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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재미있게 살기

by 격암(강국진) 2015. 3. 30.

2015.3.30

나는 딸아이에게 항상 재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는 것도 재미있게 살기 위한 것이니 그것을 잊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을 보면 우리는 재미로 산다라던가 재미를 위해 산다라는 말을 오히려 금기시 하는 교육을 자주 받는 것같다.

 

학교는 어떤 미리 정해지고 고정된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 나가야 할 진도가 있고, 학사일정도 있으며 학생들이 공부해온 전통이 있다. 그리고 그 내용도 따지고 보면 종종 희생과 인내를 말하는 일이 많다. 학교와 대부분의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런 저런 해야할 일을 말한다. 그것은 돈을 번다던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다던가 정의를 실현하고 진리를 발견한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그 일들은 그냥 재미로 하는 일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숭고한 가치를 가진 일이기에 고통스럽고 지루해도 해내야 하는 일로 말해진다. 결국 삶은 고통스럽고 지루하다고 가르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주장에는 적어도 두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로 논리적 문제다. 사실 어떤 가치가 절대적이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시야의 한계를 정했기 때문이다. 교실안이라던가 우리집이라던가 취직이라던가 한국이라던가 하는 어떤 테두리를 정하고 그 안에서만 세상을 보니까 어떤 가치가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절대적 테두리 따위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런 것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되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 눈에 보이는 절대의 테두리는 사실 절대가 아니다. 게다가 내 눈에 뭔가 보인다고 해서 그게 안보이는 사람을 윽박지르는 것은 마치 어차피 너는 커서 어른이 될거라면서 갓난 아이에게 어른 옷을 사주고 왜 옷에 몸을 못맞추냐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해진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물론 모든 것이 상대적이므로 어떤 가치를 숭고한 것으로 생각하고 진지하게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쌓여져 있고 안정화되어져 있는 것들은 소중하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두번째 문제다. 재미를 빼고 어떤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가르치는 방식의 두번째문제는 오늘날 정보의 소통이 너무 빠르고 변화가 너무 빨라서 우리가 어떤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적어도 전의 시대보다는 앞에서 말한 그 테두리는 너무 빨리 위협받는다. 그래서 그것을 과도하게 지키려고 더 강력하게 그 테두리 바깥으로는 가지 말라고 저항하면 이번에는 세상에 적응하고 살 수가 없다. 자기를 지키려고 하다가 온 세상은 악이라고 외치는 광신도처럼 된다. 다 지키려고 하다가 다 잃어버린다. 

 

인간의 생각도 인간 자체도 유한하다. 그러니 사실 무한의 경지에서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무조건 모든 것이 의미없다는 것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진공속을 나르고 있는 둥근 구체라는 것을 안지 오래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구는 단단하게 그리고 평평하게 우리 발밑에 있다는 감성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것에 대부분의 경우 큰 문제가 없다. 그것이 종교에 대한 것이건 가족이나 국가에 대한 것이건 어느 정도 깊게 믿고 재미가 아니라 의무로 숭고한 가치로 외워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이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 힘든 시대라는 것, 위험한 시대라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스스로에게 어딘가에 선을 긋고 이건 원래 이런 것이다. 이건 원래 옳다라는 식으로 가르치면 그리고 그것을 수긍하게 되면 언젠가 그것이 깨어지고 흔들릴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다. 반공 알레르기 같은 게 좋은 예중의 하나다. 우리 나라 최고 교역국가가 중국이고 중국은 공산국가다. 지금 시대에 공산당은 싫어요라는 문장은 원래 옳다라는 식으로만 자기를 가둔 사람들은 세상을 사는 원칙에 대한 내부적 모순들때문에 말도안되는 극단적 행동을 하기 쉽다. 그들은 흔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주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종북이라는 말 같은 것을 남발한다.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둬버리고 그래서 비정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재미를 위해 살라라고 하는 말을 금기시 하는 이유는 그것은 발밑을 허무는 일, 안락한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니면 거의 모든 것이 예로부터 정리되어져 있는 그것을 떠나는 일은 마치 문명을 뒤로 하고 밀림에 가서 혼자 불피우는 법부터 재발견해 보겠다는 말처럼 허황된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실제로 허황되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 발밑에 있던 기반이나 안락해 보이는 집이 자꾸 무너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안전하다라는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것은 혁명이 일상이 된 시대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는 고사하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는 방식도 그대로 복사해서는 살 수 없다. 무너지는 집에 그래도 있어보겠다고 자꾸 수리만 해대다 보면 나중에는 탈출구도 없어지고 집에 몸이 끼어서 탈출이 안되게 될 수 있다. 집밖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길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시대인 것이다. 

 

길을 떠나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은 결국 재미라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재미있다는 말은 논리적 설명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것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숭고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이미 집이 다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어떤 것이 재미있다는 것은 그런 말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단지 느낀다는 것이다. 이거 좋은데하고 말이다. 

 

내가 느끼는 이거 좋은데라는 그 느낌을 무시한다면 집떠나 어디로 갈 것인가. 집이 무조건 좋다고 하는 사람들 말을 들어봐야 경쟁률은 무한대로 높아지고 빚은 왕창 늘어나고 건강은 무너지고 배우는 것도 없고 가정이 무너지고 아이들은 엉망이 되는 일이 벌어지니 정든 정신의 집을 떠나야 하는데 그러면 뭐에 의지할 것인가. 재미밖에 없다. 나밖에 없다. 

 

그러나 물론 재미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지만 공포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대로 허공에 몸을 던지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런 면도 있다. 그 어두운 면을 줄이려면 자기와 대화를 하는데 성실해야 하고, 다음번에 쉴 수 있는 장소까지 갈 수 있는 체력를 길러야 한다. 최고의 준비를 해도 모험은 실패로 끝날 수 있기에 모험이다. 그러나 준비가 없으면 모험은 자살이 된다. 도피를 재미와 같은 거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영어가 싫어서 이과를 택하고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택하는 것은 재미를 위해 사는게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인문학을 찾는 것은 기존의 것을 초극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회사밖에 모르는 사람이 퇴직을 하면 돈도 돈이지만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가정밖에 모르던 사람이 가정이 깨어져도 그렇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길을 떠날 수 있으니 사람들은 인문학을 찾는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거기서 답을 제대로 찾는 것은 아닌 것같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더 낡은 집을 찾는 것같아 보인다. 찾아야 할 것은 우선 자기 자신인데 더 심한 정신적 노예가 되려고 발버둥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한판의 놀이일지 모른다. 아이들은 원래는 부자집 아이도 있고 가난뱅이 아이도 있고 높은 지위를 가진 집안의 아이도 있으며 범죄자의 아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길에 나와서 하루 재미있게 놀았으면 원래가 뭐였는가는 따져서 뭐하겠는가. 한 세상 재미있게 살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그렇게 하는데 실패했으면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뭐가 재미있게 사는 것인가는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재미따위란 철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가 않다. 오히려 이제는 재미라는 단어를 꼭 붙잡고 그걸 원칙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재미없는 날에도 재미있게 살자라고 외치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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