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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매춘의 이유

by 격암(강국진) 2014. 8. 2.

14.8.2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는 것 특히 남성이 여성을 그것도 예쁘게 꾸민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문장은 모든 남자를 남성이라는 단어하나로 평균내고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나며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모두 지워져 있어서 거의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통상 우리가 생각하듯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매춘이 번성하고 접대부가 돈을 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걸 윤리라고 부르던 아니면 상식이라고 부르던 어떤 정상인에 대한 테두리가 있다. 우리는 그 테두리를 넘어서면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테두리를 넘어서면서도 안 넘어섰다고 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핑계와 환각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식의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똥을 싸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육체적 정신적 문제가 없는데 성인어른이 자기 잠자리에 똥을 싸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성에 대한 윤리적 규범을 강조하면 매춘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윤리적 규범의 강조와 처벌이 약해서 매춘이 번성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매춘을 하면 사형이라는 식으로 극단의 형벌이 가해진다면 어느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그런 처벌이나 비난의 방식으로는 우리는 왜 우리가 매춘을 하는가 혹은 이성이 접대하는 업소에 출입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올법하다. 어린 아들이 도색잡지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엄마는 아이를 앉혀 놓고 진지하게 말한다. 이런 나쁜 책을 보다니 실망했다. 더구나 그런 사진을 보고 세상의 여자가 그렇게 생겼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그런 여자는 없다. 엄마는 이런 말을 할 법하다. 

 

분명 엄마는 옳다. 일반 패션잡지에서도 포토샵으로 세상에 없는 여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보통이니 도색잡지야 말해 뭐할 것인가. 성형수술에 포토샵에 아낌없는 변형으로 세상에 없는 여자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팔아먹는게 핵심이니까. 고객이 원하는 것도 사실 환상일뿐 그들이 나중에 이게 알고 보니 포토샵이었다더라고 해서 크게 화를 낼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런 건 세상에 없으니 기대를 하지 말라는 주장에는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핵심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우선 뭐가 환상이고 지나친 기대인가는 그렇게 딱부러지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엄마는 자신의 기대와 환상은 탄탄한 현실이고 너의 기대와 환상은 허망한 것이니 너의 기대대로 살지 말고 나의 기대대로, 엄마의 기대대로 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엄마가 이웃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눈다던가, 방송을 보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대화나 그 드라마의 중간에 소위 말하는 엄친아가 등장하는 것이다. 성격좋고 잘생기고 운동잘하고 공부도 잘했고 리더쉽도 있고 무엇보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돈을 잘벌고 효자인 그런 남자 말이다. 엄마가 그런 남의 아들을 보고 들으며 부러운 표정을 지으면 아들은 갑자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진지하게 엄마에게 말할지 모른다. 누군가의 아들은 그렇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건 조작이다! 이런건 윤리적 타락이다!

 

엄마는 물론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게 없으며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말이야 말로 그저 상식적인 도덕을 지키며 살라고 하는 것 뿐이다라고 반박할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꿈에나 있을 것같은, 조작하여 만들어 낸 미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침을 흘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이지만 훌룡한 모범이 될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남자를 따라가라고 하는 것은 훌룡한 일이 아닌가 하고 말할 것이다. 폭력게임을 하면 폭력범죄를 저지른다던데 도색잡지를 보면 매춘을 하거나 성폭력범이 되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두가지다. 첫째로 엄마는 자기가 보는 것은 단단한 현실이고 아이가 보는 것은 근거없는 기대, 환상으로 생각한다. 둘째로 거기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도 엄마는 경계선의 한쪽편만 본다. 즉 도색잡지의 여자가 환상이며, 실체가 아니고, 따라서 매력이 없다라고 말하면 문제가 해결될거라고만 생각한다. 그걸 보는 아이쪽의마음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도 그게 환상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거나 어찌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들은 그저 작은 호기심이 있었는데 거기에 도색잡지에 몰두하는 것이외에는 딱히 흥미로운 주제를 찾을 수 없었다는 내적인 공허와 불안이 더해지자 성적인 환상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되었을지 모른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엄마가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두번 하는건 상식적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무 자주 말하지 말며 그녀는 그녀의 의견과 조언을 줄 수 있지만 뭔가를 너무 기대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판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인생이니까. 나는 그런 걸 안하는 경우 즉 나에게는 그런게 나쁜 것,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실제로 그게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것, 지나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엄친아에 대한 생각도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비도적적인 일이다. 

 

엄마가 강조하는 식으로 아이에게 여자에 대한 환상을 키우지 말라고 하고 도덕을 강조한다고 하자. 그렇게 하면 그 아이가 그 엄마의 기준으로는 더 도덕적인 인간으로 클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전혀 확실하지 않다. 완전히 반대 효과가 날 수도 있다. 나는 사실 여자접대부가 나오는 집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매춘을 하는 남자의 대부분은 여자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가 아니라 여자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 그렇게 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말하면 매춘하는 남자에 대한 엄청난 옹호라고 할지 모르지만 매춘하는 남자란 낭만을 잃어버린 남자, 더이상 연애를 할 수 없는 남자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지치고 상처입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행동이든 그 결과와 책임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온 방식의 결과다.

 

매춘이나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의 본질은 무엇인가? 99%는 환상이다. 서비스를 파는 사람도 그걸 사는 사람도 그게 환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굽신거리며 굴욕적으로 행동하는 웨이터도 친절하게 웃음짓는 접대부도 결국 지불되어진 돈의 댓가를 치루는 것뿐이다. 마치 연인처럼 남자와 섹스를 하는 매춘부는 그런 척할뿐이지 마음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기 쉽상이다. 여간한 자기 최면이 아니라면 돈을 받고 몸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고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푼돈에 내 몸을 사는 고객이 원수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설사 어떤 기기묘묘한 정신적 묘기를 부리는데 성공해서 진짜로 고객을 기쁘게 해줄만한, 진심어린 서비스를 하는 대단한 접대부들이 나오는 장소가 있다고 해도 그런 접대부의 가격이 어느정도나 할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니 냉정히 판단해 보면 압도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의 풍경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애처로운 풍경에 가깝다. 그 서비스를 파는 사람도 그 서비스를 사는 사람도 거의 억지로 환상을 만든다. 그것은 마치 연습도 한번도 안하고 갑자기 연극무대위로 떠밀려진 사람의 연기나 마찬가지다. 돈이 아까워서, 먹고 살자고 이를 악물고 연기를 하지만 기본 환경이 그러니 그게 잘 되기가 어렵다. 자주하면 그 연기가 좀 익숙해 질지 모르지만 그래봐야 저 밑에서 스멀스멀 넘쳐나는 회의감은 피하기가 어렵다. 

 

세상에 대해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그런 환상에 빠져서 즐거움을 얻기가 쉬울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은일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오락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그런 자리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서 별로 기대할 것이 없으며 이 술잔이 쓰듯이 다른 술잔도 쓰니 그냥 눈앞의 술잔을 삼키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술자리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화장발이고 성격도 다 더럽고 이기적이다. 이런 식으로 쉽게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매춘부나 접대부에 쉽게 적응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폭력게임과 폭력범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폭력게임이 폭력범죄를 늘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없고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결국 폭력의 본질이나 매춘의 본질이나 같다. 그것은 기대요, 환상이다. 그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어떤 환상을 충족시키는가가 문제다. 그러니 세상에 대해, 자기에 대해, 이성에 대해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그런 행위들이 대개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하고나면 기분만 더 나빠질 것이다. 액션영화같이, 대작 액션 게임같이 잘짜여진 다른 환상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해서 현실세계에서 폭력의 가해자라는 역할을 맡는 환상으로 쉽사리 빠져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10억짜리 자동차 모는데 익숙한 사람은 반대로 싸구려 차는 싫어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상황을 잘 구분못하는 감수성이고 감수성의 부족과 세상에대한 낮은 기대감은 긴밀하게 연결되어져 있다. 

 

결국 매춘의 불꽃은 호기심때문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자존심은 깨질대로 깨지고, 인생에 대해, 세상에 대해, 가족과 친구와 연인, 배우자에 대해 낮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찌질한 인생이 찌질하게 술을 마시고 시간을 쓰는 것이 매춘과 접대업소의 진실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누군가는 약간 화난 목소리로 두가지 지적을 할 지 모른다. 하나는 그래 내 인생이 처참하다는 것을 꼭 그렇게 지적해야겠냐하는 것이다. 나도 집에 김태희가 웃으며 기다리고 아내가 손예진이나 한가인 같다면 당연히 술집에 가서 시간 안 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또 하나는 인생에 대해 가질려고 한다고 높은 기대감을 가질 수도 없을 뿐더러 기대감이 크면 결국 실망하게 될거란 말이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너는 맨날 그렇게 이기냐. 나는 못나서 이렇게 논다. 이렇게 쏘아붙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화가난 사람이 있다면 잠깐 참아줬으면 싶다. 누군가를 화나게 하거나 누군가를 폄하하고 공격하는 것은 전혀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바가 아니다. 나는 별로 잘난 사람이 아니며 성인군자라서 여자에 대한 환상이나 유혹도 없는 그런 남자도 아니다. 여배우 비키니 사진에 눈돌아가는 그런 평범한 남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 리가 없다. 

 

단순하게 말해서 매춘은 우리 인생의 찌질함 때문이라고 말했으므로 나는 우리 인생의 찌질함은 그럼 무엇때문인가로 이야기를 확대하고 싶다. 우리는 왜 찌질해 지는가. 스스로 그렇게 되기도 하고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우선 세상을 보자. 한국의 사회적 현실, 한국의 문화가 우리들을 괴롭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문화는 한국인들에게 소수의 승자말고는 매우 큰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든다. 정말 소수의 승자말고는 말이다. 그래서 남들보기에는 대단히 성공한 것 같은 사람들도 패배감에 젖어서 사는 경우가 참 많다. 내가 천억을 가지고 있어도 친구가 천 백억을 가지고 있으면 나는 패배자가 될 수 있다. 내가 한국 최고의 부자라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더라는 것 하나 정도면 인생실패자 처럼 느끼게 되는 건 쉽다.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물론 경쟁이 있고 목표가 있으므로 실패도 있고 실망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참 비교하기 좋아하고 조금 더 많다던가 작다던가 하는 차이로 말하기 좋아한다. BMW 열쇠키만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라는 신문기사같은 걸 보고 있으면 무슨 부동산 투기 열풍 이야기를 듣는 것같다. 그러니까 성공의 냄새가 느껴진다 싶으면 모든 걸 해줄 것처럼 친절하게 구는가 하면 누구보다 뭐가 좀 못하다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기 쉬운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친구들사이에서, 이웃과 직장동료사이에서 치이면서 살아갈 때 세상 참 치사하고 더럽다는 말 안하면서 살기 쉽지 않다. 인생 찌질해 지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세상과 인생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 매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가치관의 단순성과 한국 사회의 다양성 부족이 바로 그 낮은 기대감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다른 말로 말하면 정신적 문화적으로 빈곤한 것이다.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데 하는 게임이 몇가지 안되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배자가되고 희망을 느끼지 못하니까 싸구려 오락에 빠져드는 것이다. 한달에 3백을 벌어다 주면 5백벌어다 주는 남자와 비교하고, 천을 벌어다주면 이천버는 남자와 비교하는마누라가 있다면 그런 여자와 무슨 데이트를 하고 싶겠는가. 

 

한국 사회가 부자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 돈에 절절매게 되었다. 소비에 대한 기대치가 소득이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올라가니까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만큼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은 더 단순해 졌다. 여러가지 직업을 꿈꾸고 그에 대한 장래를 상상하던 사람들이 소득격차가 엄청난 시대가 되니까 다 똑같아진다. 월급 많이 주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다.  이젠 직장간 비교도 아주 쉬워 졌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해도 부모님에게 큰 돈 물려받아 부자인 남편이 제일 좋은 남편이다. 

 

모든 사람이 단일한 돈의 게임으로만 몰리니 인생은 점점 더 찌질해진다. 학벌높다고 자랑하는 것은 정말 찌질한 것이지만 돈많다고 공부도 안한 사람이 가난뱅이라면서 공부한 사람 무시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현상이 아닌가 싶다. 전에는 적어도 마치 스님이나 신부님 존경하듯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느낌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어졌다. 

 

세상이 다양하지 않고 가치관이 단순하다면 그러면 우리 개인은 어떤가. 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매춘활동과 관련이 있을까 없을까.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말하길 농번기가 지나서 몫돈을 쥔 남자들은 할일도 없으니 여자나오는 술집에 가는 일이 많다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고 지금은 제주도가 크게 변했다고 하지만 제주도는 물론 아무것도 없는 지방 작은 마을에 가도 어디나 접대부 딸린 술집이요 다방이며 노래방인 것이 한국의 풍경이었고 보면 그런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사이에서 취미에 대한 중대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취미를 소비적으로 생각한다. 즉 단순히 시간을 죽이는 것이고 없애는 것이며 더불어 돈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취미란 실은 자기가 좋아하는일을 하는 것이다. 취미와 밥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 같으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그럴수 없을 때 실은 직업따위는 뭐가 되도 좋고 취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좋아하니까 열심히 하고 재능이 있으니까 취미가 붙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하면 우리는 바로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되는 것이며 그 궁극은 우리가 보통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 취미란 수신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수신을 하면 뭐가 되는가. 바로 앞에서 말한 가치관의 단순성, 세상 보는 시각의 단순성이 개선된다. 그래서 비로소 자신을 찌질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산을 열심히 오르던, 기타를 열심히 치던, 글을 열심히 쓰던,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텃밭을 열심히 가꾸던, 인터넷 동호회를 열심히 관리하던 자기가 가치를 느끼는 일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심이면 우리는 반드시 뭔가를 거기서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떤 분야건 스스로 자부할만큼 뭔가에 몰두했다면 돈을 벌건 안벌건 그 사람은 이제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는 성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많으므로 모두가 성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사람중에는 이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 참많다. 공부를 해도 어떻게 하면 돈잘버나, 어떻게 하면 취직을 잘할까. 이런 것만 공부한다. 세상 살아갈 공부를 해야할 대학생이 취업용 공부만 한다. 20살밖에 안된 학생이 벌써 죽을때까지의 계획이 확실하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한번 실패하고, 누군가에게 떠밀려 쓴맛 보고 나면 인생 찌질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남자는 특히 잡담도 잘 못한다. 그러니 어찌나 단순무식한 경우가 많은지 모른다. 딱 직장에서의 부속품이다. 거기서 벗어나질 못한다. 

 

건기가 되면 숲에 산불이 잘나듯, 바로 이런 분위기에 매춘에 불이 붙는 것이다. 나이든 세대만 이렇다면 좋을텐데 젊은 세대도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잘못이고 모두의 잘못이겠지만 이땅에서 여유있는 사람들,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죄책감을 느껴야 할일이다. 여유있는 사람들, 배운자들이 문화를 선도해야 할텐데, 신문방송이 그런 문화를 퍼뜨려야 할텐데 오히려 앞장서서 배금주의나 외친다. 물론 이것은 정치하고도 관련이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밟으면서 살아간다. 사는게 원래 이런거라면서 살아가는 일이 많다.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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