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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처음부터 다시 읽기

by 격암(강국진) 2015. 8. 19.

15.8.19

리처드 파인만은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다. 그가 하루는 과학을 전공하는 여동생에게 질문을 받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그가 준 답은 이랬다.

 

'그 책을 읽다가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거든 거기서 멈춰.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읽도록해. 그리고 그것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지.'

 

우리가 뭔가를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어느 정도 오만이다. 왜냐면 어떤 것의 완전한 이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유한한 우리가 보지 못한 더 큰 그림이 있다.

 

우리가 한 문장을 읽거나 몇페이지의 글을 읽었다고 하자.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즉 그 설명이나 그 묘사를 이해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일 것이다.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는 것이지 그것이 이해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 뒤 쪽의 내용이 점점 더 이해가 안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이해가 너무 작았기 때문일 수 있다. 물론 애초에 그 글을 쓴 사람과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설명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이해가 가는 설명을 읽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  저기로, 이 점에서 저 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이런 문장을 보자.

 

청담동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집에서 살고 비싼 자동차를 몰며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매일 차를 마시며 잡담을 즐기는 손지희는 물론 허영이 있다.

 

우리는 이것이 그럴 듯한 문장이라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장은 두개의 사실을 겨우 겨우 잇는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나는 부자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손지희는 허영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두가지를 늘어놓을 때 어떤 사람은 이러저러하니까 저런 건 당연하지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건 편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저런 글은 설명이라기 보다는 기껏해야 특이한 하나의 사례이며 따라서 다음 번에 누군가가 비슷한 사람이 나와도 그나 그녀가 허영에 차 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 위의 문장은 설명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첫번째 사람에게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두번째 사람에는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런데 정도의 문제일뿐 우리는 언제나 위와 같은 문제를 겪는다. 비약이 없는 설명내지 논리적 전개는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중간단계의 수는 언제나 무한하다. 아침마다 닭이 울기 때문에 당신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지금이 아침이구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흄이니 러셀이니 하는 사람들이 강조한 것처럼 아무리 많은 경험도 법칙을 완전히 증명하지는 않는다. 매우 그럴법하다는 것에 멈출 뿐이다. 

 

때문에 상상력이 뛰어난데 경험이 작은 아이들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읽고나서 어른의 질문에 답하자면 어려움을 겪는다. 얇고 간략하기 마련인 어린이용 책은 종종 비약이 심한데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어떤 설명이 설명이 안되는 수 없는 이유들을 상상해 낼 수가 있다. 점과 점이 연결 안되는 이유는 그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똑똑해서 그렇다. 실제로는 궁극적으로 어떤 점도 완전히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리석은 어른이나 선생일수록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약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자기 눈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보는 아이를 꾸짖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뭔가를 가르치는게 아니라 오히려 머리에서 빼내고 있다.

 

어른이나 선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책도 그렇다. 어떤 책들은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아주 많은 상상력을 빼앗아 간다. 이것은 당연히 저것이고 그것은 변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가지게 한다. 그러한 지식을 얻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고 다음번에 두개의 점을 다르게 이으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그들을 비웃는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어리석음을 배우기도 한다. 상상력이 제약당하고 눈이 먼다.  

 

나는 설명이 점과 점을 잇는 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비약을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 설명들이 계속 해서 이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설사 하나 하나의 작은 설명들, 작은 비약들이 너무나 확실해 보여도 그걸로 건물을 쌓아 올라가듯이 계속해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긴 설명, 혹은 하나의 학문체계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그 기반을 아주 튼튼하게 만들려고 한다. 점과 점을 아주 튼튼히 잇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대충 이해했다면 나중에 가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때로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이건 뻔한 건데 왜 저자는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놓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대충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 처음부분을 읽으면 왜 그렇게 불필요하게 자세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집어넣었는지가 좀더 이해된다. 이건 당연한거 아냐? 뭘 이렇게 길게 설명한거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당신이 점과 점을 너무 쉽게 이어서 그렇다.

 

이제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만든 진짜 질문을 던지고 이 글을 정리해 보자. 문제는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읽기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꽤나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우리가 실패해야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다 망했다,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다시 시작을 안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책을 다시 읽는 것이다. 사업의 기본을 다시 점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었던 점들을 다시 점검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어쩌면 인간은 돈을 주면 움직이는 기계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망했을지도 모른다. 사업이 그런 걸로 망하고 다시 시작하면 이제야 당신은 그렇게 이은 점과 점은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에 사업이 그럭저럭 굴러가면 당신은 말단의 문제에 집중하는데 바뻐서 기본적인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못한다. 엄두가 안난다. 건물을 이미 백층까지 올렸는데 2층에 문제가 있으니 다 허물고 다시 짓자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그렇다. 실제로 건물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래 2층을 그렇게 지으면 안되지 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나태가 회복불능의 피해를 입히는 경우에도 말이다. 실제로는 실패하고서도 그 실패의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처음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당신의 정신이나 지식체계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컷다. 그러면서 얼마나 허술하게 점과 점을 이어왔는가. 얼마나 많은 것이 편견인데도 그냥 삼켜버렸는가. 소위 당신의 가치관이라는 것은 얼마나 잡동사니가 가득 찬 쓰레기통인가.

 

한국에는 사람이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부모가 되는 것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것과 연관하여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을 안하면 어른이 안된다거나 결혼만 하면 훌룡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주 많은 교육적 효과가 있다. 왜냐면 아이를 키우는 어른은 아이에게 뭐라도 하나 가르치려고 하면서 인생을 복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우 힘든 도전이지만 당신으로 하여금 인생의 첫페이지로 돌아가 보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

 

물론 삶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복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랬을 때 당신은 뜻밖의 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왜 항상 우울하고 화가 나있는지, 당신이 왜 그렇게 성공과 돈에 미쳐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거기 있을지 모른다. 알고보면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누군가를 만나서 포옹을 한번 하는 것이 당신 인생의 돌파구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알고보면 당신은 당신을 이용해 먹는 악당을 친구로 생각하고 당신에게 호의적인 친구를 조롱하고 비웃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책을 끝내고 싶어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고 싶어한다. 이렇게 읽다가는 책의 앞부분만 읽다가 시간이 끝나겠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실제로 책의 맨앞으로 돌아가 본 사람들은 그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의 맨앞에 갔다가 온 사람들의 눈에는 계속 성공하고 있고 그럭저럭 버티고 있기 때문에 책의 맨 앞, 인생의 맨 앞에 다시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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