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썰전을 안본다. 그런데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잠깐 채널을 바꿔서 보게 되었고 다시 한번 왜 내가 썰전을 안보는 지를 확인하고 말았다. 분통이 터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동아대학의 박형준교수가 말하기를 부동산 가격을 잡는 것은 역시 공급이며 노태우 때 200만호를 공급했던 것이나 이명박때 뉴타운 건설을 해서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예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답답하다. 그 답답함의 바닥에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태도에 있다. 내가 말하는 아는 척한다라는 것은 어떤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지식이, 어떤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절대적 지식처럼 외워서 말한다. 박형준교수는 그것이 마치 자명한 사실인 것처럼 공급이 부동산가격을 잡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까? 공급과 수요의 관계는 모두가 아는 거라서? 그런데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라는 것은 미국 유럽 중국 일본 한국 어디든 다 참인가? 이런게 문제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고 하니까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증명되고 확실하게 관측된 법칙을 말하는 것같지만 이런 사회학에서 말하는 법칙이란 얇팍한 추정에 불과하다. 단지 그것이 이성적으로 책상앞에서 생각했을 때 그럴 듯해 보이니까 우리가 믿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공급과 수용의 법칙이란 당연히 그 바탕이 되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시장은 어느 나라도 자유시장이 아니다. 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영향을 받으며 한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외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다. 우리 나라 부패한것은 어제오늘 알려진 비밀이 아니며 더구나 이명박 노태우때는 말할 것도 없다. 시장논리로 우리나라를 재벌이 지배하나?
공급과 수용의 법칙같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노태우가 200만호를 건설하니까 아파트값이 떨어지더라, 실제로 이명박이 뉴타운 건설을 시작한 이후 아파트 값이 떨어지더라 이것은 사실이 아니냐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해도 그렇다. 시기적으로 사실이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세상에는 이런 식으로 주장하고 사고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사회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책과 결과의 관계를 검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거의 종교나 철학과 같다. 다시 말해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때 이 사회에서는 무수히 많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올해 여름은 참 더웠는데 여름이 더우면 아파트값이 상승한다는 것은 왜 법칙이 아닌가?
이런 주장이 지나친 것같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마도 정치 문화적으로 매우 안정된 국가에서 특정한 정책을 상당한 기간동안 예를 들어 20년 40년씩 계속 실사한다면 정책과 결과는 논리적 관계를 가질거라고. 그러면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는 어떤 정책에 대해서 그냥 원래 그런 건줄 알 것이다.
그러나 10년 단위로 봤을 때 한국처럼 정치가 요동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한국은 김대중 정부가 서기전에는 쿠데타로 정권잡은 사람들이 뒤흔드는 세상이었고 김대중 정권 이후로는 10년단위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게 같은 규칙이 오랜동안 작동하는 자유시장의 나라인가? 내가 섯부르게 공급과 수요의 법칙 운운하는 것에 분노가 치미는 이유는 아이엠에프나 이명박의 집권같은 것은 그냥 국가재난 사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에 정치 사회 법칙 따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거나 정말 양심도 없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나 새누리당이 경제를 말아먹으니까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동력이 없는 것을 부동산 정책의 성공으로 말하는 것은 도둑질당하는 것이 다이어트의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도둑놈의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비슷한 일을 다른 곳에서도 본다. 예를 들어 교육정책을 말하면서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이렇게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든 정책이 실효를 보려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20년 30년씩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하는가?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정권만 바뀌면 세상이 확확바뀌는데? 같은 정책도 누가 실시하는가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것으로 예측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걸 정책의 실패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옳은 가? FTA를 미국과 한다면 정말 노무현이 하건 이명박이 하건 박근혜가 하건 문재인이 하건 그 결과는 같나?
이 세상에는 100%는 없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분명 경제 사회 교육적 법칙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것은 참 약하다. 그러니 한국 사회가 어떤 문제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가 어떤 장점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나 정책의 결과로 보기 이전에 우리의 의지의 문제로 봐야 한다.
왜 아파트 투기가 잡히지 못할까? 정책때문에? 아니다. 결국 우리의 의지의 문제다. 다들 아파트 투기는 잡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파트 투기가 활활불타올랐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의지는 정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의지를 가졌다면 그 의지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정권이 바뀌어도 그걸 꺽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정책적 일관성이 없는 것도 우리가 진짜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중의 하나로 봐야 한다.
게다가 의지의 문제는 정책을 넘어서 문화와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투기 심리가 있다. 도박중독자들은 물론 카지노가 문을 닫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겉으로는 이러니 저러니 하지만 부동산이라는 카지노가 돌아가는 것을 원해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문화와 윤리가 부동산 투기를 막았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는 사람을 아동납치범이나 살인범보듯이 했을 것이다.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버는 사람에게 침을 뱉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의지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정책이 주어지고 시장이 주어지면 영혼없이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우리는 고의적으로 이런 접근을 피한다. 왜냐면 우리가 인간을 직시할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장의 규칙이나 법칙이니하기 전에 윤리의 문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대한민국 최고의 땅부자 집안의 일원이며 국회의원들이 땅부자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골프치면 공직자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공직에 나서도 될 정도로 윤리적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공평할까?
누가 되지도 않는 근거 빈약한 법칙을 말하는가. 바로 책임지기 싫은 인간들이 그렇게 한다. 자신의 윤리적 책임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법칙 탓, 정책 탓을 한다. 토론장의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은 그 결론이 뭐가 되건 기본적으로 이런 측면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좋은 정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의지의 문제이며 우리가 고의로 저지른 문제라는 것을. 법칙 운운하는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며 그게 우리가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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