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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익산 오일장, 미래와 과거의 갈림길

by 격암(강국진) 2015. 5. 30.

15.5.3

 

우리집에서 차로 30분정도면 가는 거리에 익산 북부시장이 있다. 거기서 오일장이 열린다기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익산오일장은 4와 9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오일장으로 오일장으로는 전국에서 그 규모가 2번째라고 한다. 우리는 수박을 사고 즉석 오뎅을 사고 쪽파며 양파를 샀다. 아내는 물건이 동네의 대형마트에서보다 싸고 좋다고 한다. 자기밭에서 따온듯한 상추를 쌓아놓고는 지나가는 손님도 부르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상추 천원어치를 샀더니 아마추어 장사꾼인 할머니가 상추를 그만 너무 많이 주시고 만다. 모종을 파는 곳도 많았는데 베란다 화분에 심을 오이 모종값을 물었더니 물건이 이젠 별로 싱싱하지 않다며 그냥 공짜로 준다. 재래시장은 이런 곳이다.

 

재래시장이란 우리의 과거이자 동시에 미래다. 재래시장장사가 무조건 미래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개선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래시장이 과거이며 대형마트가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큰 문제가 있다. 그건 반드시 사실이 아니다. 대형마트도 이미 과거가 되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백화점일 것이다. 뉴욕이나 파리 혹은 동경의 백화점을 처음 구경하러가는 한국 사람들은 종종 실망한다. 그들은 한국의 백화점보다 훨씬 더 대단한 백화점을 기대한다. 한국보다 훨씬 부자라는 저 나라의 백화점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하고 기대한다. 그런데 정작 가보면 오히려 한국의 백화점이 더 크고 깨끗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가난한 시절 한국에는 멋진 백화점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이제는 아주 멋진 백화점이 생겼다. 그러니까 돈을 더 벌면 백화점이 더 크고 더 멋지게 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주 부자였던 나라,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두배나 되는 나라에는 한국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백화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착각이다. 실은 백화점은 진짜 부자나라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다. 그건 아주 가난한 사람이 돈을 좀 벌어 맥도널드에서 식사할 기회를 가지게 되니까 부자는 맥도널드에 진짜 자주 올거라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진짜 부자는 맥도널드에 오히려 안간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보다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사람들이 선호한다.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해서 공장처럼 파는 물건을 파는 형태는 질을 따지지 않는 저가 물품들의 경우가 아니면 더이상 매력이 없다. 이것은 마트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진실이다.

 

대형마트의 경우 고객이 가지는 신뢰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판기 앞에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제 아무리 친절을 다하는 직원이 있다고 해도 거대한 영업점에서 직접 접객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거대 회사의 가장 말단직원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메뉴얼대로 행동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권리도 이유도 없다. 소비자가 뭔가 불만이 있다고 해도 판매 직원에게 감정적이 되는 것은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 그들은 그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억지 웃음을 짓는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장사를 하는 경우 우리는 직접 책임자를 대면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만약 오랜 도시생활로 대형마트만 다녔다고 한다면 오일장같은 곳에 가보라. 그 곳에서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상추를 파는 할머니를 만나도 당신이 어느정도의 감수성이 있다면 우리는 금방 뭔가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그분들은 전적인 판단 권한을 가진 사장들이다. 백화점에 옷사러갔더니 백화점 사장이 접객을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대형마트 생활만 오래한 사람들은 이 차이에 대해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하며 이제까지 자기가 어떤 것을 박탈당해 왔는가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즉 당신은 시스템에 의해서 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박탈당해왔던 것이다. 종업원이나 서비스센터에 아무리 항의를 해봐야 진짜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어딘가 저 뒤에 있다.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의 국민들은 대개 이걸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적 권리나 대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천명이나 만명의 손님중의 하나로 대접받는데 불편해 한다. 책임질 사람이 나와 만나는 것을 피하는 것에 불쾌해 한다.

 

게다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상품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형태가 더 복잡하 진다. 각각의 개인마다 원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고 그걸 맞추기 위해서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이 나온다. 그냥 굶어죽지 않기 위해 하는 소비가 아니다. 점점 더 거대 시스템을 통해서 그것에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 단순히 물건을 쌓아놓고 알아서 가져가라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고 고마워진다. 가장 현명한 소비에 대한 조언이 필요하다. 그런데 메뉴얼대로만 팔아야 하는 점원에게는 이런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장사는 오히려 다시 더 개인적인 접촉과 인간적인 신뢰를 강조하는 쪽으로 돌아간다. 접객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자영업자 자신이거나 완전한 자영업이 아니더라도 직원이 더 많은 자율권을 가지고 그 전문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아니면 더 부자가 되어가는 나라의 손님들을 만족 시킬 수가 없다. 사람들은 다시 단골을 만들고 좀더 장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소비를 하고 싶어한다. 소비자도 살고 가게도 사는 인간적인 상생의 관계다.

 

일단 일이 이렇게 흘러가면 쇼핑센터는 직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입점을 받고 입점한 가게들의 자율권을 보장해 주는 쪽으로 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골목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상가회가 나름의 자치규약을 통해서 이런 저런 제약을 올리는 것과 쇼핑센터가 입점한 가게들의 자율권을 증가시키는 것을 계속한다면 그 둘의 차이는 점점 줄어든다.

 

일본에는 여러군데에 상가들이 모여서 그런 장소를 만들었다. 오사카의 난바거리같은 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유명한 백화점보다 상점거리가 더 유명하다. 일본에는 보다 작은 규모로도 상인들이 모여서 거리를 구성한 곳이 사방에 있다. 한국에도 재래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관광지로도 만들려고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형마트에 무조건 밀리는 것같더니 농산물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영하는 가게들을 운영하려는 시도도 한다. 이런 시도가 무조건 협동조합이나 재래시장의 승리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지만 또 대형마트가 무조건 유리한 싸움만도 아니다.

 

물건을 사다보니 그냥 물건값을 묻고 돈을 내는 우리에게 고맙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상인도 있었다. 할머니들은 깍을려고 해도 너무 깍을려고 해서 장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애초에 왜 우리는 재래시장을 뒤로 하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개인이 개인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는 상인을 도둑으로 생각하고 상인은 소비자를 도둑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는 개인 상점은 망한다. 소비자들이 재래시장 장사꾼들은 원래 다 바가지를 씌우니 무조건 반값으로 깍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재래시장 사람들은 장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장사꾼들이 어차피 반값으로 깍아줘야 하니 처음가격을 올린 다음에 깍아주자고 하는 식으로 하면 장사꾼들을 믿는 사람들이 진짜로 바가지를 쓰는 것이 된다.

 

핵심은 신뢰와 전문성이다. 브랜드를 만들고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면 많은 투자를 하는 대형마트와의 경쟁도 알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시장에도 협동조합에도 쌀에도 고기에도 이름이 있고 전문성이 강조된다. 전문성이란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대해서 소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선을 팔지만 생선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소비하는게 좋은지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며 걸핏하면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 상인들만 재래시장에 있다면 재래시장은 과거의 일로 남을 것이다. 반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지식을 제공하며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는 상인들을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또 재래시장은 과거의 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도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젊은 사람들도 많이 재래시장에 가고 젊은 세대도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재래시장들도 충분히 그 도시를 대표하는 관광지의 역할을 하도록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그럴때 재래시장은 미래가 된다.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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