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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우리시대의 새로운 생각

6. 문자의 마음을 넘어서 2

by 격암(강국진) 2016. 2. 23.

그럼 전자매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계에 의해 기록되고 기계에 저장되며 기계에 의해 해독 가공되는 매체다. 이 중에서 정보가 기계에 의해 해독 가공되는 시대는 아직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것은 본격적 인공지능의 시대다. 인공지능의 시대야 말로 본격적 정보폭팔의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문자시대와 지금 시대와의 차이는 확연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스마트폰은 여러가지 사진이며 동영상을 찍어서 웹으로 올리고 있고 그것은 또 검색되어 저장되고 있다.  앞에서 문자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이미 이 내용을 느낀 사람이 있었겠지만 전자 매체는 문자와 전혀 다르다. 전자 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인간에 의해 기록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매체는 인간의 재능이나 교육을 별로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는 것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재능과 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것도 사람에 따라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초기를 살기 때문이다. 전자매체의 궁극은 기계에 의해 현실 자체가 매우 고밀도로 기록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신문에 올해가 가상현실기구의 대중화 초기가 될 것이라는 기사가 자주 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전자매체의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한가지 예다. 가상현실 기구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이 글의 문맥에서 중요한 가상현실 기술의 특징은 그것이 관찰자의 역할을 다시한번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360도로 기계가 동영상을 찍으면 그 기계를 들고 동영상을 찍는 인간은 카메라 방향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언제 셔터를 눌러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모든 것이 찍힌다. 

 

우리는 얼마지나지 않아 생쥐의 삶을 체험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생쥐에게 너의 생활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는 상상력을 가진 생쥐문학가가 필요하다. 설사 생쥐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준다고 해도 생쥐가 제대로 된 동영상을 찍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360도 동영상을 찍는다면 우리는 생쥐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카메라를 향할 것인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통해 생쥐의 삶을 더 잘 체험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솜씨가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낼 수가 있다. 360도 동영상의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영화감독의 재능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멋진 걸작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다. 그 360도 가상 현실 영화는 촬영하는 사람이 자기가 뭘 찍고 있는지를 정확히 몰라도 된다. 그 영화에서 뭘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주로 관객이다. 

 

당신이 지리산을 등산한 사람에게 혹은 친구와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을 것이다. 여행기를 써달라거나 자신이 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하는 것에 비하면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사진에는 품질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360도 가상현실 영화를 찍어왔다면 당신은 실제로 지리산에 가본 사람, 실제로 파티에 참석한 사람도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얼마지나지 않아 당신은 당신의 거실에 앉아서 유명인사들의 파티나 달탐사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이미 경험했던 과거를 여러번 다시 살아보면서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계속 다시 발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말과 동영상의 차이는 크다. 우리는 그 차이를 교통사고처리 현장에서 느끼게 된다. 자동차들이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동영상 녹화기를 달고 다니기 이전에 교통사고 현장은 운전사들의 주장과 사고 현장의 증거들을 가지고 추리를 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블랙박스 동영상이 있으면 우리는 사고 현장을 그냥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편견에 차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동영상이 있다면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 쪽이 더 좋다고 느끼게 될 지경이다. 가상현실 동영상은 인간의 개입을 더욱 더 최소화 한다. 

 

전 세계를 수없이 많은 기계들이 뒤덮고 그 기계들이 모든 생활의 현장을 녹화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공포를 준다. 드론이 우리를 몰래 사진 찍는다는 말인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공포와 불쾌감을 잠시만 한쪽으로 제쳐두자. 우리의 마음은 그런 것은 불쾌하기만 하다라던가 그런다고 뭐 대단한 게 있는가같은 말을 던지기 쉽지만 그것은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유명한 영화에서도 발견되는 착각이기 쉽다. 이것에 대해서는 금방 말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지금도 말할 수 있다. 이런 미래가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이미 늦은 것이다. 

 

일단 데이터 수집은 360도 동영상 수집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도 맹렬한 속력으로 인간 사회는 물론 지구 전체의 상황에 대한 사실을 기록하는 기계들이 설치되고 있고 그 기계들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해서 그것을 컴퓨터로 보내고 있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날씨가 어떤가 하는 것에서 누가 어떤 것을 소비하고 무슨 치료를 받았으며 어떤 동영상을 보고 어떤 기사를 읽으면서 사는지, SNS에 어떤 단어들이 자주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들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 

 

전에는 인간이 기계가 수집한 데이터를 직접 눈으로 보고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분석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불가능해졌고 사람들은 기계로 고차원적인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어졌다. 네플릭스같은 곳에서 영화를 보려고 할 때 고객에게 화면의 광고를 통해 어떤 영화를 제안해야 하는지는 이미 기계가 결정한다. 

 

지금 시대에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데이터의 처리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계가 자료를 수집하고 그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전자적인 형태로 저장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일은 아직 기계가 잘 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여전히 주식투자를 인간이 하고 정치가들은 길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운전도 인간이 하고 위험한 곳에 인간을 직접 보내야 한다. 한마디로 분석해야 할 자료는 산더미처럼 있는데 그 안에서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걸 하는 분야 중 하나가 기계학습분야다. 학습하는 기계는 전통적인 프로그램과는 달리 인간에게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은 목록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학습기계는 데이터를 주면 그 데이터 안에서 방법을 찾는다. 학습기계가 많은 데이터 속에서 어떤 규칙을 찾아냈다고 해도 그 규칙은 인간의 언어로 기계안에 써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테니스를 잘 치는 기계를 만들었지만 그 기계에게 테니스를 어떻게 치는가를 배울 수는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다. 즉 인간도 답을 모르는데 인간이 만든 기계가 답을 아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1957년 코넬 항공연구소의 프랑크 로젠브라트가 퍼셉트론이라는 기계를 만든 이후 기계 학습 분야는 몇번의 부침을 겪었다. 인간의 뇌세포를 흉내내어 만든 기계라는 인공신경망은 얼마지나지 않아 대단한 결과를 쏟아낼 것같았지만 좀 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분야는 실망으로 가득 찾다. 그러다가 백프로파게이션이니 딥러닝이니 하는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하면서 한번씩 다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식이었다. 그렇게 되면 희망은 다시 불타오른다. 

 

현실을 보면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꿈이나 걱정처럼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는 않은 것같다. 요즘 화제가 되는 딥러닝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금방 한계를 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인간같은 기계를 언제 가질런지는 모르고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는다고 해도 인공지능분야에 있어서 사소한 발전은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년전만해도 문자 인식이나 음성인식 분야는 매우 비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문자인식이 보편화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일단 문자인식이 보편화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한가지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도서관의 책들을 전부 문자인식으로 디지털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디지털화는 별거 아닌 것같겠지만 그것은 검색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모두 디지털 자료로 만들면 코끼리라고 검색해서 조선시대에 코끼리를 언급한 곳이 몇군데가 있는지를 순식간에 찾을 수가 있다. 전에는 사람이 직접 시간을 걸려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현실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분야의 사소한 발전중의 하나는 이제 모두가 쓰는 네비게이션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길을 외울 필요가 없다. 심지어 눈보라나 안개때문에 바깥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계는 우리에게 현재 위치와 가야할 방향을 잘 알려준다. 길은 물론 수없이 많지만 네비게이션은 소비자는 잘 모르는 규칙에 따라 그 길중의 몇개를 선택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동차에 익숙한 대개의 현대인들은 백년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니던 거리를 걷는 것을 힘들어 한다. 네비게이션에 익숙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길을 외우고 다니는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점점 더 길을 안 외우게 된다. 단축키로만 전화하는 사람이 전화번호를 잘 외우지 못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더 많은 여러가지 정보서비스에 우리가 익숙해 질 때 이제 그 서비스들은 우리의 일부처럼 여겨질 것이다. 우리는 벌거벗고 다니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이미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증을 보이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사람들은 점점 더 뭔가를 검색해 보기전에는 일들을 결정할 수가 없어진다. 가격비교를 해주고 사람들의 평을 읽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않으면 물건들을 사거나 식당에 가거나 영화를 볼 수가 없어진다.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돈같은 것이 점점 그 의미가 희미해져 간다. 돈이란 더이상 종이나 동전이 아니다. 그것은 숫자고 신용이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이나 지역화폐를 발행해서 자기들끼리의 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공유경제의 이름으로 소유의 의미를 약간만 무너뜨리면 갑자기 직장이 생기고 생활이 윤택해 지는 경우도 생긴다. 오늘날은 게임 아이템이 큰 돈을 받고 팔리고 게임 안에서 만나서 게임 안에서 결혼관계를 만드는 일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좀 더 강력해지고, 가상현실 기술이 보다 완벽해 질 수록 시간과 공간의 벽은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시대에 원하는 공간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단어의 힘, 이름의 힘, 말의 힘은 약화되고 데이터의 힘은 강대해 질 것이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백권의 책보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는 한 번의 체험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전자 매체의 시대란 기계에 의해 정보가 거의 손실되는 일 없이 저장되고 배포되는 시대다. 설득의 힘은 말에서 나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하는 것에서 나온다.

 

전자매체는 매우 민주적인 매체다. 전자 매체가 기계에 의한 매체라는 사실에 우리는 때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매체가 인간의 개입없이 정보를 기록한다는 것은 매체를 지배하는 인간들이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광주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는다고 하자 혹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대한 어떤 소설을 읽는다고하자. 그러다가 우리는 그 사건이나 소설에 대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글쓰는 사람의 권력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문자의 시대에는 정보가 인간들을 거쳐서 흘렀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가공되고 변형되어졌었다. 그런데 전자매체의 시대에 우리는 사건의 현장을 바로 접근할 수 있다. 기계는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기록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잘쓴 농민소설도 농민의 삶을 사진으로 찍은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물며 농민의 삶이 관찰자 없는 영화 즉 가상현실 영화로 제작된다면 기록단계에서 일어나는 회복불능의 왜곡은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더 투명해진다는 것은 물론 더 불편해지는 어떤 부작용이 있겠지만 그것은 매체의 한계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이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북극곰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북극곰을 다르게 볼 것이다. 아직 그런 컨텐츠는 별로 없지만 구글 카드보드 가상현실기구같은 것은 이미 교실에서 학습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 도구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을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다른 세계들로 데려갈 수 있다. 아이들은 인도로 바닷속으로 화산 앞으로 데려가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세계를 점점 다르게 보게 되지 않을까? 아니 요즘 아이들도 이미 전과는 다르지 않은가?

 

기계에 의한 인간지배의 이야기는 세상에 아주 흔하고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같은 영화를 통해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해가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든 어떤 것에 지배당하는 것을 미래의 공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를 살기 시작한지 오래되었으며 심지어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바로 문자의 지배다. 인간은 문자로 인해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했고 인간이 문자를 쓴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이제까지의 인간의 마음은 주로 문자의 마음이었다. 

 

기계에 의한 인간지배란 본질적으로 문자에 의한 인간지배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언제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 같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가 출현할 것인가하고 때로 묻는다. 그런 질문에는 아직은 그런 때가 오지 않았으니 우리는 아직 기계에 의해 지배받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는 이미 나온지 오래되었다. 인간은 자동차처럼 빨리 달리지 못하고 계산기보다 계산이 훨씬 느리며 컴퓨터보다 기억력이 나쁘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고 계산기로 계산을 하며 컴퓨터에 정보를 저장한다. 다만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건 상관없어.’라던가 ‘인간에게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잖아.’ 라고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인간은 영원히가 아니면 적어도 아주 오랜동안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에는 여전히 기계가 인간을 따라오지 못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씩 조금씩 늘고 있다. 몇년안에 자동차는 기계가 운전하는 일이 당연한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인간이 운전하는 것이 금지되는 미래가 올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계가 체스로 인간 세계챔피언을 이긴 후에도 사람들은 바둑이라면 기계가 인간 최강자를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바뀌었다. 이제는 그것도 얼마남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최종적 인공지능 기계인 스카이넷이 출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인간 사회는 정보 폭팔을 겪고 있고 앞으로 더 큰 규모로 겪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기계의 눈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이미 많은 나라에서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쓰지 않고 세상을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전자매체를 쓰고 기계의 지배를 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할 것이며 아마도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도 물론 변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문자의 마음에서 기계의 마음으로 대체되고 있다. 기계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물론 그것은 그 기계를 설계한 인간들이 생각해낸 원리, 기계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원리에 기반한 마음이다. 

 

기계가 세계를 보여주는 창을 통해 계속 세계를 보면 그 세계안에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언젠가 컴퓨터 발명 이전인 19세기는 원시적이고 자료가 남은 것이 없는 때로 느껴질 것이다. 모든 의미있는 일은 전자매체의 발명 이후에 생겨났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정신은 구글의 데이터 센터같은 곳에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시대의 초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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