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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타임캡슐에 대한 짧은 생각

by 격암(강국진) 2015. 8. 9.

15.8.9

드라마를 보다보니 타임캡슐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보니 나도 어릴적 이따금 이것저것을 파묻었던 것도 같은데 너무 오래되었고 별로 진지하게 하지 않아서 인지 제대로 기억나지가 않는다. 그러나 연초에는 타임캡슐에 해당하는 것을 열어본 적이 있다. 그건 바로 맡겨둔 짐이었다. 나는 1999년에 이스라엘에 출국했었는데 그때는 한 2-3년이면 한국에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정리할 수 있는 만큼은 정리했지만 남은 짐들, 버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짐들은 모아다가 처가의 2층에 올려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16년이 지나서 그걸 올해 다시 열었다.

 

16년전에는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전공책들과 그릇들, 스탠드, 음악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들등 다양했다. 나는 많은 책들을 버렸지만 파인만렉쳐스온 피직스 같은 책은 지금 우리집 한쪽에 진열되어 있다. 파인만은 유명한 물리학자로 1988년에 죽었다. 그때 물리학과의 교수님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교수님들도 그 이후 여러가지 길들을 걸었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후일 내 결혼식 주례를 서신 분도 있으며 사업을 하고 계신 분도 있고 뜻밖에 교회일에 전념하고 계신 분도 있다.

 

16년이나 된 고물 스탠드는 켜보니 잘 작동한다. 멋진 3파장 형광등이라고 자랑하는 선전문구가 붙어 있는 스탠드다. 스램프를 사러가보니 5파장 형광등이 나온지 오래고 3파장 형광등은 재고 처리 중이다. 역시 시간이 지난 것이다. 오래된 상자에는 16년된 운동화도 비틀어진 형태로 들어있었다. 신을 수가 없다.

 

당시에는 누굴 줘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잘 보관해 놓은 그릇들이며 컵들이 한결같이 촌스러운 것에 웃었다. 유행이 바뀌기도 한 것이겠지만 지구를 한바퀴 돌고 나서 그것들을 보는 내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헐값에도 그것들보다 훨씬 더 예쁘고 세련된 것들이 많다. 그걸 버리기는 가슴아프고 쓰기는 곤란해서 아내는 그것들을 대부분 벽장에 집어 넣어 버렸다. 또다시 타임캡슐이 된 것이다.

 

타임캡슐은 미래의 자기에게 쓰는 편지가 들어가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과거의 물건이 오랜만에 쏟아지면 과거의 나로부터 메세지를 받게 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가 여기저기에 써온 글들도 내가 전에 만났던 사람도 일종의 타임캡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전 20년전에 쓴 글이 어딘가에 남아있다가 튀어나오면 그 글은 내가 그때 뭘 느꼈는지 뭘 원했는지를 말해주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포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몇개인가의 인터넷 단편소설을 쓴 기억이 있다. 그 소설들은 한결같이 찌질한 사랑에 대한 것이었는데 젊은이의 사랑은 본래 찌질한 것이므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 소설들을 쓰게 된 것은 한편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때문이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누구나 젊은 시절 겪게 되는 잘 되지 않은 연애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담담히 누구나 겪게 되는 잘되지 않은 연애라고 쓰고 있지만 물론 젊은 날의 나에게는 훨씬 더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내가 그것을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몇개의 꿈이 있었던 것같다. 하나는 세상이 왜 이런가를 알려주는 이치를 알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물리학이며 인공지능이며 뇌과학같은 분야를 쫒아다니며 공부하고 논문을 쓰고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 길들을 선택할 때 나는 망설이거나 후회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 거의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더 쉬운 길에 대해 듣고는 했던 것같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하는 것보다는 좀더 돈이 되는 전공을 택할 수도 있었고 물리학을 하더라도 듣기에 재미있는 것을 하기 보다는 좀 더 취업이 잘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체물리학 같은 것을 하는 편이 좋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또하나의 꿈은 멋진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글을 통해 세상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나는 이게 이렇게 생각되는데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같다.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된다. 뭐 이런 글이 많았다. 언뜻 생각하면 복잡하고 번거롭게 글을 쓰는 것보다 대화를 하는 쪽이 더 간단한 것같지만 대화와 글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대화로는 사실 진정한 의사소통을 하기가 힘들다. 사람들간의 차이는 대부분 미묘하고 잘 보이지 않는 것들, 통상 우리가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것들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추운 곳에서 살았던 사람은 두꺼운 옷을 입는게 원래 그런 것이고 반대로 항상 더운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은 얇은 옷을 입는게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모른 채 서로의 옷차림을 보면 굉장히 기괴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춥고 덥다는 것은 간단히 지적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뭘 느끼고 살았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기 힘들다. 우리는 그래서 그냥 각자의 취향이 다른 것이고, 나는 그냥 이런 학문을 좋아하고 나는 그냥 이런 정치가들을 지지하며 나는 그냥 이런 이성에게 끌린다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지의 벽은 견고하다.

 

그러나 자신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정도의 어떤 심층적인 부분을 대화의 주제로 올리지 않으면, 그 무지의 벽 뒤쪽을 지적할 수 없다면, 대화는 별로 의미가 없다.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글에는 분석이 등장한다. 물론 그것도 한계없이 행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준비없이 만나서 몇마디의 말을 주고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계속했을 것이다. 이유가 뭐건 참 많이도 썼다.

 

나의 마지막 꿈은 멋진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편하고 아늑한 곳, 맛있는 음식이 있고 내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그런 곳 말이다. 그건 하나의 방이나 집일 수도 하나의 가족이나 좀 더 큰 공동체 일수도 있다. 나는 젊었을 적에는 몇 개인가의 연구 주제에 빠져서 시간을 온통 썼다. 그리고 최근 10년동안에는 글을 좀 더 많이 썼으며 최근에는 이 보금자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것같다.

 

과거의 내가 나는 이러저러한 것이 꿈이라고 적어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만 나면 골프를 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꿈은 골프를 잘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과거의 내가 남겨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의 꿈은 이러저러한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타임캡슐은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한꺼번에 보게 해주는 기회를 준다.

 

타임캡슐에는 때로 과학자가 되었을 철수에게라던가 지희와 결혼했을 만수에게 같은 편지가 들어간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의식적으로 꿈꿨던 대로 살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할 필요는 별로 없다. 어린이의 꿈이란 정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유치하고 피상적인 것이다.

 

나의 꿈은 이것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 특히 그것을 자신과 세상을 돌아볼 기회가 아직 없었던 어린 시절에 그렇게 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지만 틀린 것이 되고 오만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자기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꿈을 쓰라니까 남들이 하는 식으로 대단한 걸 적으려고 했지만 실은 진짜 꿈은 그 옆집의 소녀일지도 모른다. 겨우 단팥빵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시간을 두고 자기를 관찰하면 우리는 이따금, 그것도 겨우 겨우, 아 이 사람은 결국 이걸 원하는 사람이구만 하고 알게 될 뿐이다. 내 꿈이 시장이 되는 것이라던가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가는 그리 확실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너무 많이 휘두르게 해서는 안된다. 과거의 나는 지금 보다 더 무지했으니까. 과거의 나는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는 철부지였으니까 현재의 나를 좀 봐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타임캡슐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이런 저런 신경써야할 일들이 복잡해 져서 그것들을 다시 열어보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음식을 만들려고 소금을 사러 장에 갔는데 거기서 구경에 정신이 팔려서 집에 돌아가지 않는 그런 아이가 있을 수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이란 그런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때로 과거의 물건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람도 타임캡슐이 된다. 얼마전에는 페이스북으로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알려온 학창시절의 선배가 있었다. 물론 그 선배의 사연은 안타까운 것이지만 삶이란 이런 뜻밖의 일들이 있어서 흥미로운 것이다. 어떤 타임캡슐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세상은 그래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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