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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똑똑한 것과 바보같은 것

by 격암(강국진) 2016. 4. 14.

16.4.14

현대인들은 수없이 많은 이미지들과 정보를 접한다. 그걸 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 그것을 거부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점점 소외될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소외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지 않다. 말도 안되는 막장드라마나 웃기지도 않는 가수들이라도 때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내정치에 무관심해도 사내정치에 무지하면 호된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이런 초정보화 환경에서 살도록 진화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진화한 환경은 매일 매일이 단조롭고 똑같으며 소수의 친숙한 사람들만을 만나며 사는 곳이었다. 일들이 많이 그리고 정신없이 빠르게 일어나는 곳이 아니었다. 이러한 차이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구체적 경험에 크게 영향받는다. 연속해서 들은 몇가지의 일이 온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고 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많은 자료와 정보들은 우리를 위험한 상태에 빠뜨리기 쉽다. 하나 하나는 그럴 듯해 보였던 선택들은 우리를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신문을 통해 살인사건이나 어린이 유괴사건을 보게 되고 왕따문제나 학내폭력문제를 듣게 되었다고 하자. 우리는 내 아이가 그걸 겪게 될 확률을 합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자연스럽게 걱정부터하게 된다. 그럴 때 그런 걱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기계나 보험상품을 누군가가 당신에게 내민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것을 구입할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한 사람이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 두 사람이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 세 사람이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할때 쯤이면 당신은 그 사람을 상당히 굳게 믿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사람을 고용하거나 그 사람과 중요한 계약을 맺게 될런지도 모른다. 

 

티브이에서 테러사건을 보도한다. 이 나라에서 이런 테러가 있었고 저런 나라에서 저런 테러가 있었다는 보도다. 이런 테러 사건 몇가지를 연속해서 보다보면 우리는 테러를 막기 위해서 국민들의 사적인 정보를 국가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는 법안에 동의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쨌든 온 세상이 테러니까. 때로는 테러로 죽는 사람보다 국가의 부당한 탄압때문에 일어난 비극에서 고통받는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잊혀지기 쉽다.  

 

우리들은 유행에 쉽게 휘둘린다. 하나의 유행이 끝나면 다음 번 유행에 휘둘리고 그 전의 일에 대해 완전히 잊게 된다. 올해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떠나는 캠핑이 유행이라면 꼭 그런 캠핑을 가야할 것같다. 그러다가 유행이 지나고 나면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그런 일은 완전히 잊혀지는 것이다.  올해는 그걸 안하면 큰 일이 날 것같은데 내년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년에만 해도 수돗물을 잘 마시고 살던 사람이 올해는 정수기 물 이외의 것을 먹으면 당장 죽을 것처럼 느낀다. 

 

우리가 유행이나 미디어에 휘둘리기 쉽다는 것, 우리가 주변의 몇사람에게 휘둘려 많은 것들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것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현대인의 삶이 복잡하고 그 복잡한 삶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인은 관리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적 의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제약을 준다. 하나의 선택은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선택들로 이어진다. 그러는 가운데 삶은 감옥이 된다. 

 

당신이 싸구려 냉동건조커피를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원두 커피콩을 볶고, 갈고, 특별한 에스프레소 머쉰을 써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일은 단순히 커피 한 잔의 문제가 아니기 쉽다. 냉동건조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아무 잔에나 마셔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왕 비싸게 산 에스프레소 머쉰에서 나온 커피는 좋은 잔에 부어서 분위기있는 탁자위에 올려놓고 푹신한 소파 위에 앉아서 먹어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당신이 새로 이사갈 집을 고르면서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배당한다면 커피때문에 집이 바뀌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만큼 부자가 아니라면 그 집값을 위해서 고된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사소한 것이 큰 것을 바꾸는 일은 많이 일어난다. 화장실 인테리어고르다가 집전체를 바꾸는 일 같은 거 말이다. 결국 커피때문에 돈의 노예가 되고 말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시간따위는 없어질 것이다. 

 

커피가 설득력있는 예가 아니라면 아이를 키우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오늘날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사입히고 등록금을 내주는 문제로 끝나는 일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조금 더 신경써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조금 더 좋은 옷이라던가 조금 비싼 체험 캠프에 한 번 보내 본다던가, 성적에 조금만 더 신경쓰기 위해 학원을 한번 보내보기 시작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보면 아이가 당신의 삶을 완전히 점령해 버리기 쉽다. 옆집 사람이나 동생이나 동창의 누군가가 나는 이런 저런 것을 시킨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바뀐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황제나 스타같아지고 부모는 그 아이의 하인이나 매니저같아진다. 

 

정리해 보자. 우리가 몇 개의 예들에 휘둘리기 쉽다는 사실, 현대인들의 삶은 복잡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선택은 다른 선택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들을 조합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모습이 나온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삶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남들에 의해 조립되어지고 금새 그것은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 되기 쉽다. 삶의 여러 측면들이 다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뭔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걸 쉽게 바꿀 수가 없어진다.

 

일단 생활비를 한달에 천만원씩 쓰는데 익숙해 지면 생활비를 좀 줄여보려고 해도 그것이 매우 어렵다. 생활의 질은 별로 라서 그다지 사치를 하는 것같지도 않은데 돈은 엄청나게 나가고 따져보면 뺄 것도 없다. 우리의 문제들은 대개 하나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말하자면 어딘가 우회전 해야할 곳에서 좌회전 한 것같은 것이 아니다. 우회전에 좌회전에 다시 유턴하는 식으로 너무나 많은 선택들을 해 버렸기 때문에 이젠 어디서 뭘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사 나의 문제가 뭔지 명확히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착각일 수 있다. 독사가 들끓는 구덩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히 독사와 싸우는 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문제는 애초에 그 구덩이에 들어가고 거기에 머무는 것일 수 있다. 물론 고통받는 그 사람은 내가 왜 구덩이에서 나올 수 없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뱀들과 싸우지 말고 그냥 구덩이에서 나올 것을 제안하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말은 틀리지도 맞지도 않는다. 문제는 대개 자신의 마음에 있다. 자기가 자신을 함정에 붙들어 두는 것이다. 남이 어쩔 수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에게는 종종 그 쇠사슬이란 것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흔한 병중의 하나는 우울증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느낄 때가 많다. 그러니 우울해 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이 할 수 없는 일이나 해보나 마나한 일로 느껴진다. 우리의 삶은 이미 중반을 넘어 종반을 한참 지났는데 더 나올 스토리도 없으면서 지루하게 계속 방송되고 있는 인기없는 드라마같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폭포라던가 꽃밭옆에 살아도 그런 자연경관에 대한 감탄과 감동을 하는 능력을 쉽게 잃는다. 어른들은 아직 어렸을 때 가슴 두근거리던 옛날을 그리워하지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인생 다끝난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열살짜리 꼬마도 사는게 뭔지 이미 다 안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점점 꿈이 로또복권 당첨 비슷해 진다. 팔굽혀펴기 백번을 해내고 싶은게 꿈이라면 그것은 주로 내 노력의 문제다. 하지만 복권 당첨은 주로 외부의 문제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삶이 탈출 할 수 없는 감옥같이 느껴질 때 우리는 외부만 바라보게 된다. 복권당첨에 미래를 걸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이란 누구고 바보같은 사람이란 누구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똑똑한 사람이란 멈춰설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선택앞에 선다. 그런데 마음은 급하고 할 일은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선택 앞에서 멈춰서지 못한다. 남을 따라가야 할 것같고 빨리 이걸 선택하고 다음번 선택으로 진도가 나가야 할 것처럼 느낀다. 

 

우리의 선택은 흔히 우리가 이미 가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통상 문제를 빨리 해결하면 그걸 능력있는 것이고 잘 해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멈춰서고 한호흡 쉬는 것일 수 있다.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일 수 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사는 방의 천장에서 물이 샌다. 그러면 우리는 물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에서도 잠시 멈춰설 수 있었다면 가망없는 방을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물이 안새는 방으로 옮겨가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단순히 물을 막는다는 일에만 너무 집중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한게 아니라 오히려 키워서 대형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할 일이 많은 시대에 모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조금씩 삶의 감옥을 만들게 된다. 조심을 하고 천천히 생각해도 그렇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예 좀 더 길게 멈춰서 더 큰 범위에서 삶을 바라봐야 한다. 당신은 부장이 되기 위해 몹시 애를 써왔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우리는 우리가 애초에 왜 부장이 되기를 원했던가를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가끔은 부장이 되는 것을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 삶을 초기화할 필요가 있다. 

 

돌아가신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말이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법정스님은 물건을 쓰다가 자신이 그 물건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물건을 남에게 줘 버리셨다고 한다. 집착이 깊어지면 삶이 감옥이 되기 때문에 그 감옥이 지나치게 튼튼해 지기 전에 물건을 줘버리고 되도록 맨 몸하나로 살게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일을 빨리 하는 것이 똑똑한 것이라고 칭찬을 듣는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한국 교육은 뭘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여러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교육이 문제라는 생각이 문제인 것도 크다. 한국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꾸면 여러사람들이 시행착오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교육은 사회 생활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커서 사회가 잘못되어서 교육이 효과가 없는 것일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또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고 법을 바꿀 여러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회의 현실이란 또 그 사회안의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달려 있다. 엉터리 같은 시스템도 그 걸 쓰는 사람에 따라 너무 좋은 시스템일 수도 있고 아주 훌룡해 보이는 시스템도 낭비가 심하고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마음도 사실은 별로 바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생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가지 일은 한다. 쓸데없이 하게 되는 일을 줄인다. 쓸데 없는 일을 하지 않으려면 일단 멈춰야 한다.  노자 20장에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유능하지만 나만 홀로 무능하고 촌티가 난다라는 말이 나온다.  노자도 이미 그 옛날에 사람들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너무 쉽게 단정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21세기에 이거니 저거니 하고 단정짓다가는 함정에 얼마나 쉽게 빠질 것인가. 똑똑한 것과 바보같은 것에 대해 생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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