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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허세의 두려움

by 격암(강국진) 2016. 3. 13.

16.3.13

허세란 겉껍질뿐이요 진짜 나와는 다른 것을 나로 알거나 나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허세가 있다.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허세다. 왜냐면 진짜 나를 알아야 뭐가 허세일지 알지 않겠는가. 내가 허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그것이야 말로 허세다. 거지같은 복장에 기행을 일삼으며 나는 솔직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도 나는 사실 이렇게 남이 못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하는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미묘하고 깊은 곳에 있는 허세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허세는 만들어진다. 사람이란 사람을 신경쓰게 태어나는 존재라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왕이면 나의 좋은 면, 잘난 면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굳이 일부러 어둡고 나쁜 면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며 대개의 경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우리는 사실 많은 경우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라고 배운다. 예를 들어 밖에 나갈 때는 몸을 씻고 나가고 누군가를 만날 때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이 예의라고 우리는 배운다. 그리고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점점 허세는 만들어진다.

 

여러가지 정황상 남을 자주 만나거나 누군가를 대표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한국을 자주 대표한다. 사장은 회사를 자주 대표하고 한 가정에서도 바깥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쪽이 있다. 남을 자주 만나는 쪽은 그 예의라는 형식속에서 점점 좋은 쪽을 보여주는데 익숙해 진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여자라면 화장도 한다. 머리도 더 다듬고 더 그럴듯한 예절들을 익히면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허세는 점점 만들어 진다. 심한 경우에는 대통령과 사장은 그저 자기가 맨 앞에 선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잊고 세상이 자기가 뜻한대로 움직이며 자신의 공으로 세상이 전진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허세란 결국 나의 공이 얼마나 큰 가하는 질문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니 사람들이 다투게 되는 일의 뿌리도 결국은 허세에 있다. 

 

부모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며 되도록 자식이 좋은 곳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가운데 자식들은 대개 허세가 생긴다. 화려한 곳을 몇번 다니다보면 집에서 자신을 뒷받침해주는 부모는 초라하게 생각되고 자신이 진짜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없고 성급하여 종종 그 허세의 행군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부모의 고마움을 잊게 된다. 

 

집에서 바깥으로 일을 나가는 배우자의 뒷받침을 하는 사람은 대개 아내다. 남편은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버느라 힘들다고는 하겠지만 바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허세가 생기기 아주 쉽다. 자주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니 옷을 더 잘 입고, 직장의 일로 이런 저런 모임에 참석하면서 허세는 점점 불어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자신의 그런 겉껍질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게 된다. 바깥 출입을 할 일이 별로 없어서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언제나 세련된 옷을 입은 여자들과 비교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그러다보면 허세가 배우자의 고마움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들은 허세가 심하다. 서로서로 사장님 회장님 부르면서 서로의 허세를 키워주는 것이 한국에서는 예의로 통한다. 존대말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서양에서처럼 서로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대단한 실례다. 윗사람이 가까운 아랫사람에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선배는 선배로서의 허세가 자라나고 직장상사는 직장상사로서의 허세가 자라난다. 학벌이 높은 사람은 학벌이 높은 사람으로서의 허세가 자라나고 직장이 좋은 사람은 직장이 좋은 사람으로서의 허세가 자라난다. 

 

허세란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허세가 자라나면 점점 더 생활의 균형이 망가진다. 당장 라면 사먹을 돈도 없으면서 몇백만원짜리 옷을 입는 꼴이랄까. 이것은 과장이라고 하겠지만 작년에 한국인의 빚이 1200조를 넘어서 일인당 2천만원 이상의 빚을 졌다고 한다. 빚내서 살아가면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굴리고, 사교육비를 펑펑쓰고, 무엇보다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집을 빚을 내서 사는 것은 어떻게 봐도 허세다. 

 

허세가 너무 흔하니 허세는 예의라고 말하는 것을 지나 허세는 투자이며 삶의 지혜로까지 말해진다. 경차를 타고 다니면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니 비싼 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낡은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니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 작고 싼 집에 살면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니 비싸고 큰 집에 살아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중의 다수는 자신이 스스로 경차타고 다니는 사람을 무시하고 낡은 옷을 입은 사람을 무시하고,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을 무시한다. 허세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삶의 스승이라면서 따르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이 잘난 사람인양 허세를 부린다. 세상이 이렇다는 자신의 주장을 자신이 스스로 실천하니 그 말이 틀릴 리가 없다. 

 

그러나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그리고 그 허세가 정도를 넘으면 그런 얕은 지혜란 웃기지도 않는 것이다. 허세가 그저 장난 정도라면 별거 아니겠지만 대개의 허세란 파탄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일주일 파티로 평생 쓸 돈을 모두 날리는 허세를 부린 뒤에 평생 노예로 사는 것처럼 살게 된다. 허세란 악마의 유혹이다. 악마가 있다면 인간에게 제일 먼저 할 것은 허세를 키워서 빚을 지게 만드는 것 일 것이다. 그러면 타락하고 노예가 되니까 말이다. 능력이 없는데 허세를 부리면 그 앞에 있는 길은 과도하게 쓴 것을 갚느라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면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벌어들이는 길밖에 없다. 그런 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악행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이게 악마의 길이 아니고 뭐겠는가. 세상은 우리가 나쁜 일을 할 수록 댓가를 많이 치뤄준다. 그래서 허세는 악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허세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는 것같아서 희극적이지만 그 허세가 어떤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조마조마하고 눈물이 날 것같은 일로 생각된다. 그 허세때문에 우리는 종종 우리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멱살을 잡는 일을 한다. 그 허세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보물을 던져 버리고 만다. 그 허세때문에 우리는 평생 고단하게 일을 해야 한다. 허세의 환상을 깨는 때 그때가 바로 세상이 확하고 바뀌는 때일 것이다. 혁명이 필요한 이유도 결국 허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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