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 에세이들/우리시대의 새로운 생각

6. 문자의 마음을 넘어서 1

by 격암(강국진) 2016. 2. 23.

6. 문자의 마음을 넘어서

 

인간은 태어나는 것 이상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은 계속해서 마모되고 붕괴하며 동시에 재구축된다. 그러한 과정은 인간의 유한한 기억과 인식능력의 한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매일 매일의 체험속에서 옛 기억과 옛 개념이 새로운 기억과 새로운 개념으로 교체되면서 재탄생된다. 인간은 느끼고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몇천년전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인간이 문자라는 매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문자를 쓰기 전에도 음성이나 표정, 몸짓 심지어 그림이나 조각같은 것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기록을 남겼지만 문자는 그 모든 것과 너무 달랐다.

 

일단 문자는 음성과는 달리 정보를 저장한다. 게다가 그림보다 작고 단순해서 쓰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그 개념이 더 분명한 내용을 적을 수가 있었다. 다시말해 문자는 음성언어처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데 또 그림처럼 저장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문자도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육성을 기억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은 구술로 기술과 역사와 신화를 전수했을 것이다. 그 시대 최고의 재능은 어쩌면 싸움실력이 아니라 기억력이 아니었을까? 종교적 지도자란 가장 기억력이 뛰어난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문자로 기록하고 나면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억이 틀릴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문자로 쓴 것이 늘어나면 어차피 도저히 한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정도로 정보의 양이 많아진다.  

 

문자는 우리의 인식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했다. 우리는 정확히30년전의 같은 날에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를 그때 써놓은 일기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이것은 현대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문자의 사용이 있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문자가 없는 시대에는 과거가 제대로 기억되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의 개념은 훨씬 더 애매한 것이었을 것이다. 역사가 없으므로 자기에 대한 개념도 단순했을 것이다. 

 

문자의 사용은 인간 사회에 정보 폭팔을 일으켰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 사용 이전의 시대를 우리는 흔히 유사 이전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역사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유사 이후의 것인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일부러 기록하지 않은 것은 대부분 사라졌고 문자가 없었던 시대의 정보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가 기록되지 않으면 불과 백년전의 일도 전설로 남아 이야기되다가 영원히 망각되어질 것이다. 우리는 함무라비 법전이라도 나와야 아 그때도 사람다운 사람이 살았구만 하고 생각한다. 

 

때문에 현대인들의 역사인식도 몇천년 전 어딘가에서 큰 단절이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몇십만년전인데 인간은 아주 오랜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별 변화도 없다가 갑자기 수천년만에 현대문명을 이뤄냈다. 우리가 인간의 역사를 생각할 때면 문자 사용 시기 이전에서 우리는 갑자기 거의 텅 빈, 아주 넓은 공간을 만난다. 우리는 거기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로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생물로 진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한마디로 문자 보급의 역사다.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커지자 그에 따라 세상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보이게 되었다. 인간은 음악이나 회화등 다른 종류의 매체도 발전시켰고 그런 매체들은 문자가 전달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역시 인간 세상을 바꿔 온 가장 강력한 매체는 문자였다. 

 

서구 문명의 기원으로 말해지는 그리스에서 신화적인 사고가 사라지고 자연철학적인 사고를 행한 것도 기원전 8세기경에 호머와 헤시오드가 그 신화를 문자로 기록한 이후의 일이다. 일단 그저 구술로 내려오기만 하던 이야기들을 한군데 모아서 기록해 보자 사람들은 그 신화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비일관성들이 잘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극복하는 세계관을 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신화의 기록이란 그 신화의 극복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모든 인류가 갑자기 한꺼번에 깨어난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수천년이 되었지만 문자는 오랜동안 소수의 지배층만 쓰던 것이었다. 문자와 언어 자체도 초기부터 우리가 쓰던 모습은 아니었다. 그것은 점차 발달했고 더 쓰기 쉬워졌다. 문자도 형태에 따라 당연히 그 사용법이 다르다. 좋은 예중 하나는 아라비아 숫자일 것이다. 로마의 숫자로 좋은 수학을 하기란 불가능하지 않으면 매우 어렵다. 그 문자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고 그에 따라 정치적 학문적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 결국 인간의 역사다. 인쇄술이 보편화되지 못했다면 종교혁명도 없었고 현대적인 과학을 만들어 낸 과학혁명도 없었을 것이다. 

 

유사시대이래 그 시대의 정신은 주로 문자에, 다시 말해 도서관에 있었다. 위대한 정신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은 그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은 사람들이거나 그 안의 자료를 압축하여 이해할 수 있는 법칙을 찾아낸 학자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는 합리성이란 쓰고 읽기에 의해 탄생되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리란 결국 세계의 문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 안에서 어떤 일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문자에 의해서 우리의 인식의 범위가 커졌고 그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졌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성이란 결국 문자가 만든 세상의 합리성인 것이다. 문자가 오늘의 세상을 만들었다. 계몽의 꿈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글자를 익힌 사람이 자신에게 보이는 세계를 남들에게도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마도 문자의 특성을 통해서 20세기까지의 인류문명이 가졌던 성질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나 배타적 소유라는 것의 뿌리도 문자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문자의 특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과 비교하는가 의 문제다. 여기서는 매우 기본적인 문자의 특성, 나중에 말하려고 하는 새로운 매체와 비교되는 특성을 생각해 보자. 그 특성이란 문자가 인간에 의해 기록되며 인간에 의해 해독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이 당연한 특성에도 결과가 있다. 

 

우선 기록단계를 살펴보자. 이것은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만 인간이 문자를 쓰고 읽는 속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인간이 뭔가를 기록할 때는 정보의 선택과 압축이 필요하다. 다시말해 정보가 많이 손실된다. 정보의 선택과 압축 과정은 하나의 세계관을 요구한다. 글을 통해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복잡한 사물들의 이름 체계를 이용한다. 사물들의 이름이 백과사전 속에 자기의 위치를 가지는 것처럼, 주소가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라는 식으로 나열되는 것처럼, 생물들이 종속과문강문계의 시스템안에서 분류되는 것처럼 사물들은 그 이름의 관계 체계안의 위치에 의해 그 의미가 파악된다. 물론 음성언어도 이것은 마찬가지지만 글을 쓰게 됨으로 해서 그 시스템의 크기는 훨씬 커졌고 따라서 그 위치 혹은 지위의 의미는 더 커졌다. 인간이 명성이나 돈, 권력을 두고 싸우게 된 것은 이런 이유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름표나 호칭이나 역사책에 기록될 이름한 줄 때문인 것이다. 문자가 만든 세계는 이름의 세계이고 그 안에서는 그걸 추구하는게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니까 말이다. 

 

글은 당연히 누가 쓰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어떤 전투에서 이겼다고 해보자. 그 전투를 글로 기록하는데 있어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그 일을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해주지만 나쁜 글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만든다. 

 

이렇게 인간이 기록할 때 그 기록의 품질이 인간의 능력에 크게 달린 것이기 때문에 문자란 교육과 재능을 요구한다. 나는 앞에서 인간은 문자를 쓰면서 새로운 생명으로 진화했다고 했는데 문자의 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교육과 재능의 문제 때문에 진화 이전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다. 문자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지배층이 주로 쓰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입장이 주로 반영되었다. 그 결과는 귀족층에 의한 인간 사회의 지배였다. 노예가 왕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사실 문자 시대 수천년중의 대부분의 시대가 이랬다. 문자 대중화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노벨상 작가 펄 벅의 대지는 1930년대의 중국 농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을 보면 글을 읽는 것은 여전히 보편화가 되지 않고 여전히 부자나 개인적으로 돈을 써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중국같은 나라가 북경어를 보급하고 공공교육을 실시해서 문자를 널리 가르친 것은 한세기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문자를 알기만 할 뿐 그 글을 해독하는 능력은 생각만큼 널리 퍼져있지 않다.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물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더 드물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신화를 아직 쓰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따라서 그걸 극복하지도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정보를 읽고 해독하기 때문에 문자는 대개 인간이 눈으로 읽을 수 있는 크기로 기록된다. 그래서 어떤 정보를 저장하는 데 있어서 부피가 생긴다. 석판에 글을 쓰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파피루스나 종이에 글을 쓴다고 해도 문자는 부피를 차지한다. 

 

문자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던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문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기록된다는 사실이 부분적으로 바뀌었다. 인쇄술덕분에 기계에 의해 문자가 인쇄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쓰게 되고 과학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인쇄술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시대는 제2의 선사시대처럼 보이게 되었다. 인쇄혁명전후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 정보의 양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에서는 책을 써서 대중에게 판다는 것이 보편화되었고 작가라는 직업이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새로운 정보 폭팔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인쇄술로 인해 만들어진 정보폭팔을 아주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의 폭팔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보 폭팔은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 새로이 등장한 매체를 전자 매체라고 부르기로 하자. 

 

30년쯤 전에 나는 가정용 컴퓨터에서 쓰는 데이터 용량이 1메가 정도였던 것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플로피 디스켓에다가 자신의 데이터를 기록했다. 요즘 가정용 컴퓨터에는 테라바이트 급의 하드디스크가 들어 있다. 다시 말해 대충 백만배의 성장이 불과 반세기도 안되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기록하는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19세기때까지의 전세계의 모든 문헌을 하나의 작은 하드 디스크에 모두 담는 다는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세상의 데이터는 폭팔적으로 증가하여 구글 같은 검색 회사의 데이터 센터들은 이미 하나의 마을같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고밀도의 정보사회가 온다면 그것은 다시 한번 인간의 의식을 크게 바꿀 것이다그것은  한번의 새로운 진화라고 말해야  일이다자본주의의 종말이 온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우리가 반성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가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우리가 선사시대나 인쇄술 발명 이전 시대에 대해 희미하게 인식하듯이 언젠가 미래에는 전자매체의 등장 이전의 시대가 선사시대처럼 기억이  안되는 그저 텅빈 공간으로 인식되는 때가  것이다문자로 남아 있는 기록들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들처럼 생각하게  때가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