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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과학발전, 틈새시장 그리고 대기업

by 격암(강국진) 2013. 7. 29.

13.7.29

어제는 한국에서 한 친척과 현정부가 선전하는 과학발전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어떤 방법이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고 사막에서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올 수는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친척분의 입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그 친숙한 단어들에 대해 저는 틈새시장이라는 측면에서 왜 그런 방법이 문제가 있는가라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여기 그 생각을 다시 기록해 봅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이 잘되기 바라고 과학의 시대에 한국 과학이 발전하기 바라며 우리도 노벨상 수상급의 과학자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실망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학이 아주 형편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비교대상이 전세계 1등이라서 그래보일 뿐입니다.  왜 노벨상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은 대개 과학전공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한국은 과학하는 사람이 대우 받는 사회도 아닙니다. 그저 이용당할 뿐입니다. 과학은 삶의 방식이 되기보다는 돈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너무 많이 강조됩니다. 이땅에 불합리가 넘쳐나고 권력에 따라 언론이 춤을 추는 것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전문가는 전문가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대우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노벨상급의 과학자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란 김연아처럼 피겨스케이팅장도 제대로 없는 나라에서 전세계1등을 하는 인물을 배출하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과학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로또에 인생거는 태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종종 못난 태도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피가 좀 섞인 누군가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노벨상 받으면 한국이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걸까요. 

 

제가 그 친인척에게 한 말은 이렇습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그러니 중소기업이 커지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틈새시장을 노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이미 인기가 높고, 선진국이 잘하는 어떤 특정 분야에서 따라가기를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인간도 돈도 더 많은 선진국과 경쟁해서 이길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틈새시장이란게 과학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그걸 위해 뭐가 필요한 건지,  과연 그런 생각에 무리는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일 것입니다. 

 

과학계의 틈새시장이란 다르게 말하면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연구하는 것으로 따라서 경쟁을 피해가는 것이죠. 이런 일을 하려면 학계가 민주적이랄까 공산적이랄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좀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깊이있게 연구할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한가지 아이디어나 분야가 전체 연구비를 독식하고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은 연구를 계속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에서는 말하자면 독특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누구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없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호의호식하면서 사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겠지만 그래도 연구를 한다고 하면 길게 길게 보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생존은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창의적인 연구를 하려면 또한 창의적인 철학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선진국처럼 이미 어떤 분야의 저변이 잘되어 있는 경우는 창의력이 좀 덜해도 훌룡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만 후발주자들이 믿을 것은 정말 창의력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더욱 원천을 파고 드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연구할까, 이런 일들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의 삶과 과학은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를 뿌리부터 고민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결국 그것은 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철학을 접목하여 과잉이 되는 것도 나쁜 일이지만 사실 그것은 양자역학이 이미 완숙기에 들어갔을 때 너도 나도 거기에 해석을 붙이려고 했을 때 생겼던 일이며 양자역학이 정리가 되고 나니까 어느정도 불확실한 부분을 떼어내고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가능해서 철학이 덜 필요하게 느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초기의 혼돈기에는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양자역학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철학적이지 않으면서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깰 수 없습니다. 

 

이 민주적이고 공산적인 학문 공동체의 존재와 깊은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 삼성같은 대기업을 키웠던 방식대로 되는 놈에게 돈을 몰아주자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벨상급 과학자를 초빙해서 우리 나라의 과학을 발전시켜달라고 돈을 후하게 쓸수 있습니다. 우리는 삼성같은 회사의 성공을 통해서 이같은 방식의 유효성을 확신하는 것같습니다. 자연히 어떤 분야의 유명과학자일 것이냐고 하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분야의 유명과학자이겠지요. 

 

그러나 과연 대기업중심의 경제발전이 모든 면에서 성공이었는가하는 질문은 제쳐놓더라도 이런 전략은 무리가 있습니다. 경제와 학문은 다릅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대기업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이란 대기업을 위해 모든 한국인들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그 혜택을 돌려받을 거라는 약속과 함께 말이지요. 힘들어도 한국인이 한국인이기를 그만두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로 산다는 것은 타고나는 국적과는 다릅니다. 미래가 좋아보이지 않으면 과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적어도 한국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한국 대학원은 공동화되었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지 오래되었습니다. 대학교수가 되기는 어렵고 강사나 연구원으로 살아가기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 고생을 하면서 사느니 외국에서 자리를 알아보거나 아예 일찌감치 돈을 버는데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집니다. 요즘은 교수도 그렇게 쉽지 만은 않습니다. 자리가 무조건 안정적인것도 아니고 요구하는 일은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안정적인 연구를 할수 있는 관대한 환경이 주어지고 한국은 성과를 내라는 독촉에 시달리느라 길게보고 불확실한 연구에 시간을 쓰기 어렵습니다. 창의력이 없으면 살기어려운 후발주자, 새로운 시각이 없으면 살기어려운 후발주자가 더더욱 그런 것을 죽이는 쪽으로 갑니다. 이것은 고무신발 만들어 극빈국가에서 벗어난 나라가 아이패드 만들어 부자로 사는 나라를 보고 우리도 저렇게 잘살아보자고 하면서 고무신발을 백배 천배 더 만들라고 독촉하는것과 비슷합니다. 따라하기로 약간 득좀 봤다고 이제 왜 당장 노벨상급이 안나오냐고, 독촉을 더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하면 따라하기가 더 중독되고 그나마 존재하는 약간의 창의성도 죽이게 되는것입니다.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파괴하면 결국은 한국은 파괴되고 대기업도 이 땅을 떠나거나 같이 죽습니다. 과학선진국이 되겠다는 생각에 과학자를 독촉하는 하는 행위도 그럴수 있습니다. 그 생각이 과학한국을 파괴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에서보다 학문에서 다양성에 대한 보장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고작 10년뒤 어떤 분야가 크게 유망해져서 다른 나라를 부러워할 때 사실 뒤를 돌아보면 그 분야의 선구자가 이 땅에도 있었는데 그 사람을 좌절 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과학이 진정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려면 인문학이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과학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생각을 길게 추구하는것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오랜 시간을 요하고,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기 때문에 인기가 없습니다. 그저 유명인사 데려와서 몇년 확 개혁하면 그 다음에는 한국도 당장 세계최고 과학국가가 될거라는 식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같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을 철학으로 여기기 보다는 그저 숫자놀음이나 어떤 기묘한 기술정도로 여기는 시각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즉 한국 사회가 훌룡한 과학문화를 진정으로 꽃피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못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돈다발을 쓰레기통에 마구 버리면서 나도 돈좀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이 뭔지, 과학이 발달한 나라가 뭔지에 대해 사회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언젠가 우리도 외국의 부러움을 사는 과학대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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