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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백종원과 진보 정신

by 격암(강국진) 2015. 7. 6.

15.7.6

요즘 음식에 대한 방송이 열풍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것을 좋게 본다. 언젠가는 이런 것들이 지나친 때가 오겠고 식상해 지는 때가 오겠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방송열풍이란 무엇인가. 이왕 먹는거 좀 더 잘 먹자는 이야기다. 좀 다른 거, 좀 더 맛있는 걸 먹자는 이야기다. 음식이란게 그냥 고추가루 팍 팍 치면 다 그 맛이 그 맛이라고 생각하거나 삽겹살에 소주면 최고지 뭘 어떻게 굽는다던가 뭘 마시는가까지 따질 필요있는가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방송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고민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이런 고민이 좀 더 재미있게 살자는 고민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재미있게 사는게 좋다. 재미있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얼굴 찌푸리며 불행하게 살거 뭐있는가. 뭐가 그리 다 대단하고 절대적이라고 말이다. 힘든 일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이고 재미없으면 그만둘 일이다.

 

이런 생각은 언뜻 듣기에 무책임하고 가벼운 것같지만 실은 재미있게 즐겁게를 잊은 사람들만큼 위험한 사람들도 없다. 목표와 의미없이는 살 수가 없는 법이다. 재미있게 즐겁게를 잊은 사람들은 어떤 선이나 악 혹은 어떤 공포를 극단적으로 절대화해서 모든 것을 그것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전쟁, 출세, 돈, 체면같은거 말이다. 그게 그들이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서 철없이 뭘 재미있게 살려고 해 지금이 어느때인데라고 말하면서 본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을 재미없게 살게 하고 때로 위태롭게 살게까지 한다. 

 

재미있는거 좋잖은가. 깻잎모히토 같은 것을 검색어 순위에서 봤다. 아직 해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비싼 모히토 만들기 보다 소주에 설탕넣고 레몬과 깻잎넣어 라임에 럼을 넣어 만든 모히토 맛이 난다면 신나는 일이 아닌가. 세상에는 재미있게 사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심할 때는 남의 재미를 깨는 것을 무슨 나라를 구하는 행동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세상을 재미없게 한다.  

 

요즘 시류가 만든 스타가 백종원이다. 사람들은 그의 편안함과 단순함에 열광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런 점 때문에 그를 비판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좀 더 생각있고 깊이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려면 형식을 갖추고 생각을 깊이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확실히 생각과 형식이란 가치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한가지가 빠져있다. 행동과 체험이 없으면 생각과 형식이란 무의미하다. 

 

외국에서 10여년을 살았던 나에게 적어도 한국은 음식에 있어서는 모순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뭐냐면 전통적인 음식문화의 저력은 매우 풍부한 것같은데 음식을 즐긴다는 차원으로 가기에는 음식이 소득수준에 비해 비싸다. 고기도 채소도 과일도 한국은 선진국보다 오히려 더 비싼 느낌이다. 일단 재료가 비싸니까 음식도 비싼데 소득은 선진국보다 낮으니까 맛있는 음식이란게 대중적이 되기 힘들다. 물론 싸고 맛있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맛을 내는데 돈이 전혀 안들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 아무래도 돈을 들이면 맛있는거 만들기가 쉽다.

 

그래도 한국음식문화에는 저력이 있다. 내가 꼭 한국사람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한국음식은 깊이가 있다. 그 깊이는 오랜간 김치나 간장, 된장을 만들어 온 긴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찌게 요리도 그렇다. 뭐랄까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갖은 양념이라는 말이나 다양한 나물요리가 외국에서는 당연한게 아니다. 한국사람은 맛을 복합적으로 내는 능력이 있다. 요즘 외국에서도 인기라는 양념통닭같은게 탄생하는데는 이런 면이 기여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찌게 요리의 발달을 먹을게 없어서 불려서 먹다보니 나온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그건 그저 자학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있고 없고는 어디에다가 비교하는가의 문제다. 현대의 풍요로움과 과거를 비교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음식문화를 포함한 문화의 발달이 가난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그런 식이라면 어디 밀림에서 가난하게 사는 토인들이 제일 음식문화가 발달해야 할 것이다. 가난하고 먹을게 없을 수록 요리가 발달한다는 말인가? 반대로 풍요가 있으니 인구가 늘고 문화가 발달한다는 것이 더 그럴 듯할 것이다. 한국인은 본래 먹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좀 더 잘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풍요로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저력이 있는데도 음식을 즐기며 살아가기에 한국 상황이 좋지가 못했다. 부분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재미없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이 세금같은 걸로 모든 것을 비싸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을 재미없는데 쓴다. 한국사람이 커피숍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것에는 이런 슬픈 배경이 있다. 한국 사람도 되도록 친구는 식사하면서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그게 너무 돈이 드니까 누굴 만나려면 커피숍밖에 없다 혹은 없었다.

 

그게 겨우 좀 바뀐 것이다. 그래봐야 아직도 한국 사람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뭐 맛있는거 좀 먹으려면 우울해 진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과 생각에 집착하면 더 먹을 것이 없다. 먹을 것이 없으면 체험이고 행동이고가 없다. 그냥 집에서 김치 먹고 밥먹는 것만 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 한국사람도 좀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하는것이다. 좋은 일이다. 그렇게 해서 경제가 살고 다른 정치 사회적 문제도 좀 해결되면 좀 더 윤리적으로 먹고 좀 더 철학적으로 먹는 것도 더 시스템적으로 먹는 것도 더 많이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재미있게 먹는 것의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진보를 금욕과 비슷하게 생각한다어떤 재미없는 명분을 위한 희생을 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재미가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나면 세상을 다양하게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즐거운 것이 진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우리는 배부른 돼지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러나 양분도 물도 햇볕도 없다면 씨앗은 거목으로 자라날  없다다양한 체험이 만들어 내는 삶의 다양성이 진짜 사회적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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