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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우리가 한가함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들

by 격암(강국진) 2015. 8. 11.

15.8.11

한가함이란 창의력의 샘이다. 한가함이란 충전의 기회이고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한가한 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서둘러 뭔가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한가한 사람을 부러워 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스스로를 부질없이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에는 우선 우리의 고민들이 있다. 우리는 물론 모두 고민이 있고 문제가 있다. 그리고 대개 바쁘다. 그런 우리의 고민들에서 잠시 눈을 돌려서 남을 한번 보자. 우리 주변에 저런 사람은 참 고민이 없을 것같고 원하면 얼마든지 한가하게 살 것 같은데도 필요도 없는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 그런 사람들이 필요도 없는 고민때문에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고 진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아마도 얼마지나지 않아 그런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언뜻보면 진짜 고민인 것도 곰곰히 생각하면 고민할 것이 아닌 것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리가 없는 사람이 고민하면 다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재산이나 애인이나 자식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은 없어졌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 사람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에 눈을 돌리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 계속 없는 것을 생각 하는 것은 집착이고 시간의 낭비이며 자학에 불과하다. 인간인 이상 어느정도의 집착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것도 뒤집어 말하면 정도이상이 되면 어리석다는 이야기와 같다. 나만 손해 본 것 같고 나만 불행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도 이미 손실이 일어난 것에 집착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매몰비용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본전생각을 하면서 더 깊은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또 우리가 예측 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도 부질 없는 고민이다. 현명한 사람은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싸구려 이론이나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 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설명되어졌다고 굳게 믿는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여러가지 관습을 만들고, 여러가지 일들에 바빠진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자식 잘되게 하겠다고 굿하는데 바쁘고 로또 복권은 길일에 빨간 양말을 신고 하면 된다면서 길일을 찾고 빨간양말 찾는데 바쁜 것과 비슷하다. 그들은 열심히 무당을 부르고 굿준비를 하거나 길일을 찾고 빨간양말을 찾는데 바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부질없이 바쁘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남들을 그렇게 보는데 남들은 혹시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남들은 나야 말로 고민거리가 있을 수 없는 사람이며 아주 한가하게 살 수 있는데도 이상한 고민거리에 빠져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진짜는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바뻐야만 하는 사람이고 바쁠 가치가 있는 것때문에 바쁜 사람일까? 나는 정말 진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평생 바뻤지만 소용도 없는 부적을 사느라 바뻤다면 그렇게 바뻤던 인생도 진짜 인생일까? 평생 한가하게 살았지만 언젠가 한번 마음에 드는 여행 한 번 다녀온 사람이 더 내용있는 인생을 산거 아닐까?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에는 중독도 있다. 우리는 한가한 것을 이기지 못해서 그 시간을 뭔가로 채우고 그것에 중독된다. 나는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고 게임이나 티비에 빠지고 예쁜 옷과 차를 사고 출세를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싸움이나 전쟁에 빠지는 것에 이르기 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그 자체로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할만하며 때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그것에 중독되는 것이다. 더 이상 그런 행동이 요구되지 않고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데도 다만 중독되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한가함을 이기지 못해서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 된다. 한가함을 이기지 못해서 술을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게임이나 티비에 빠지고 예쁜 옷과 차를 사고 출세를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싸움이나 전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가한 사람이 부럽다면서 자신의 한가함을 쓰레기통에 쳐박는 것보다도 못하다. 비싼 비용을 물어가면서 자신의 한가함을 처분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음주면 시험인데도 게임에 빠져있거나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친구들과 모여서 웅성거리는 학생들이 많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첫번째 이유는 즐거움이 아니라 반대로 그저 한가하게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한가함을 뭔가로 채워야 하는데 일을 할만큼 해도 한가함은 많이 남는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휴식과 한가함의 시간으로 남겨둘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모든 한가함을 게임이나 친구와의 시간으로 채우고 중독으로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다. 꼭 재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제 그것이 재미가 없어도 그렇게 한다. 중독된 것에서 떨어지면 불안하니까 불안감이 없어지는 것이 좋을 뿐이다.

 

이것이 학생의 문제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은 따분하다. 아니면 따분하다는 이유로 저지른 일때문에 바쁘다. 따분한 것을 이길 수가 없어서 자신의 코를 꿰이게 만드는 일에 끼어들고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져서 소원대로 따분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가한 것을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한가한 것을 이기는 법일지 모른다. 게으른 사람이 되는 법일지 모른다.

 

다만 게으르다고 해도 그것은 뭔가에 중독되어 그 한가함을 서둘러 채우는 게으름이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으로 남아서 뭔가가 자기에게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게으름이다. 이 게으름에 가장 가까운 것은 산보나 참선일 것이다. 천천히 집을 청소하는 것일수도 있고 저녁준비를 하는 것일수도 있다. 독서가 게으름일수도 있다.

 

뭔가에 중독된 것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그런 행동중에 자기의 느낌, 자기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있다. 똑같은 것을, 똑같은 수만큼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중독이냐 아니냐는 달라진다. 쇼핑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중독 행동일 수도 있다. 모여서 누군가의 험담을 하거나 집이나 차같은 것을 비교하는 것도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중독 일 수도 있다.

 

1930년생인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2004년에 감독 제작 배우까지 하면서 밀러언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수상식을 휩쓸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감탄한 것은 74세의 노인이 가지는 감수성이었다. 그 영화는 절대 사는게 다 그렇지 뭐라고 하면서 둔감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이스트우드는 나이도 나이려니와 편하게 살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데 제작까지 해가면서 이런 영화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그가 일중독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스트우드야 말로 한가한 사람으로 남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독과 걱정에 자기를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 정말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작품을 만들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편안한 자기 자리를 두고 굳이 골치거리와 진짜 걱정으로 가득한 그 길을 걸어서 그런 작품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걱정하려고 하면 걱정할 것은 많다. 나이가 들면 빠져들 중독도 더 많다. 그런 것을 뿌리치고 한가한 사람으로 남기가 더 힘들다. 위대한 작품은 위대한 한가함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위대한 작품을 못만들어도, 아카데미상을 받거나 1등을 하거나 위대한 기업가나 과학자가 못되어도 한가한 것은 자체로 좋은 것이다모두가 한가한게 좋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로 한가하게 남을 있는 사람은 드물다한가하게 행복할 있는 사람은 드물다걱정과 중독에서 벗어나질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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