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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16. 7. 1.

16.7.1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당연한 질문이면서 누구도 이것이 그 질문의 최종적 답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이 질문을 너무나 오랜동안 하지 않는다. 마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이렇다. 사는 일은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과 비슷하다. 우리가 읽거나 쓰고 있는 삶이라는 책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커녕 우리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의 구절을 끝도 없이 반복해서 읽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거나 아무리 책을 참고 읽어도 계속 무의미한 말들만 반복해서 나오는 것같다며 불평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그 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책으로 여겨지는 고금의 고전이 어떤 사람에게는 한푼의 값어치도 없는 글이거나 완전히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책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문제는 당연히 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관점이나 생각에도 크게 의존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우리는 대부분 오늘 하루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우리의 일과가 펼쳐지는 장소와 대강의 일정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책을 설사 처음 읽는다고 해도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이제까지 이런 저런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끌어 왔으니 오늘은 그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아마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설사 우리가 읽는 책이 보다 현대적인 것이라서 그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종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경우라고 해도 우리는 그것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될 것이라던가 그래도 언제나 주제나 주인공은 같다던가, 이야기 자체는 중구난방이라도 작가가 가지는 일정한 태도나 문체는 유지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에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는 이해나 기대 혹은 생각은 종종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는 여러가지 사상을 가지고 즉 다시 말해서 뭔가를 믿고 살아간다. 누구도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사상도 없이 살아가지는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나는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간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일 수록 어떤 사상에 강력하게 빠져 있다. 그들은 어떤 것을 너무나 강력하게 믿기에 그들이 어떤 것을 믿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사상? 무슨 사상? 당신은 사상이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것따위는 전혀 없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어떤 사상의 맹신자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성격은 별자리나 혈액형에 달려 있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살면서도 자신이 아무런 사상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집안을 잇는 것은 당연히 장남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아무런 사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상이란 너무나 원초적이고 크고 복잡한 것이라서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대개는 친숙한 생각들이다. 

 

요즘은 우울증같은 것을 몸의 문제로만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무게나 크기를 잴 수 없는 사상의 문제는 별반 값어치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분명히 하나의 사상이거니와 우울증의 치료가 단순히 약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빅터 프란켈은 로고세라피를 주장했는데 그 핵심은 책임감에 있다. 즉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에 책임감을 느끼는가에 따라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고통과 외로움도 다르게 느끼게 될 수 있다. 우리가 프로작같은 약을 먹는다고 해서 책임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인의 우울은 우리의 삶의 방식자체에 기인하는 면이 있으며 당연히 약하나로 그런 요소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시에 찔리면 손이 아픈 것은 정상이다. 약이 없기 때문에 손이 아픈게 아니다. 

 

살아가는 일을 굳이 책을 읽거나 쓰는 일로 말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는 우리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대단하고 그럴 듯해 보여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읽던 책을 바꿔 읽을 수 있고 세상에는 다른 책들이 있다. 탐정소설을 읽다가 탐정소설에 갇혀서 자신을 그저 그 소설에 나오는 인물중의 하나로 파악하고 세상의 일들이 반드시 그 탐정소설에서처럼 흘러갈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압도되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앞으로도 계속 그 탐정소설을 읽더라도 그 사람이 꼭 해야 하는 것은 그 소설속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다독을 권하거나 여러가지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같은 책을 수없이 다시 읽으면서 그 책을 쓴 저자도 알지 못했던 의미를 찾아내고 느끼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편이다. 삶의 태도로서도 그런 우직함과 일관성은 존경할만한 것이다. 나는 달인이나 장인이 좋다. 

 

그러나 그 책에 갇혀서는 안된다. 그 책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책이 주는 희노애락에 빠져서 정신이 없을 수 있지만 사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책상앞에서 혹은 어딘가의 벤치에 앉아서 혹은 어디선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그 책을 읽고 있을 뿐인 것이다. 

 

책을 자꾸 바꾸는 것은 반드시 추천할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책은 바꿔서 읽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책들을 읽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책에서 눈을 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사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외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묵묵히 책장을 넘기고 묵묵히 한편의 글을 더 써내야 한다. 오늘도 우리의 삶은 매우 높은 확률로 지루하고 단조로울 것이다. 새로울 것은 뭐하나 없으며 이뤄내는 것은 없을지 모른다. 내가 써낸 또 한편의 글이란 전에 쓴 것과 다를바도 없을 뿐더러 누구도 읽지 않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책장은 넘기나 마나이며 다음 글도 쓰나 마나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 절망을 주는 사상에 빠져서는 안된다.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 나누는 대화가 다 그게 그거같아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들을 똑같이 보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건 더욱 더 그렇게 된다. 모든 장미가 서로 다르고 모든 사과가 서로 다른데 저건 다 장미야, 저건 다 사과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세상은 단순하게만 보이게 되고 배우는 것도 느끼는 것도 없게 된다. 새로운 하루는 살아 볼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실은 매우 재미있고 심오한 어떤 진리를 놓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묵묵히 책장을 넘긴다. 일은 항상 실제로 해보면 하기 전과는 다르다. 청소를 하기 전에는 올 사람도 없는데 청소는 뭐하러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30분간 혹은 한두시간 청소를 하고 나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행을 떠나면 뭐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여행에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면 여행길에서 만난 사소함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새롭게 만든다. 매일 매일 직장에서 만나는 고객은 어제나 그제나 다르지 않았고 따라서 오늘의 고객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열심히 일하고 나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 차이가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뭔가가 충전되어진 것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대개 우리가 뭔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해보나 마나라는 생각이 우리를 현재의 삶에 가둔다. 우울증을 만든다. 생각을 버리고 줄이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가운데 우리는 보다 큰 희망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한가지를 기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그냥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며 이 책이 세상에서 유일한 책도 아니다. 이 책에 갇혀서는 안된다. 이 책을 계속 읽더라도 그 책의 바깥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유일한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일관성을 추구해야 하며 위대한 일관성을 존경하게 되지만 일관성이 우리를 장님으로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우리는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로 가서 전혀 다른 책을 고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까지는 물리학책이나 요리책을 보고 있었는데 연애소설이나 모험소설을 읽거나 아니면 역사책이나 만화책 혹은 야한 사진 책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걸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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