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미국 일본 한국의 흔한 이야기 구조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랜만에 그걸 읽어보니 나는 한국의 흔한 이야기 구조가 바로 역사의 희생물로서의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3-40년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한민족은 한의 민족이다 즉 한많은 민족이라는 말이 정말 많았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나 씨받이 같은 영화가 좋은 예인데 한국 영화들은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계속 시대에 휩쓸리기만 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장년이상의 연배를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걸 보고 자랐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의 이야기 구조는 일본이나 미국과 여전히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한국인의 사고는 한마디로 말해 수동적이다. 다시 말해서 단계 단계를 거쳐 어딘가 외부의 누구나 어떤 물건에서 멈추는 일이 많은 것같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의 문제에서도 그 점은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비핵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라던가 북미회담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혹은 트럼프가 어떻게 반응할까 같은 이야기의 끝에 이르르면 그 다음은 생각하질 않는다.
비핵화는 뭘 위한 것인가? 비핵화는 수단인가 목표인가? 트럼프가 뭘 한다면 그는 왜 그렇게 할까? 문재인이 트럼프에게 잘 보여서? 비핵화를 보상하기 위해서?
지난 1년간의 북미회담과 남북회담들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한가지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남과 북이 가까워지면 미국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실 한반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미국으로서도 전쟁을 시작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지난 십수년동안 미국이 해온 것은 한마디로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어차피 오랜동안 경제제재를 당해왔으니 새삼 경제제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고 입으로 협박을 한다고 해도 진짜로 북한을 공습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미국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북한이 지금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 다만 최근 미국으로 바로 쏠 수 있는 핵미사일이 개발되자 이야기가 좀 변했을 뿐이다.
그런데 남과 북이 가까워지면 미국이 움직인다. 북한 인사들이 평창올림픽에 오니까 북미 대화가 이뤄지고 뒤집어진 북미정상회담 논의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니까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최근의 남북정상회담도 정확히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 점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냉전구도에서 만들어진 한반도 분단 구도가 진짜로 변할 조짐이 없으면 사실 미국이 북한에 크게 신경을 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해주는 것이다. 남과 북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냉전구도가 남과 북에 의해서 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힘의 균형의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미국이 서둘러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통일은 고사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이 주변국가를 움직이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돈을 퍼주거나 약속을 하거나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는 것으로 미국이 북한을 고립시키는 현재의 구도를 바꿀 이유가 있을까?
많은 신문방송에서 사람들은 그저 비핵화를 말한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포기했다고 하자. 그러고 나면 미국은 왜 북한을 시장경제속에 받아들여야 할까? 명분이 없어서?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수 있고 핵없이도 북한은 오랜간 고립되어 왔다. 사실 악당역할을 하는 북한이 미국과 일본에게는 아주 고마운 것이라는 것은 깊은 생각이 없어도 알수가 있다. 그런데 이제와서 왜 미국이 서둘러 북한의 위치를 바꿔야 하는가? 우리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답이 없으면 설사 비핵화가 된다고 해도 북한은 지금의 고립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검증절차니 인권이니 하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 시간은 무한정 끌 수 있다. 그러다보면 북한은 분명 또 무슨 책잡힐 일을 할 것이고 말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목표이지만 그것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것도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하고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다시 말해 극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깰 유일한 수단은 남과 북이 스스로 가까워지기로 결단하는데 있다. 그것 이외에 경제적 정치적 보상으로는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미온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북한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무기를 구매하고 있으며 미군 주둔에 대해서 비용을 대고 있는가. 분단된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이 훨씬 상대하기 좋은 상대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미국은 평화를 사랑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에 사심없이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접근한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남과 북이 스스로 가까워지기로 하면 뒤집어 진다. 다시 말해서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가들은 남과 북이 싸우기로 하면 그 구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노릴 것이고 자신들이 남과 북이 가까워지고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면 거꾸로 바뀌는 판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그 평화의 달성에 자신들이 기여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할 거라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가 북미회담을 남의 일 보듯이 평론하면서 잘될까라던가 미국이 북한의 바램을 들어줄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옳지 않은가. 정말 종전선언이나 북미수교가 비핵화에만 달린 일일까? 우리는 마땅히 비핵화나 북미회담에서 사고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뭘 할 수 있으며 주변의 국가들이 만족하는 구도란 어떤 것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요즘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냉전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 무역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 북한은 미국에게 중국을 압박할 카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드 설치에서 나아가 미국주둔에 이르기 까지 중국은 대륙과 이어진 한반도에서 미국의 입김이 세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거꾸로 하면 그런 구도야 말로 미국이 원하는 구도가 아닐 것인가. 통일한국에서는 미국이 대동강가에 주둔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가 러시아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일본은 미국의 종속외교이므로 미국이 북한의 고립을 풀겠다고 하면 다른 말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인데 중국은 북한을 잡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위치에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인데 그건 중국이 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보건 정치 문화적으로 보건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이지 중국이 아니다. 따라서 체재 보장만 된다면 북한은 당연히 미국에 붙는 것이 이득이다. 그리고 미국에 이득만 된다면 미국은 딱히 북한 체재를 위협할 나라가 아니다.
문재인대통령은 이미 이런 점을 생각해서 트럼프대통령에게 북한이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 밀실에서는 지금 내가 말한 중국견제라는 전략적 가치도 말했을 것이다. 공공장소에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중국의 보복을 이끌어낼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 내가 쓴 것이 세부사항에 있어서 그 자체로 옳은 것인가 아닌 가는 사실 두번째로 중요한 문제다.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한반도 평화를 주변국가들이 용인하고 원할 구도를 능동적으로 남과 북이 만들어 갈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면을 주도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정 필요하면 미국의 반대가 있어도 남과 북이 가까워졌다는 시위를 할 필요가 있다.
무급이라도 개성공단을 다시 운영하고 금강산관광을 해야 한다고 북한이 말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이라는 고리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을 막는 것도 비인도적인 행위라서 국제제재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나 중학생을 주고 받는 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축전을 벌이고 세계속에 남과 북이 실질적으로 이미 평화 축제중이라는 시위를 벌여 한다. 그래야 미국이 현실을 인정하고 움직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를 미국이 만들어 주는게 아니라 평화를 기정사실화시켜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이 방해를 안한다.
우리는 이런 방면으로 사고를 해야 할 것이다. 하려고 들면 전문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언론방송을 보면 지극히 수동적이고 방관자적인 입장에서만 말한다. 트럼프의 입에 한반도 평화가 달린 것처럼 말한다. 평화가 선물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는 비핵화나 미국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실 미국 시민들은 수동적인 한국인의 자세 이야기를 들으면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그들은 한반도의 분단과 무력대치가 온전히 그저 남과 북이 사이가 안 좋은거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를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조차 그걸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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