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머리를 좋게하는 몇가지 방법

by 격암(강국진) 2015. 8. 5.

15.8.5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준이 애매한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머리가 둔해지고 답답해지는게 언제인지는 안다. 나도 종종 그렇게 느끼니까. 그럴때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효과가 있었던 몇가지 방법들이 있었다. 

 

1. 걷는다.

걷는 것은 두뇌에 참 좋다. 뛰는 것처럼 육체적으로 격렬한 운동도 물론 나름 좋은 효과가 있겠지만 걷는 것만큼은 아닌 것같다. 걷는 것은 일단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대부분 무의식중에 이뤄진다. 그러면서 산책길에서 본 것과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산책은 기본적으로 다 좋지만 아무래도 쾌적한 공기와 조용함이 없고는 효과가 거의 없다. 공기가 답답하고 소음이 있으면 몸에도 안좋겠지만 머릿속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그러므로 차도 옆길을 걷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니 매연때문에 몸에 해롭다.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스팔트길보다는 숲길이 좋다. 초록이 무엇보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숲길은 소음이 작아서 좋다. 그러나 머리를 위한 것이라면 집에서 먼 것도 좋지 않다. 오며 가며 차를 타거나 운전하는 것은 나름의 긴장감을 조성해서 모처럼 산책으로 만들어 낸 효과를 크게 줄인다. 집밖을 나가서 그다지 힘들지 않게 걷는 산책, 이정도가 좋은 것같다. 물론 주변환경상 이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최적의 상황에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어디에 있건 정말 더운 여름에는 아무래도 걷기가 도움이 안된다. 쓰러질 것 같은데 무슨 머리가 좋아지겠는가. 

 

그래도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걷는 것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걸 염두에 두면 동네를 탐구하고 연구해서 산책길을 개발하게 되고 애초에 집을 구할 때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너무 빨리 누가 그런 좋은 산책길이 있는 곳에 살고 싶지 않겠어 나도 그걸 원하지만 환경이 안되는걸 하고 말하며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결코 산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장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조금씩  둔감하고 미친 상태로 몰아가는 것일 수 있다. 숲길을 걷고 조용한 중소도시의 골목을 걷고 나서 돌아보면 도대체 지난주에는 내가 왜 그런 이상한 행동들을 했을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인간은 걸어야 살 수가 있다. 두뇌라는게 애초에 인간이 오래 걷도록 하기 위해 발달했다는 주장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걷는다는 것을 너무 사소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영어로 혼자 말한다. 

 

난 어학에 참 소질이 없다. 원래 단어 외우기 같은 걸 워낙 못한다. 그래도 어찌저찌 영어공부를 해서 논문도 쓰고 영어로만 대화하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 화이트헤드는 교육에 있어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는데 나는 영어책을 읽고 영어로 말하는 것이 내 머리를 자극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말은 혼잣말이 좋다. 

 

먼저 말해둘 것은 이 세상에는 영어교육이 너무 과하다라는 말이 많다는 것을 나도 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것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영어강의에 일반적으로 찬동하지 않으며 초등학교나 유치원때부터 영어교육시키는것에 찬동하지 않는다. 

 

찬동하지 않는 이유의 핵심은 그 교육이란게 영어를 배우는 재미를 다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영어는 어렵다. 그렇지만 외국어를 하나 안다는 것은 나같이 어학에 소질없는 사람도 결국 하게 될 만큼의 유용성과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역시 학생들에게 영어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겠나고? 스스로 쓸모를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를 못한다고 세상을 못사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억지로 시키는 영어교육이 오히려 영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없애버린다. 

 

나는 이따금 영어원서책을 읽는다. 전공서적만 읽는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즈를 구독하고 있으니까 기사를 읽을 때도 있다. 또 이따금은 철학책이나 소설책도 원서로 읽는다. 해리포터나 판타지 소설 추리소설도 얼마간 원서로 읽었다. 읽었던 책도 다시 읽는다. 그리고 산책길에, 사람이 옆에 별로 없을 때에는 영어로 스스로하고 이야기를 하는 일이 있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 좋지만 혼잣말이 더 좋은 것같다. 대화의 경우에는 대화상대에 따라 대화내용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 될 수 밖에 없다. 

 

화이트헤드가 외국어 공부를 강조한 것은 사람은 서로 다른 개념들로 이뤄진 다른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비로서 제대로 철학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농촌에 사는 사람이 도시에 가고 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촌에 가봄으로써 비로소 농촌이든 도시든 그게 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는 식이랄까. 영어책을 읽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머리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3. 수학문제를 푼다.

 

나는 전공이 이론물리였고 따라서 이런 저런 계산을 하는 일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전처럼 그렇게 계산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고 특히 다양한 계산을 하는게 아니라 하던 것만 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게 뭐가 되건 계산을  하고 수학을 공부하는 일은 머리를 좋게 만든다. 나는 이따금 학부때 배웠던 복소함수론이나 수리물리책을 꺼내서 풀거나 대학원시절에 했던 계산을 반복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상당히 두뇌가 체조를 한 것처럼 좋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집에 칠판이 있는 것이 좋다. 기분나면 아무 거나 써보고 풀어볼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나는 수학이 싫어요라고 하면서 일반언어로 된 책만 읽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아마 나와는 체질이 다른가 보다. 일반언어로 된 것은 아무래도 수학처럼 개념이 분명하지가 않다. 꼭 모든게 분명해야 하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쓰는 것만 계속하면 나는 때로 무섭다. 뭔가가 둔해지고 망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요즘 우리 아이들의 수학공부를 봐주고 있는데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대로 기쁘게 하고 있다. 중고교의 수학문제라도 풀어보는 일이 없다면 나는 훨씬 더 정신상태가 안좋았을 것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4.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방법은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대화 속에서 읽은 책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적어도 처음에는 아주 길고 구체적인 생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 글의 경우에도 덥고 무더운 여름에 편한 것만 찾다보면 바보가 되겠어라는 생각에서 정신을 맑게 하는 기술에 뭐가 있더라라는 생각을 하게된 결과다. 

 

그런 생각을 글로 적는 것에는 적어도 두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글로 적으니까 그때 잠깐 생각했던 것들을 좀 더 자세히 일관성있게 써볼 수가 있다. 그렇게하면 어떤 생각들은 뭐야 내 착각이로군, 이건 말도 안돼라고 하거나 참 지루한 생각이로군하고 판명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글로 쓰면서 상당부분이 더 만들어 진다. 영감은 결정을 만드는 씨앗일뿐 글로 써야 몸통이 만들어 진다. 그렇게 하면서 머리가 맑아진다. 

 

또하나는 이따금씩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는 버릇을 들이면 이따금씩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지 않으면 생각은 잊혀진다. 불과 1분후에는 그게 무슨 생각이었는지 생각이 영영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놓치고 놓치는 것이 버릇이 되면 이제 생각따위는 하지 않게 된다. 글을 쓰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커피숍에 가서 아 여기는 참 향이 좋고 서비스가 좋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그게 무슨 차이때문일까를 다시 생각하고 나름 기록해 둘만하다싶으면 메모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을 글로 만들기 때문에 생각자체가 소중하게 다뤄지는 것이다. 

 

더운 여름이다. 나도 이 글 한편을 써서 머릿속을 청소한 것같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