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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관찰자의 편견

by 격암(강국진) 2017. 11. 14.

17.11.14

아름다운 아가씨들은 세상을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모두 다 다정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자신이 약간의 특별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못생긴 여자들이 덜 친절한 대접을 받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나' 특별한 대접을 자신이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들은 못생긴 사람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세상에는 흑인으로 분장하고 살아본 백인이라던가 다른 성으로 바꿔서 살아본 사람들이 나탄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태도 차이가 큰 것에 충격을 받는다. 

 

이런 관찰자의 입장이 만드는 편견을 관찰자의 편견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세상에는 이런 관찰자의 편견들이 아주 많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이 아주 붐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왜 버스나 지하철을 늘리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텅빈 버스나 지하철을 보지 못한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텅빈 버스나 지하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청이나 운영회사가 버스나 지하철의 사용 통계를 볼 때와 그걸 이용하는 일반인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볼 때는 체감이 달라지게 된다. 일반인들은 자신에 경험에 기초하여 손님이 거의 없는 모노레일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손님이 있는 것으로 과대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식당에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 대학의 강좌를 학생들이 얼마나 수강하는지, 사람들이 몇명의 친구를 가지고 살아가는지같은 질문들은 다 같은 문제를 가진다.  우리가 미국에 가면 어디에 갈까? 아무래도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큰 도시에 가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이 뉴욕의 맨하탄 같은 곳이라는 지극히 잘못된 선입견에 빠지게 되기 쉽다. 

 

이러한 관찰자의 편견은 오늘날에는 발달된 미디어에 의해서 더욱 증폭된다. 인스타 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보면 다른 사람들은 맛집이나 여행을 정말 자주 가는 것같고 친구가 정말 많은 것같다. 그런데 그걸 뒤집어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인스타 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거나 포스팅을 올릴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으로 페이스북으로 본 세상은 편견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편견은 우리가 대면접촉에 의해서 정보를 얻을 때보다 더 커진다. 왜냐면 새로운 미디어는 친구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의 차이를 더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팔로워가 수천명이나 수백만명에 이르는 트위터 계정이 있는가 하면 단 한명의 팔로워도 없이 외롭게 트윗을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다. 대면접촉으로 사람을 만난다면 아무래도 이렇게 까지 차이가 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걸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타고난 사람은 아픈 사람이 보는 세상을 겪지 못한다.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겪는 세상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은 대부분 그 앞에 '내가 보는 세상은' 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 특히 요즘에는 더 그렇다. 겸손은 언제나 필요했지만 요즘은 겸손이 더 필요하다. 

 

왜냐면 세상이 너무 커지고 복잡해 져서 그렇다. 21세기 한국에 아직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던가 부유한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가정에서 닭을 키우고 너구리를 잡아먹고 음식배급 스탬프를 받아서 먹고 사는 일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는 사실같은 것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디어에는 화려한 모습이 주로 나오니까 그렇다.  

 

소위 금수저들도 스스로가 고난에도 지지않고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행운아라는 것을 알지는 몰라도 얼마나 행운아인지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를 가진 사람은 그 행운을 과소평가하고 좋은 나라에 태어난 사람은 자기 나라의 장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쉽다. 그건 행운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에 변화가 없고 특정 계층의 사람과만 만나면서 있다면 관찰자의 편견이 만드는 문제는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네트웍의 시대다. 생각없는 말과 행동이 갑질이 되고 그래서 갑질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인생을 망하게 하는 경우도 우리는 가끔 본다. 세상에 대해 무지하게 살아도 안전한 시대가 아니다. 관찰자의 편견과 겸손에 대한 생각이 오늘날에는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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