면 몇가지 이야기가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러므로 시간 따위 마구 낭비할수 있는 젊음이 부럽고 이것 저것에 쪼잔해 지는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애처롭다라고 말할수 있다. 앞에서 말한 그 블로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풍요롭지 못하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아까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감히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고 이것저것 계산해서 낭비를 줄이려고 하는 노인들의 모습 혹은 스스로의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반대의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 인생의 소중함, 기회와 젊음과 에너지의 소중함을 알게 되기에 낭비에 더 민감해 지는 것이라고. 우리는 젊음을 댓가로 치루고 지혜를 얻었고 그 결과 낭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 말들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실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은 각자 살아온 형편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나로 말할 것같으면 아직 노인운운할 나이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비교적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한달도 일주일도 매양 같은 것은 아니라서 요즘도 나는 우울해질 때도 있고 일이 잘풀려 기쁠때가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 모두 따분하고 잘안된다는 느낌에 빠질때도 있다. 


그러나 젊었던 때로 혹은 더 어렸던 때로 돌려서 생각해 보면 1년이나 5년단위로 생각해 보았을때 나는 지금보다 더 어리석었고 더 어리석은 만큼 불행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질없는 생각들 그야말로 유령같은 것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해 있었달까. 나는 젊었을때 오히려 과감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지 못했던 것같다. 젊음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유는 지혜가 있어야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젊음은 대개 지혜가 없다. 


그래서 일까. 나는 오히려 젊었을때 시간이 낭비되는 것에 대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빨리 뭔가가 되고 싶어서 안절부절했었다. 이것은 내가 위에서 언급한 블로거보다 호쾌한 젊음이 아니고 비루한 젊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젊음이라고 하면 보통 대담하다던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적어도 나의 젊음은 훨씬 더 비참하고 초라한 것이었다. 성공때문에 안절부절하고 남녀관계로 비실비실하고 작은 칭찬이나 비난에 기분이 흔들리고 자신의 이런 저런 부족한 점들을 느끼면서 빨리 빨리 나아닌 뭔가가 되기를 바랬다. 고등학생때는 대학생이 되고 싶어하고 대학생이 된 나는 대학원생이 되어 학위를 받고 싶어하고 학위를 받자 이번에는 더 많은 논문을 써서 좋은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 그런 다음 다음 단계로 뛰어가는 삶이었다. 적어도 삶의 상당한 부분은 말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내가 어떤 욕심이 없고 조바심이 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젊을때보다는 시간이 낭비되는 것에 대해 덜 안절부절하는 것같다. 아예 푹퍼져서 에라 모르겠다,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가겠지 라고 느긋해 지지는 못하지만 -또 그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버둥거림이 없으면 끝나는 거니까- 젊었을때 처럼 이것에 실패하고 저것에 실패하면 죽을 것같아지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능력과 운이 닿지 않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땐 그때대로 맞춰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정도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이 좀 부자가 되었나 보다. 그렇다면 잘못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젊었을때 나도모르게 찾아헤맸던 것은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길이었다. 나이들어가는 것과 낭비에 대한 글을 읽고서 몇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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